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5강. 만화비평과 이론의 역할, 2008.12.21

만화 비평과 이론의 역할

우리 만화는 90년대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산업화를 이루었고 21세기 초입에 정보화 단계를 거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슈퍼스타급 만화가와 전문출판사의 등장으로 ‘만화의 대중화’가 이뤄졌다면 ‘만화의 산업화’와 ‘만화의 정보화’에는 만화비평가와 이론가의 역할이 있었다.

*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화문화는 단순히 유명만화가 1인이, 또는 좋은 작품 1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화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계층의 힘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중에서 대중화까지의 힘은 만화가, 출판사, 도소매업체 등의 역할이 있었다면 이를 확산시키고 산업의 영역으로 체계화 시킨 것은 또 다른 역할을 지닌 이들의 참여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다른 역할의 중심에 만화비평가와 이론가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중화 이전, 만화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만화창작 지망생들을 위한 작법연구에 머물러 있었다. 교육학적 관점에서는 다수의 연구 성과가 제출됐지만 만화가 청소년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한 ‘만화유해론’이 대부분이었다. 언론은 이 같은 연구경향을 토대로 ‘만화=불건전’한 것으로 결정지었고 사회단체들은 매년 5월 ‘만화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정부의 만화정책 역시 규제 일변도였다. 우리만화계는 해방 후 수 차례 만화 붐을 이끌어냈지만 ‘만화는 유희적이고 유치하다’는 인식의 벽을 허물지 못했다. 거기에 폭력성과 음란성, 일본만화 표절과 불법복제의 꼬리표가 붙으면서 만화작품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분석과 고찰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

만화가 부적절하게 유통되는 현실만 부각되고 오늘의 우리만화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대중문화 담론 열풍이 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문화에 대한 논의가 확대됐고 고급문화에 대비되는 개념의 대중문화 연구가 활발해졌다. 만화작품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도 이 시기에 구체성을 띄기 시작했다.

회고담 형식이었지만 군사정권 하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만화작품들이 언론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이현세, 김수정, 허영만으로 대표되는 슈퍼스타급 만화가가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했고 문민정부는 ‘굴뚝 없는 산업으로서의 만화’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1995년 정부 주도하에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이 행사가 당대 최고의 입장객을 동원하면서 만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관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유사 만화축제가 연이어 개최되고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만화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규제 일변도였던 정부의 만화정책은 지원으로 바뀌었고 언론은 만화의 산업적 가치와 함께 ‘만화산업 부국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대학은 만화관련 학과를 개설했고 대기업도 하나둘씩 만화산업에 관심을 드러냈다.

만화작가들 사이에서는 만화를 무슨 제조업처럼 취급한다면서 만화의 산업화를 경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발심리는 현재도 논란거리 중 하나여서 만화계에 뛰어 든 ‘만화산업론자’에 대한 불신풍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만화에 대한 산업화 논의는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거나, 만화를 보면 불량 청소년이 된다’는 사회문화적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만화가가 미래 유망직업이 되고 만화작품이 지속 생산 가능한 문화상품이 되면서 만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대접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만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끈 핵심은 꾸준히 만화창작에 몰두하며 변화하는 문화현상과 문화소비현상에 걸 맞는 작품을 생산해 낸 만화가와 만화산업종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이 제대로 된 평가의 선상에 오르게 하고 그 작업의 가치를 폭 넓게 한 쪽, 그리고 이를 통해 만화문화의 확산과 변화를 견인한 것은 만화비평가와 이론가의 역할이었다.


**한국만화100주년위원회 모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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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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