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만화산업 전망
3가지 메가트랜드로 살펴보는 2010년 한국만화
들어가며
시장을 전망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투명한 시냇물 바닥처럼 훤하게 보일 때는 바닥에 깔린 조약돌의 숫자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시냇물로 뛰어 드는 순간 물속은 뿌옇게 변해버린다. 물론, 외적 자극이 사라지면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투명한 속살을 내 보인다. 그래서 시장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망과 예측을 게을리 하면 판단과 실행이 차단된다. 다양한 측면의 시장 전망과 예측이 쌓이기 시작할 때 투자가 이뤄지고, 시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산업은 선진화 되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2010년 만화산업계의 메가트랜드를 검토해 본다.
전통의 만화산업 인력, ‘포스트 만화잡지 시대’를 연다
1_검색보다 편집기능이 강조되는 네이버캐스트
1990년대 이전의 만화시장은 생산 된 것을 소비하는 ‘생산자 중심 시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 정보화 열풍 이후의 만화 소비환경은 ‘소비하고 싶은 것을 소비자가 직접 생산하는 시장’으로 변했다. ‘작가의 죽음’이 현실화 되면서 네티즌 출신 신예 만화가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집단지성’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면서 좋은 것만 골라냈던 편집자의 역할이 축소됐고, 신규 만화작품의 각축장이었던 만화잡지는 기능을 상실했다.
UCC, 위키, 오픈마켓 등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트랜드는 전통적인 출판만화 시장의 구조를 뒤바꿔 놨다. 정보화 10년, 만화잡지와 그 시스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조금씩 다른 징후가 목격된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똑똑한 검색을 통해 콘텐츠를 찾아서 소비하는 방식에 염증을 느낀 것일까. 소비자들은 스스로 찾아가는 복잡한 방식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단 한 번의 클릭 또는 터치를 통해 이용하고 싶어 한다. 네이버의 오픈캐스트, 애플의 아이폰은 이 같은 소비자의 콘텐츠 접근 요구를 수용하면서 떠 오른 ‘콘텐츠 유통 모델이자 소비 방식’인 셈이다. 이는 편집자의 역할과 소비자의 취향에 의해 형성됐던 잡지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2_다양한 기능보다 편리한 사용환경이 강조되는 아이폰
아이티 기술과 환경의 발전이 역설적이게도 전통적 출판시스템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것보다,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이 2010년에는 더 소비될 전망이다. 그 안에서 전통적 방식을 고집했던 창작자와 만화산업 인력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도전이 기대된다.
포털 웹툰 시스템, 콘텐츠 유통망에서 ‘콘텐츠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발전한다
전 국민을 이용 대상으로 하는 대형 포털 사이트 웹툰은 우리 만화산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2000년 초 출판만화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존 만화산업계는 디지털만화(출판만화의 디지털 버전, 만화웹진, 모바일만화 등)를 대안으로 내세웠으나 극적인 시장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출판만화의 디지털버전이 불법 다운로드 서비스를 통해 이용이 확산되면서 ‘만화의 디지털화’는 속도를 잃어버렸다. 반면, 포털사이트는 미디어 기능을 강화하면서 전통적인 신문의 모양을 취해갔다. 새로운 작가 진영에서 창작된 웹툰을 연재물 형식의 콘텐츠로 편성하면서 신문의 구성 요소를 더해갔다.
3_저예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네이버웹툰_와라편의점
신문화 된 포털은 마치 일간지의 인기 연재만평처럼, 스포츠지의 인기 연재극화처럼 웹툰을 자사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워갔다. 이와 함께 이른바 신인작가 등용 기능 또는 신규 콘텐츠 확보 기능을 취한 ‘나도만화가, 도전만화가’ 코너가 활성화되면서 포털은 나름의 만화콘텐츠 생산과 소비 구조를 만들어 냈다. TV, 휴대전화와 함께 가장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인터넷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포털사이트는 콘텐츠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장 막강한 콘텐츠 유통망이 됐다.
