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 만화의 창작환경과 소비환경, 한국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08.09

*사진출처 : 네이트24시만화방 보도자료


들어가며


한국 만화는 이웃한 일본 만화와 함께 장편만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외형적 차별성이나 발전과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일본 만화가 ‘도전과 성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그리고 있다면 한국 만화는 ‘저항과 자유 그리고 계몽적 서사’를 테마로 한다. 한 핏줄이지만 순수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매체 환경과 소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한국 만화의 세계를 소개한다. 


한국만화의 매체환경과 창작그룹


한국 현대 만화의 출발은 신문의 역사와 함께 했다. 매일 원고를 마감해야하는 피 말리는 전쟁터인 신문을 통해 만화가들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고 자유에 대한 열망과 가치를 전달했다. 신문은 신인 만화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매일 연재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 신문에서 활동하는 만화가들을 시사만화가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각종 장르 만화가 폭넓게 연재되고 있다. 

짧은 풍자만화도 있지만 장편 서사만화가 연재되기도 한다. 각종 신문을 통해  100여 명의 만화가가 활동 중이다. 풍자적 재미에 치우치기도 했지만 신문의 비판적 감시 기능과 계몽성에 충실했다. 초창기 신문만화는 언론인의 추천으로 화가나 소설가들이 겸업 형식으로 창작했다. 지금은 전업 만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같은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서 미술이나 문학 전공자들이 많다. 

반면 잡지는 색다른 소재와 오락성 그리고 독자의 욕망에 충실했다. 각종 소년지, 성인지, 여성지 등이 창간되면서 만화가들의 활동 무대도 신문과 책의 중간 지점인 잡지로 옮겨졌다. 만화가들은 세분화된 독자층의 요구에 걸 맞는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선화 위주의 유머 만화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적 화풍의 극화가 등장했다. 내용적으로도 액션, 스포츠, 로맨스, SF, 판타지 등 본격 장르만화의 시대가 열렸다. 

한때 만화전문잡지가 연령대별로 창간될 만큼 호황을 누렸지만 현재는 소년 주인공의 꿈과 도전 그리고 우정을 테마로 한 ‘격주간 아이큐점프’와 ‘격주간 소년챔프’, 소녀 주인공의 내밀한 고민과 사랑을 테마로 한 ‘격주간 윙크’와 ‘격주간 이슈’ 등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한 잡지가 출간되고 있다. 소년소녀 세대가 읽기에는 다소 과도한 표현과 특정 장르에 편중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가족, 학교 등 전통적 질서와 가치관이 유지되고 있다. 일상에서의 탈출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그리고 있지만 이탈이 아닌 회귀와 성장이 주제다. 청소년층 독자와 동세대적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젊은 만화가 150여 명이 만화전문잡지에서 활동 중이다. 과거의 만화가들은 선배만화가들에게 도제식 훈련을 받으면서 작화 스타일을 계승했다. 반면 이들은 독학을 하거나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한 이들이다. 연재만화의 점층적 전개 구조 등 일부 패턴은 유지되고 있지만 개성적인 작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잡지 연재만화를 책으로 묶은 코믹스는 한국 만화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전 세계인을 독자층으로 한 작품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은 전작 단행본은 책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유형의 만화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먼저 대본소용 만화는 수 많은 인력이 참여하는 프로덕션에서 창작된다. 10여 개의 프로덕션에서 약 300여 명의 만화가가 활동 중이다. 한국 만화계의 인재 양성소 역할을 했지만 각급 교육기관이 이 역할을 대신하면서 위축되고 있다. 

