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시험이 끝났고 어떤 이는 새로운 시험을 준비해야 할 때다. 모두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차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차이를 얻고 차이를 인정하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 시험 아닐까.
시험은 개인의 성취도를 확인하는 수단이고 사회적 성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공인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일 스스로 시험에 뛰어든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낭만파들은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을 것이다. 반면 눈을 좀 뜬 현실파라면 이 시스템을 적극 이용하는 방식을 찾는다.
일본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의 ‘꼴찌, 동경대 가다!’는 시험이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주인공들의 열혈일기다. 현실적인 방식으로 성장과 성공을 찾아가는 낭만파들의 도전기다. 인생의 행방이 바뀔 만한 최초의 시험이자 최고의 시험으로 평가받는 대학 입시가 도전 과제다. 그것도 일본 최고 학파를 형성하는 도쿄대를 노린다.
폭주족 출신 변호사로 낙인찍혀 별 볼 일 없는 신세가 된 사쿠라기 겐지는 류잔고등학교의 파산관리인을 맡게 된다. 빚더미에 깔려 파산한 이 학교는 꼴찌들만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때문에 학생부터 교사까지 모두가 패배감에 젖어 있다. 사쿠라기는 이 학교의 남은 재산을 처리해 빚을 청산하는 대신 명문학교로 재건할 계획을 세운다. 폭주족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고 자기 능력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긴 것이다.
이익을 위해 학생과 선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면 결과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찾을 수 있다는 상호주의적 관점이 명확하다. 그는 근면이나 성실 같은 관념적 교훈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학생을 최고 명문대에 보냈는지가 교육 소비자가 원하는 관심사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목표도 수치화했다. 5년 안에 도쿄대 100명 보내기. 첫해 목표는 남녀 1명씩이다.
최근 이 만화의 한국어판 21권이 출판됐다. 193교시로 구성된 방대한 이야기의 완결편이다. 작품 속에는 동경대 입시를 통과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빼곡하다. 이 작품은 일본 TBS에서 ‘드래곤 사쿠라’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방송되던 해에 실제로 동경대 입시 지원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꼴찌들이 이 작품을 통해 실제로 동경대에 합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쿄대를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은 심어 줬다.
괜한 자신감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시험에 도전하지 않는 것처럼 무의미한 삶도 없고 자신 없이 치르는 시험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시험이 현실이라면 자신감이라는 무기는 꼭 챙겨 가야 한다. 새로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사쿠라기의 코칭을 받아라.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동아일보, 2007.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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