2010년 포털 웹툰 시스템은 단순히 작가나 작품의 지명도를 높여주거나 포털 사이트의 광고 매출을 견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전망이다. 포털 웹툰 시스템이 색다른 콘텐츠 비즈니스를 전개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털 웹툰과 그 시스템은 특정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웹툰의 구성요소 전반과 그 가치를 활용한 콘텐츠 비즈니스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미 다수의 웹툰이 전통적 출판산업의 신규 상품군이 됐고 다수의 웹투니스타들을 배출해냈다. 그리고 웹툰을 광고 홍보의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 늘어났고 웹툰을 원작으로 한 다양한 2차 콘텐츠 개발 사례와 모델도 수립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웹툰 시스템을 하나의 산업군으로 분류 할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웹툰과 포털 웹툰 시스템은 ‘관리 받지 않은 상태로 창작되어 유통되는 저예산 콘텐츠 또는 그 것들을 위한 망’이 아니라 다수의 기획자들에 의해 제안되고 작가에 의해 창안되어, 수많은 관련인들의 통제 하에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분화해가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만화정책, ‘디지털라이징과 로컬라이징’으로 만화계의 미래 환경을 조성한다
만화 관련 정책은 지원과 통제로 대표되어 왔다. 모자란 것은 지원하고 과한 것은 통제하는 것이 기존의 만화관련 정책이었다. 그러나 최근 만화관련 정책은 장기성과 효율성을 전제로 ‘육성과 집중’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고 있다. 육성 측면에서는 인재양성이라는 제한적 틀거리에서 벗어나 OSMU, 크로스미디어 등 콘텐츠의 다각적 활용성과 뉴미디어 환경에 맞춘 융복합형 제작 지원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집중 측면에서는 소규모의 나눠주기식 지원사업이 아닌 성과중심으로 특정 정책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형식의 제작 지원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각급 만화관련 기관의 2010년 만화 관련 주요 사업의 키워드를 정리하자면 디지털라이징과 로컬라이징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라이징이 1회의 생산비용을 기반으로 다각도로 만화작품을 활용하기 위한 기업의 요구에 가깝다면, 로컬라이징은 1회의 생산가치를 최대화 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요구에 가깝다.
4_ 종이책의 디지털화 열풍 속에 등장 예정인 인터파크의 전자책 기기
기획과 유통 관리 측면에서 즉, 사회문화 전반의 디지털화와 맞물려 진행됐던 산업 환경의 디지털화가 2000년 이후의 이슈였다면, 2010년 이후의 이슈는 디지털화 된 제작과 소비 환경에 맞춰지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 다양성과 기능성을 꾀하며 창작의 활용 측면을 강조했던 것에서 벗어나, 형식적 측면에서 편리성과 응용성이 뛰어난 디지털 환경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다. 현지화는 우리 만화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새로운 추진 전략이다. 우리 만화의 해외 수출 1기가 인기출판만화 또는 우수출판만화의 수출이었다면, 2기는 해외 현지 창작 또는 해외 현지의 정서에 맞춘 기획창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내수시장 위축에 따른 기업의 투자의지 축소에 대한 작가들의 자구책이기도 하다. 기실 작품 수출이 아닌 작가 수출(해외 매체에 직접 연재하는 경우)의 측면이 강한 현지화는 내수시장의 생산성을 악화시킬 수 있고, 우리 작가의 작품을 역수입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경없는 문화소비 시대에 내수시장의 제한된 수요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가와 정책당국의 노력이 늦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당국의 육성과 집중 정책은 우리 만화의 디지털라이징과 로컬라이징 속도를 강화해 갈 것이다. ‘멀티소스, 글로벌 콘텐츠’로 정리해 볼 수 있는 우리 만화산업계의 새로운 미래가 2010년에는 더욱 가시화 될 것이다.
5_해외 현지 창작에 성공한 윤인완, 양경일 컴비의 최신작_디펜스데빌
나오며
2010년 만화산업계의 메가트랜드로 3가지 측면을 검토해봤다. 기존 만화계의 전문 인력들이 기존의 위치 또는 새로운 둥지에서 쏘아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 ‘포스트만화잡지’의 결과물을 기대해 봐도 될 것이다. 주류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포털웹툰은 ‘가난한 유명인’을 양산한다는 부정적 측면에서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웹툰 한편이 곧 새로운 사업의 기반이자 내용이 되는 ‘콘텐츠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만화산업계는 새로운 동업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산업과 정책 측면에서는 우리 만화의 ‘디지털라이징과 로컬라이징’의 흐름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우리 만화산업계의 미래지도를 재편할 것으로 기대된다. 3가지 모두 긍정적 전망이다. 이 안에서 2010년 만화계가 새로운 10년의 먹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만화의 미래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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