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 연우의 핑크레이디
웹툰에서 영상과 노래가 흘러나오는듯…
2007년 만화대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대상은 이현세의 골프만화 ‘버디’가 차지했다. 온라인투표로 진행된 인기상은 박소희의 ‘궁’이 3년 연속 수상할 것으로 기대됐다. 기실 ‘궁’은 웹툰 열풍 속에서 출판만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상징적 작품이다. 그런데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웹툰의 대표작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가 6만5000여 표로 1위에 올랐고 ‘궁’은 8000여 표를 얻는 데 그쳤다. 드라마화된 출판만화의 인기와 누리꾼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웹툰이 격돌해 ‘웹툰 대세론’을 확인해 준 셈이다.
전통적인 출판만화의 위축 속에 웹툰 붐이 지속되면서 신인 만화가의 등장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연우의 ‘핑크레이디’는 단연 돋보인다.
이 작품은 남자 친구와의 재회를 소재로 한 흔한 이야기다. 누리꾼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주인공인 겨울이와 현석이를 만나게 하고 헤어지게 하는 장치도, 갈등을 부추기는 인물이나 상황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진부한 드라마가 묘한 집중력과 기대감을 부른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보는 내내 행복하다. 예쁜 그림 탓일까? 남자 주인공은 그림 잘 그리는 미대생에, 재즈바에서 일하는 바텐더다. 잘생겼지만 순종적이다. 여자 주인공은 국민 여동생급 ‘큐티걸’로 공격적이지만 덤벙댄다. 보호해 주고 싶은 여자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영상도 떠오르고 음악도 흘러 다닌다. 섬세한 일러스트 같은 그림이 독자의 기억 속에 담긴 어떤 이야기의 긴장감을 불러낸다. 주인공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아프고, 눈만 감아도 시간과 사건이 저절로 흘러가 부족한 서사를 채운다. 이미지만 난무하는 뮤직비디오 같은데 알콩달콩한 감동이 이어진다.
만화는 동적 영상도 소리도 없는 매체다. 그래서 인터넷과 게임영상시대에 예전과 같은 공감대를 이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상과 소리를 불러낸다. 평면적인 만화가 영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다. 명화의 감동을 상황에 맞춰 불러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흐와 뭉크, 클림트와 무하가 그린 명화를 구석구석 잘도 배치했다. 연정을 품고 있는 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들켰을 때 한쪽 벽에 뭉크의 ‘절규’가 걸려 있다. 아르누보풍 명화의 장식미를 패러디한 대목에서는 만화적 형식에 대한 묘한 우월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연우의 ‘핑크레이디’는 네이버의 만화코너에 연재되고 있다. 조석과 김규삼 같은 헤비급 유머 폭탄을 찾아낸 포털 사이트에서 또 한 명의 스타 만화가를 만들어 낸 셈이다. 최근 출간된 단행본도 화제다. 추운 날씨를 훈훈하게 할 만큼 뽀얀 그림 탓에 예쁜 일러스트집 같은 느낌이다.
박석환(만화평론가, http://www.parkseokhwan.com)
동아일보, 박석환의 만화방, 2007. 11. 24
>>후기...
동아일보에 '박석환의 만화방'을 연재한 것이 2006년 11월 18일자부터였으니... 1년이 넘었다.
신문연재는 98년 국민일보에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가 처음이었는데...
15회까지만 했다. 매주 색다른 장르만화와 트랜드를 짚어주는 콘셉트였는데 한승희로 시작해서 박무직으로 끝났다.
직장 때문이기도 했고 첫 평론집 <만화시비탕탕탕>을 준비하면서 시간도 쫓겼고, 장르만화는 한바퀴 돌았다는 완주(?)감도 있어서 중단했다.
두번째는 2001년이다. 그동안은 영화배우 출신 사업가였던 조용원씨가 창간한 '씨네버스'에 '애니넷칼럼', '만화넷칼럼', '캐릭터칼럼' 등을 1년 여 간 연재했다. 직장일과 두번째 평론집 <잘가라종이만화>를 작업하면서 지인에게 코너를 넘겼었다.
