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분석적 글쓰기
만화비평과 이론의 전개
만화와 글쓰기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만화라는 현대적 표현 예술은 신문을 통해 대중화됐다. 당시 신문은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일부 식자층을 위한 것으로 출발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문자를 읽지 못하는 일반 대중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다. 대량인쇄가 가능해진 탓도 있고 신문 소비를 확대시키려는 상업적 목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사의 다른 형태로 만화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글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글, 그림으로 그린 신문 기사가 곧 만화였다. 만화와 글쓰기, 그 중에서도 언론매체를 통한 글쓰기는 한 몸이었던 셈이다.
* 전 세계 언론인의 최고영예로 인정받고 있는 퓰리처상의 창시자 퓰리처, 대한민국 초대 공보부장관을 지낸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언론인 김동성 등은 미국과 한국 신문의 선구자이자 신문만화의 산파로도 유명하다. 퓰리처와 김동성은 신문을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대중에게 판매하기 위해 만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것이 적중해 신문은 식자층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편으로 넘어왔다.
** '만화는 인쇄를 기본으로 한 대중문화다'라는 기준 역시 신문과 함께 발전한 현대 만화의 태생적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쇄라는 기준은 지금의 만화를 한정 지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정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게 됐다.
만화를 위한 글쓰기, 즉 만화스토리가 창작 분야라면 만화에 대한 글쓰기는 비평의 몫이다. 1920~30년대에 활동한 초창기 만화 연구자들은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언론인과 문화예술인이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김동성은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작 대중화를 목표로 신문과 잡지에 만화작법을 연재했다. 동시대 문화게릴라이자 멀티아티스트라고 할만한 최영수는 가장 독창적인 만화가이자 최초의 만화비평가로 활약했다. 이후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만화연구가 시도됐다. 한 몸을 이루고 있던 신문 기사>만화>만화작법>만화비평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만화리뷰는 만화사와 최근 문화적 이슈에 대한 입장과 관점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만화와 문화연구의 현재 흐름에 대해 개관할 수 있어야 한다.
김동성, 만화그리는 법, 동명, 1923
* 만화비평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는 만화평론가 김성훈의 연재 원고를 통해 좀 더 소상하게 검토해 볼 수 있다. http://www.culturenews.net/list.asp?search_type=article_writer&search_word=김성훈%20_%20만화평론가
여기서는 이 책의 목적에 맞춰 만화비평과 이론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짧게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80년대 이전까지 만화에 대한 연구는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작법 연구, 만화유통 규제와 통제를 목적으로 한 시장분석, 신문만화를 중심으로 한 정태분석, 만화 형식을 활용한 학습 프로그램 연구 등이 전부였다. 이후 문학평론가 김현에 의해 만화작품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론이 제기됐고 시인 오규원은 길창덕, 고우영 등의 작품 분석 사례를 제시했다. 이어 대본소를 중심으로 한 극화 만화 붐이 일면서 「만화광장」, 「주간만화」 등 성인만화전문지들이 창간됐고 만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 지면이 생겼다.
