박석환, 천변만화하는 세상, 디지털의 속도로 만화가 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1.06.09

천변만화하는 세상, 디지털의 속도로 만화가 간다



만화의 경쟁자가 달라졌다


만화가 달라지고 있다. 물론, 만화독자가 먼저 달라졌다. 독자들의 미디어소비 환경 그리고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만화도 변하고 있다. 천변만화(千變萬化)라는 고사성어의 한자를 만화(漫畵)로 바꿔도 좋을 만큼 깊고 넓게,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 대중화 되면서 만화는 전혀 새로운 경쟁자를 만나게 됐다. 그간에는 창작계, 산업계, 유통계, 문화예술계와 대중적 인식, 법‧제도 등과 싸워왔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는 싸이월드, SMS, 파일공유사이트, 닌텐도, 아이폰 등과 싸우고 있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대가 등장하자 얼마 간 정면승부를 펼치기도 했지만 역부족을 실감한 만화는 기존의 가치를 조금씩 다르게 조정했다. 또,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거대한 경쟁자들 속에서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전쟁을 치뤘다. 오락성이 주가됐던 출판만화는 정보성과 학습성을 강조하며 ‘교양‧학습만화’라는 신규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고, 디지털만화는 이미 발표됐던 출판만화를 디지털화하는 방식에서 진일보하여 ‘웹툰’이라는 신규 형식과 전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웹툰은 단편적 유머(에피소드형 코믹물)와 장대한 서사(스토리만화)라는 두 영역 모두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달성하며 창작만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또 대형 포털사이트의 메인페이지 방문자 수를 급감시킬 정도로 빠르게 파급되고 있는 스마트 미디어 열풍과 함께 만화도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속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과거 출판만화를 단순 디지털화한 것처럼, 스마트미디어용 만화콘텐츠도 출판만화와 웹툰을 단순 변환하는 선에서 출시되고 있지만 스마트 기기의 특징적 기능을 담아낸 만화콘텐츠도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그 때가 되면 만화는 또 다른 경쟁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장 변화에 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이론 요구


시장 환경과 상황의 변화와 함께 만화비즈니스를 대표하는 이론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그간 만화비즈니스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게임, 영화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만화OSMU론’과 ‘만화원작산업론’이 주도해왔다. 두 이론이 내세우고 있는 ‘콘텐츠 상품의 다양화’와 ‘인지도 높은 콘텐츠의 타분야 재창작’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①시장의 관심이 콘텐츠 상품화와 재창작에 집중되는 한편, ②전통적 만화시장인 출판만화(만화잡지 중심의 코믹스 장르 만화)분야의 불황이 장기화되자, 이 이론 때문에 ③신규 창작이 위축되고 있다는 식의 분석도 등장하고 있다.

얼핏 절묘한 분석처럼 보이지만 ①항의 사안과 무관하게 ②항의 코믹스 장르 만화가 위축됐고 ③항의 신규 창작은 웹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분석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분석에 일부 만화계나 산업계가 동의하면서 만화산업과 정책에 대해 냉소적 입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시장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론이 존재하지만, 변화된 시장 상황과 불일치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새로운 이론과 정책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시장 창출형 차세대 콘텐츠 육성’을 핵심 정책으로 수립하고 공정거래 환경 조성과 산업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능적 측면에서는 차세대 콘텐츠의 핵심기술 개발과 함께 한류확산, 창의인재양성, 세계적 스토리 발굴을 지원하고, 만화 장르에 대해서는 ‘국내 만화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디지털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색다른 영감과 도전적 시도가 늘 새로운 미래를 열어왔으니 모두 함께 기대해 볼 일이다. 


차세대 플랫폼의 발전 속도에 맞춘 디지털만화 생태계 조성해야


올 해 정부는 만화산업 진흥을 위해 크게 제작분야와 유통분야 그리고 해외마케팅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이중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부문이 차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오픈마켓용 만화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과 만화계의 자생력 확보와 디지털 유통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한 ‘디지털만화 유통지원 플랫폼 구축 사업’이다.

제작분야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유통분야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수행하고 있다. 올 해 2년 차인 오픈마켓용 만화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은 ‘디지털 현지화’ 개념으로 영어권 사용자들에게 우리 만화에 대한 관심과 접근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유통 측면이 강조된 디지털만화 유통지원 플랫폼 구축 사업은 올 해 처음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만화가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만화 신기술 교육지원’ 사업, 만화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n-스크린 기반 디지털만화 사업화 지원’, 만화산업계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만화 국내외 공정 유통 지원’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기존 시설을 기반으로 디지털만화유통지원센터를 구축하고, 국내외 스마트미디어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만화가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환경과 표현기술, 유통방식을 구현해 볼 수 있는 실습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실습 과정 중 경연 개념을 도입하여 우수 작가의 신규 프로젝트 지원, 기업 매칭, 해외 진출 등의 차등적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만화의 다채널 유통 기반 조성을 위해 ‘디지털만화 스마트 퍼블리싱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신규 유통모델 공모 및 설명회 개최 등을 통해 디지털만화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만화의 이용 확산에도 불구하고 매출효과가 미비했던 부분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디지털만화의 공정 유통 모델을 마련하는 한편, 만화가의 1인창조기업화와 사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헬프데스크가 운영된다.

이 사업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디지털만화산업의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매우 당연하게 만화산업계의 다양한 참여를 통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환경 변화를 쫓는 단편적 지원사업보다는, 환경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전략사업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의 만화를 생산해내고, 만화의 미래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제 변화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익숙한 변화에 기대지 말고, 만화를 통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새로운 미디어와 표현기술이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작품을 이끌어 낸 것처럼, 만화예술가가 미디어와 기술을 활용해 탄생시킨 작품과 유통모델이 새로운 미디어와 시장의 등장을 자극할 것이다. (끝)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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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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