교양・학습 만화는 교육열과 학습욕이 높은 한국 사회의 대표 분야 중 하나다. 초기에는 신문 연재 만화가들이 지식과 교양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단순한 강의식 서사에서 극적 이야기 구성을 취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관련 시장이 성장하면서 잡지나 단행본에서 활동하던 만화가들이 자리를 옮겨 활동 중이다. 모험과 탐구를 주 테마로 한다. 분야의 성격상 교수, 학자, 변호사, 의사 등 이색 직업을 지닌 겸업 만화가들도 많다. 만화전문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에서 기획 단행본을 창작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500여 명의 만화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국 만화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활동력과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만화가그룹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웹만화가들이다. 특정 웹사이트에 원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만화가는 50여 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인 만화의 열람 방식이 페이지를 넘기는 수평적 형식을 취했다면 웹만화는 마우스 스크롤 기능을 이용한 수직적 열람 방식을 취하고 있다. 

웹만화가들은 새로운 환경에 걸 맞는 작화 방식을 개발했다. 작품 당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열람하고 있고 단행본 발매 시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나 유명 사이트의 게시판에 작품을 올려 지명도를 높이고 이를 단행본으로 출판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사례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기 할만한 점은 이 새로운 진영의 등장과 성장이 자생적이었다는 점이다. 만화가 개인이 창작-제작-유통 전반을 총괄 관리하며 직접 소비자를 찾아 나선 결과다. 초기에는 과격한 패러디나 일상적 유머가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장편 서사만화가 대세다. 과거 만화가들이 글과 그림의 장점을 하나로 묶어 인쇄미디어를 풍요롭게 했던 것처럼, 웹만화가들은 멀티미디어 컴퓨팅 기술을 통해 인터넷미디어와 영상서사문화 전반에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유통환경과 소비 구조


한국에서 발행되는 만화책의 유형은 크게 대본소만화, 코믹스만화, 서적만화로 구분된다. 이 책들이 제작되고 유통되는 구조도 제각각이다. 

대본소만화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대본소(만화방)에 공급하기 위해 제작되는 만화책이다. 대본소는 입장제나 시간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유료 만화도서관으로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활성화 된 곳이 없다. 장소 당 50여 평 내외의 공간에 3만 권 가량의 만화책을 소장하고 있다. 

만화프로덕션과 전속 계약을 맺은 20여 출판사가 년 5천 종의 만화책을 발행하고 전국 100여 곳의 만화총판을 통해 각지의 대본소로 배급된다. 한때 2만 여 곳에서 운영됐지만 휴게 기능이 PC방으로 옮겨가고 만화를 소비할 수 있는 대체 공간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2천 여 곳으로 줄었다. 외국의 만화관계자들이 부러움을 표했던 곳이기도 하다. 부정적 평가도 많지만 한국 만화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코믹스만화는 대본소만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등장한 시스템이다. 대본소만화는 대본소 운영자가 만화책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만화가나 출판사에게는 추가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반대로 아무리 못 만들어도 대본소 숫자만큼 판매됐으니 좋은 작품이 나올 까닭이 없었다. 반면 코믹스만화는 만화총판을 통해 대본소에 만화책을 공급하기도 했지만 일반도서처럼 서점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만화전문잡지를 통해 만화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한편 연재과정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관리했다. 청소년층의 통행이 잦은 문방구에도 만화책을 공급했고 캐릭터라이센스 사업과 애니메이션 사업에도 집중 투자하면서 만화책 판매시장을 활성화 시켰다. 코믹스만화는 대본소만화를 밀쳐내고 만화계의 왕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일본 만화를 대거 수입하면서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책대여점이라는 새로운 대여 유통 시스템이 생겨나면서 코믹스만화가 이 유통망을 통해 소비됐다. 대본소만화가 대본소 입장제로 만화책을 소비했다면 코믹스만화는 대여점에 와서 권당제로 빌려 가는 형식을 취했다. 이 역시 한 때 2만 여 곳에 설치됐지만 현재는 5천 곳 미만으로 축소됐다. 이후 코믹스만화는 인터넷서점에 만화책을 공급하고 출판사 직영 만화전문서점을 운영하면서 판매시장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적만화는 일반도서 출판사들이 만화 출판에 뛰어 들면서 생겨났다. 만화는 전통적으로 신문이나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나 만화책만 전문으로 발행하는 출판사가 담당했다. 일반도서의 필자들에 비해 만화가의 숫자는 제한적이고 작품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계약 관행, 유통 방식 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일반도서 출판사들의 참여는 제한됐다. 