** 만화잡지 <만화광장>은 당대보다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만화를 중심으로 정치, 스포츠, 시사문화와 만화비평을 아우른 수준 높은 잡지로 평가되지만 당시 이 잡지에 작품을 연재한 만화가의 증언에 의하면 저급한 자본가가 편집팀도 갖추지 않고 시작했던 곳이라고 회고했다. 과거 문제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상이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섬세한 관찰과 분석이 요구된다. 우리 만화사 역시 같은 선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90년대에는 영국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전통을 흡수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리의 현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시도하는 트랜드가 생겼다. 민중예술과 문화운동계열의 이론가들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풍토를 조성했다. 이중 미술사학자, 사회학자들이 만화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곽대원, 최열, 최석태(이상 미술평론가), 김창남, 정준영, 김이랑, 백정숙(이상 언론/ 사회학자) 등이 우리만화연대를 중심으로 만화평론가협회를 결성해 한국만화사와 역대 주요작가들을 개관하는 한편 우리만화의 현재를 조망하는 저술활동에 임했다. 임청산, 이원복, 박세형, 손기환, 한창완(이상 대학교수) 등은 만화학회를 결성하고 만화 관련 정책과 학술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 이 시기는 대중문화에 대한 담론이 홍수를 이루던 때다. 그만큼 경기도 좋았고 매체도 풍성했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불안한 격변기의 연속이었던 때다. 어찌보면 그 같은 불안이 담론 생산을 가능하게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시기에 스포츠서울이 장르문학과 대중문화평론을 중심으로 한 신춘문예를 시행했고 만화평론 부문에서도 당선자가 배출됐다. 손상익, 임화인, 박인하, 박석환, 나호원 등이 이 공모전을 통해 등단했다. 손상익은 한국만화연구원을 설립하고 만화연구과정을 개설하고 만화비평지 「코코리뷰」를 발행했다. 이동훈, 박석환, 한영주, 박창석, 김기홍, 주재국, 이대연, 김성훈, 박소현 등이 배출되어 만화 관련 연구 저술 실적을 발표했다.
** 이 시기 만화평론가협회의 결성과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의 설립에 대해서는 언제인가 공정한 검토와 평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개인적으로 당시에는 한만연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만평협이 재활동을 시작하면서 함께 이런저런 고민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두 단체간에는 알수없는 벽이 존재한다. 갈등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과 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정설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틀 내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몇 명 되지 않는 평자와 논자가 나뉠 일은 아니다.
만화연구가 나름의 터를 닦고 있는 사이 영화연구는 〈로드쇼〉, 〈키노〉에 이어 〈씨네21〉이 창간되면서 대중화 시대를 열고 있었다. 만화연구도 영화연구의 확대 발전 과정에 일부 참여했고 그와 같은 로드맵을 꿈꿨다. 이명석, 오은하, 김봉석, 황민호, 박성식 등 잡지기자 출신들의 대중적 글쓰기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종합일간지에 만화기사 지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어수웅, 장상용, 기선민 등 만화담당 기자들의 활약이 펼쳐졌다.
2000년을 전후로 만화정보지 「만화세상」, 만화비평지 「오즈」, 만화작법지 「만화창작」, 만화비평웹진 「두고보자」, 만화정론지 「계간만화」, 인터넷만화언론 「만」 등이 연이어 창간되면서 노수인, 김낙호, 박관형, 원종우, 선정우, 이영미, 서찬휘 등의 만화논객이 등장했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이 대목도 아쉽다. 2000년이 밝아 올 때 까지만해도 만화는 중앙일간지가 주1회 1면의 뉴스로 다루는 중심 문화였다. 하지만 만화계는 그 지면을 지속 시키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출판계와 영화계가 그 지면에 관심을 보였을 뿐 만화출판계는 남의 일 보듯 했고 '광고마케팅없이 돈 번다'는 수근거림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만화정보지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도 정통한 소식통과 언로가 필요하다. 왜 언로라 했겠는가. 도로나 다리를 놓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 만화계는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다. 시도가 있다면 이를 보듬어서 가장 좋은 것으로 활용할 줄 아는 관대함이 아쉽다.
이와 함께 ①대학과 대학원 과정의 만화 교육 활성화 ②만화에 대한 언론 매체의 관심 증대 ③만화를 이용한 미디어교육의 확산 ④인터넷서점의 판매율 확대 ⑤출판사의 웹마케팅 활성화에 따른 만화서평 커뮤니티 확대 ⑥블로그 문화의 확산에 따른 만화리뷰 블러거의 출현 등이 이어지면서 만화연구는 만화리뷰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글쓰기 문화로 변화해 가고 있다.
** 어쩌면 몇해전부터 불고 있는 쇼핑몰과 품평, 카페나 블로그와 리뷰는 우리 만화계가 이상적인 정보화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대형포털의 품 안에서 기생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역할과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가령 이동형 개인 미디어가 더욱 폭넓게 자리잡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미디어 소비 환경이 전개될지 모르고 정보나 리뷰의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함께가야한다. 붙어서 가야한다. 어디라도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