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의 비밀, 전자신문 2010.2.17

‘만화로 보는’이라는 형식을 취한 만화책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리스로마신화’로 시작된 만화로 보는 시리즈 열풍은 교과학습 분야를 넘어서 자연과학, 역사, 지리, 세계명작, 종교철학 등을 아우르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발행 종수도 이미 오락성 서사만화의 규모를 추월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엇비슷한 소재와 제목의 작품들이 많다.

만화로 보는 시리즈 중 가장 반복적으로 출판되는 소재가 중국 고전 소설이다. ‘또 삼국지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수많은 작가들이 ‘삼국지’를 그렸지만 ‘작가라면 누구나 삼국지를 그리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듯, 새로운 작가를 내세운 ‘삼국지’ 발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인기 만화가 이현세가 최근 ‘처음으로 만나는 삼국지’를 발표하며 ‘삼국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그림소설의 형식을 취한 작품이다. ‘삼국지’ 만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요코야마 미쓰데루의 1971년 연재작 ‘만화 삼국지(1986년까지 연재됐다)’도 최근 무삭제 완역판으로 출간됐다. 성공서 인기에 힘입어 ‘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었던 기존 판본을 대하 서사극에 무게중심을 두고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이 분야 최고의 히트작인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콤비, 이광진과 서영도 전작의 컨셉트를 빌려 ‘정통 만화 삼국지’를 발표했다.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면서 복잡한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판타지 호러물에서 빛을 발했던 형민우도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며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를 발표했다. 몇 해 전 발표돼 스테디셀러가 된 ‘이문열, 이희재 만화 삼국지’의 흥행을 재현한다는 포석이다. 판타지 무협물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이충호도 ‘황석영, 이충호 만화 삼국지’에 이어, ‘수호지’를 재해석한 ‘이스크라’를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고 있다. ‘서유기’ 이야기는 거론하기 벅찰 정도로 다양한 형식의 만화 작품이 있었고 지금도 쏟아져 나온다. 그중 최근 완간을 앞두고 있는 ‘크로니클스’는 학습성을 제거하고 창작성과 서사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이처럼 ‘만화로 보는’ 시리즈는 누구나 두세 번쯤 읽었을 법한, 이미 동일 소재의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는 사례가 많다. 판본별로 색다른 기획이 첨가되기도 하지만 전혀 새로운 기획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동일한 소재에 엇비슷한 제목의 출판물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소비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고전이 지닌 의미와 만화라는 언어의 기능성 때문이다.

고전을 소비한다는 것은 선대의 축적된 지식과 삶의 경험을 배운다는 측면이 강하다. 또,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지녀야 할 공통 규범이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전을 읽는 일이 쉽지 않다.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의 등장은 이를 쉽게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에 먹기 좋게 만든 만화는 고전 전체가 아닌 압축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때문에 만화로 보는 고전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원작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이 갈증이 원작 읽기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의 최고 미덕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독자는 고전 원작에 대한 갈증을 다른 판본의 만화를 읽어서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쉽게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비 이후에도 제거되지 않는다. 이 같은 경향이 ‘동일 소재, 반복 소비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을 이해한다면 고전 읽기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고전 입문을 위한 읽기와 고전 완독을 위한 읽기를 구분하면 좀 더 ‘똑똑한 소비’가 가능할 것이다.

글/ 박석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수석

게재처 : 전자신문 2009.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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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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