하지만 코믹스만화가 서점 시장에 뛰어 들면서 일반도서 출판사들도 본격적으로 만화책을 출판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대본소만화나 코믹스만화에서 활동하지 않던 만화가를 기용해 아동학습, 인문교양, 역사취미 등 일반도서 분야와 관련 된 만화책을 출판했다. 일반도서와 마찬가지로 서점 유통을 중심으로 했지만 코믹스만화와는 차원이 다른 출판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보여주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만화전문출판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웹만화를 출판하기도 했고 신인 만화가를 찾아내 고전명작소설이나 베스트셀러를 만화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변호사나 의사를 만화가로 데뷔시키기도 했고 20~30권짜리 전집 만화를 연재 없이 전작 출판해 TV홈쇼핑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다.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만화전문출판사에서 활동하던 만화가들도 출판사를 옮겼다. 특히 서적만화는 대본소만화와 코믹스만화의 역대 걸작들을 애장판 형식으로 복간시켰다. 대여 소비됐던 상품을 구매 소비하게 만든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는 정당하게 구매해서 소비하고 만화가와 출판사는 판매 수익을 염두에 둔 작품 창작을 하게 됐다. 


한국 만화의 소비환경과 연계 상품화 구조


한국의 만화 소비환경은 매우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만화를 접촉하고 있고 다양한 유통 공간을 통해 만화를 소비한다. 

만화 소비자는 초・중・고등학생과 성인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연령대가 낮을 수록 만화 독서율과 접촉시간이 높고, 연령대가 높을 수록 낮아진다. 그만큼 한국의 만화는 저연령층 위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간 독서량에 있어서는 평균 15권으로 연령별 편차가 크지 않다. 연령대가 낮을 때는 대부분이 만화를 조금씩 소비하지만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특정 성향의 소비자가 만화를 집중적으로 소비한다. 이에 맞춰 저연령층으로 갈수록 보편적인 주제와 내용을 담은 작품을 서점 등 가까운 소비환경을 통해 내보낸다. 반면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세분화된 주제와 내용을 담은 작품을 접촉 빈도가 높은 매체 소비환경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전체 문화콘텐츠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소비자들은 영화관람, 음악감상, 게임 다음으로 만화를 소비한다. 매체 접촉시간도 영상매체, 정보오락매체, 음향매체, 인쇄매체 순이다. 소비자들의 문화비 지출 형태나 방식에 따라 만화의 창작과 생산 방식, 만화의 연계 상품화 구조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문화 소비자는 만화책 읽기보다 영화관람과 TV시청, 인터넷과 게임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사용한다. 이에 따라 영화, TV드라마, 게임에 만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일본 만화계가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전 세계적 프로모션에 나서는 것처럼 한국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와 인터넷게임을 제자개 전 세계에 내보내고 있다. 이는 다시 만화책 소비를 자극함으로 연계상품이 곧 만화의 소비환경이 되는 셈이다. 또 정보오락매체의 접촉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쇄물의 형식이었던 만화책도 전자적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접촉시간이 긴 인터넷과 이동전화를 통해 만화를 소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만화계는 소비자 중심의 만화 소비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화 소비가 단순히 책읽기로 끝나지 않게 되면서 다채로운 소비문화가 생겼다. 만화책이 출간되면 인터넷서점에서 판매되고 네티즌은 자신의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 작품을 평가한다. 평론가 이상의 대우를 받는 만화 서평가가 생겼고 서평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아마추어 만화가들은 이 작품을 패러디 해 소책자를 만들거나 주인공 의상을 제작해 분장쇼를 펼치기도 한다. 리더십 강사나 예술치료사가 만화작품을 이용하기도 하고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이 만화를 미디어교육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만화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만화를 읽을 수 있고, 만화의 감동과 매력적인 요소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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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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