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디즈니와 김청기의 창의성 그리고 도전정신, 2008.5.24

월트 디즈니와 김청기


‘미키 마우스’의 월트 디즈니와 ‘로보트태권브이’의 김청기는 닮았다. 가난한 만화가였다는 점도 그렇고 성공한 애니메이터이자 기업가였다는 점도 그렇다. 또 그들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람들만큼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은 창의적 사고와 도전정신이다.



자기만의 것을 고집하는 것이 창의성은 아니다


미키 마우스는 1928년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호’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캐릭터 사용료를 받고 있는 가상 인물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미키마우스를 제일 처음 그린 사람은 디즈니가 아니다. 또 미키라는 이름도 그가 만든 것은 아니었다.



디즈니는 시골에 살면서 쥐를 기른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료 만화가였던 어브 이웍스(Ub Iwerks)가 쥐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디즈니의 아내는 모티머어라는 쥐 이름이 거만해 보인다며 미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디즈니는 이들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기 생각만을 고집했다면 이 쥐는 아마도 변두리 만화가게에서 잊혀졌을지 모른다.



로보트태권브이는 1976년 개봉한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당시 놀라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최근 로봇이 현실이 되고 상상력이 국가적 자산으로 논의되면서 태권브이는 우리 문화계의 위대한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 역시 가난한 만화가이자 외국산 애니메이션의 하청 제작 일을 했던 김청기의 독자적 창작물은 아니다. 당시 사무라이를 모티브로 한 일본 만화영화 ‘그레이트마징가’가 유행했는데 만화가 조항리가 이를 바탕으로 태권도하는 로봇을 착안했다. 이를 본 김청기가 자신의 창작 애니메이션 데뷔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제작기법 측면에서는 디즈니프로덕션의 사례를 응용했다.

개봉이후 현재까지 태권브이는 마징가의 모작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청기는 태권브이의 얼굴 부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투구를 씌우는 등 한국적 상상력을 더했다.

검증된 사례(대중이 선호한 것)를 터부시하고 모작 시비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태권브이 시리즈는 단 한번의 열풍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안정을 유지하고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도전할 수 없다


디즈니와 김청기는 만화영화 데뷔작이 곧 최고의 걸작이자 히트작이 된 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작품의 히트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작가 양성과 작업환경 개선, 신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이 같은 도전은 수 많은 수익을 올린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기술 투자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붙자 노조가 파업을 하기도 했고 디즈니는 몽상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장실에 틀어박혀 기차놀이에 심취해 있는 디즈니를 정신이상자로 몰기도 했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 기차놀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인의 놀이터인 디즈니랜드를 만들어냈다.



김청기는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1/5 가량이 모방작’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감독이다. ‘날아라 원더공주’, ‘스페이스건담브이’, ‘똘이와 제타로봇’, ‘파워킹’ 등은 제목만으로도 유사 작품이 연상된다. 하지만 김청기는 최악의 평가 속에서도 늘 매력적인 기획을 선 보였다.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심형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혼합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우뢰매’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영화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바보 심형래를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한 특수촬영 회사의 대표이자 영화감독으로 이끌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연한 창의성,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


디즈니와 김청기는 예술가다.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화영화가 개인적인 창작 영역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보다 그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고 안정을 원하지 않았다.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전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디즈니가 회사일은 내팽개치고(?) 기차놀이에 심취했듯 김청기는 요상한 작품을 극장에 걸고 관객의 평가를 기다렸다. 이 때문에 디즈니와 김청기는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뜯어내는 교활한 장사꾼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지불한 만큼의 돈보다 값진 꿈과 미래에 대한 동경을 얻었고 지금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 그들이 구매한 것이 장사꾼이 만들어낸 헛된 몽상이 아니라 사랑, 우정, 평화 등 삶의 근원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매력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아낸 매력적인 캐릭터는 두 사람이 지닌 유연한 창의성과 부끄러움 없는 도전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곧 혁신이다.

혁신은 사람들의 동감(同感)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감동(感動)하게 만든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 어제 네이버 메인에 선정됐네요...


그런데... 지금 확인해보니 삭제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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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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