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소재로서의 역사, 기록과 해석으로서의 만화
* 유럽권 세태 풍자만화의 출발, 로돌프 퇴퍼
* 캐리커쳐 기법을 이용한 정치풍자화, 오노레 도미에
최근 현대사를 소재로 한 만화책이 다수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만화와 역사의 관계는 '만화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은 만큼 ‘만화가 역사를 다룬다!’는 놀라움을 표하는 것은 부적절한 방식이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만화는 상상력의 표현이라는 일반적 인식이나 정서가 이 같은 놀라움의 원인이라고 봐야겠다. 하지만 ‘역사가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다룬 사료를 대상으로 역사를 접한다’고 본다면 만화는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상황을 쉼 없이 기록해왔다. 또 만화적 표현형식을 취한 사료는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가장 유용한 방식 중 하나로 활용돼 왔다. 만화가 역사를 기록하는 형식과 사례로는 시사만화, 역사만화, 시대만화, 판타지만화 등이 있다. 이는 기록(사실)과 해석(상상력)이라는 두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1) 역사적 사실과 기록에 근거한 만화
* 한국 최초의 시사만화, 이도영
시사만화와 역사만화는 기록 측면이다. 시사만화는 만화가 역사를 기록하는 가장 보편화된 방식으로 신문, 잡지 등에 수록되어 시사만평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로 평가받고 있는 이도영의 삽화 역시 1908년 대한민보 창간과 함께 연재된 시사만화이다. 첫 연재분은 창간취지를 밝히고 있어서 내용상 홍보만화이지만 이후 연재분은 일제치하에서 벌어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건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이에 대한 풍자를 가미해 사건 자체를 부각시키는 형식을 취한다. 즉, 단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신문사 또는 작가의 개인적 견해나 주장을 포함한다. 그래서 가치평가적 의미를 포함해 만평이라 한다. 만평가는 사건현장을 보도하고 사건의 연속이나 분석을 통해 사회적 의제나 인식을 설정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한다. 만평이 가장 많이 다룬 역사적 인물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이념이다. 코주부 김용환과 고바우 김성환, 한겨레만평의 박재동과 경향만평의 김상택 등이 1칸과 4칸 시사만평의 인기스타로 활동했다.
역사만화 역시 시사만화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가치평가보다는 역사적 사실 즉 객관적 지식과 정보에 치중한다. 시사만화가 취재된 사실을 근거로 한다면 역사만화는 기록된 사료를 근거로 한다. 시사만화가 권력자에게 형성된 이미지를 중심으로 개별 사건을 풍자하거나 비판한다면(또는 그 역으로) 역사만화는 권력자 또는 권력자에 대립했던 실존인물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갈등, 해결방법 등을 설명한다. 교육적 기능성을 강조한 역사만화의 경우는 작가나 특정 캐릭터가 교사로 등장해서 직접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60년대에는 박광현, 박기당, 김종래가 맹활약했고 이후로는 고우영, 이두호, 방학기, 백성민이 일가를 이루었다. 이들은 기록보다 해석적 측면이 강한 시대극화에서도 진가를 드러낸다. 이들의 작업이 조선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현대사는 이원복, 박흥용, 백무현 등이 만화화하는 작업을 했거나 하고 있다. 물론 최근 어린이 교양학습만화의 형식을 취한 작품은 그 유형을 구분하지 못 할 만큼 다양한 진영에서 제출되고 있다.
* 장훈의 일대기를 그린 허영만의 '질수없다', 광개토대왕 담덕의 청년기를 다룬 '태왕북벌기'
2) 있을 법한 사건과 해석에 근거한 만화
시대만화와 판타지만화는 해석적 측면이다. 시사만평이 단일 사건 또는 사안에 집중했다면 시대만화는 일정한 시기를 두고 벌어진 사건들을 구조화하고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특정한 의미를 전달한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가상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시대극화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극화’는 일본에서 만화라는 용어가 지닌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제출된 대안적 개념이다(역사만화 역시 역사극화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 김주영의 대하소설을 극화한 이두호의 '객주', 역사적 사실과 보편적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정보 전달에 집중하는 이원복의 '먼나라이웃나라'
데츠카 오사무의 명랑만화 같은 화풍이나 연출이 만화형식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를 제한하고 독자층의 확장을 막는다는 비판과 함께 사실적 화풍과 연출을 내세운 시라토 산페이 등의 만화가가 등장했다. 이들의 작품이 역사적 사건과 시대적 배경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극화는 시대극화라는 인식과 함께 일반명사화 됐다. 일본의 극화적 전통은 60년대 우리만화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담, 괴담 유의 만화가 일본 것을 답습하는 것이었다면 전쟁담이나 영웅전기 유의 만화는 이를 우리식으로 재해석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신문 창간과 함께 시대극화가 인기 아이템으로 등장했고 사회문화적 관심 속에 연재됐지만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급속도로 위축됐다. 이는 시대극화가 주로 부패권력에 맞서 싸운 민중영웅, 의적 등을 다룬 탓도 있겠다.
역사극화 분야에서 갑옷과 장수들을 그렸던 이들은 시대극화에서 더 폭발적인 전쟁씬과 정쟁구도를 펼치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갑옷과 바지저고리를 벗어던진 현대시대극화의 주역들로는 허영만, 탁영호, 오세영, 이희재, 박흥용을 들 수 있다. 사극이 부패권력에 대립하는 전쟁영웅을 주인공으로 했다면 현대극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성찰적 삶에 주목했다.
시대극화는 역사극화가 부족한 사료의 문제 등으로 정면에서 다루지 못한 소재를 거침없이 끄집어냈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는 기록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있고 시대적 흐름이나 맥락과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시대극화는 특정 사료들을 중심으로 해석된 역사를 구성해낸다. 기자나 역사가의 입장보다 만화가적 상상력이 주가 된다.
* 판타지시대극화로 구분될 수 이는 김진의 '바람의 나라'
판타지만화는 역사극화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대극화보다는 더 상상적 측면에 위치한다. 시대극화가 역사적 사실 또는 사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판타지만화는 고대 사람들의 문화적 가치관을 근거로 한다. 신화, 설화, 전설 등 역사적인 사료로 평가받지 못한 기이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를 그린 이현세의 걸작 <천국의 신화>가 역사극화나 시대극화가 아니라 판타지만화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사료에 근거한 창작극인 탓이다. 한국적 설화를 중심으로 정형화된 역사적 인물을 매회 등장시키고 있는 양경일의 <신암행어사> 등도 이 같은 맥락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 블로그 메인에 소개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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