그 후 평소 흠모(?)하던 추리소설가이자 언론경영인 이상우(국내 스포츠신문 모델을 수립한 개척자다)씨가 또 하나의 스포츠신문 굿데이를 창간했다. 황색저널리즘을 전면에 내세운 파격적 행보를 보여줬는데...
나도 여기에 동참했다. 물론 평소 애정(?)을 담고 있던 분야기도 했고
인터넷 세상이 열렸음에도 케케묵은 선정성의 잣대로 창작을 억압하던 시기이기도 했던터라
'클릭!월드에로카툰'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시작했다.
매주 한편의 국내외 에로만화를 소개와 성풍속과 관련된 가십이라는 두가지 콘셉트를 유지했다.
30회 분량을 고민하고 있었고... 성인만화 소개를 중심으로 단행본도 구상했었는데...
하다보니 좀 부끄러워졌던지 그만뒀다. 첫번째 공저였던 '만화가이드2002' 작업도 선뜻 중단을 선언하게된 배경이다.
세번째는 2003년이다. 평소 만화관련 기사 작성에 코멘트를 요청했던 기자의 요청으로 한국일보에 '이 만화를 발견하다'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시작했다. 코믹스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되던 시점이었다. 디지털만화, 인터넷만화의 붐을 예고하고 그 분야에서 뛰었던 때문인지... 코믹스시장의 열정을 재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코믹스의 재발견이라는 콘셉트로 반년간 29회차까지 연재했다. 9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진짜사나이로 시작해서 차카게살자로 마무리했다.
30회차까지 가고 싶었지만 코믹스만화의 새로운 도전을 희망한다는 마지막회분량은 곧이어 출간된 세번째 단행본 <코믹스만화의세계>에서 해버렸기 때문에 끝내기로 했다.
네번째가 2006년에 시작한 동아일보 연재다. 2004년부터 대학원에 진학했던 관계로 연재원고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졸업 후 다시 시작한 셈인데... 사실 좀 썰렁했다.
처음 만화평론을 시작했던 97년만 하더라도 90년 초입부터 불붙었던 만화붐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물론 하락의 징후들이 발견되던 시점이었고 이른바 끝물이다. 물론 그 때문에 평론의 필요성이 더 강조됐던 시기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만화현장은 여전히 뜨거웠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직감했지만 산업측면에서는 새롭게 출연한 만화대여점이라는 시스템에 올인하기 시작했고 초대형 만화대여점 체인사업체들이 생기면서 만화계에도 광고주가 생겼다는 신문과 잡지의 판단이 뒤따랐다. 문화지면이나 책섹션에 살짝 끼어넣던 만화코너가 독립적인 지면과 잡지창간으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동업자도 꽤 됐었다.
그런데 2006년은 달랐다. 현장의 동업자는 사라지고 연구자들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마니아들이 담론을 생성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만화의 생산력이 급감한 시기였다.
고민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 직장을 옮긴 탓에 주간 연재가 부담스러웠고 동아일보 연재 결정을 하기 전
민예총의 컬쳐뉴스에 월간 연재를 결정한 터라 격주 연재를 하기로 했다.
독립적인 만화지면이 아니라 북섹션이었지만 동아일보가 만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던 터라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원칙적으로 쓰지 않았던 일본만화 1편과 우리만화 1편을 번갈아 소개하기로 했다.
북섹션인 터라 만화작품 자체보다는 주인공, 소재, 스토리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주목하는 칼럼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현재까지 24회차 연재중이다. 격주다 보니 부담도 적었던지 1년이 넘었다.
신문사에서는 분기별, 반기별로 지면 개편회의를 하는 모양이다.
중간에 콘셉트를 바꿔서 만화계 내부 이야기도 좀 담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잘됐다 싶어서 만화계 이야기를 좀 풀었더니 초기 콘셉트가 더 좋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만화계 이야기가 더 쉽지만 이전 콘셉트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다.
아래는 오랜만에 수정 요청을 받은 원고다.
웹툰을 중심으로 한 다음과 네이버의 대립을 드러낸 원고였는데...
네이버에 너무 편중됐다는 데스크의 지적이 있었다.
그런가 싶어서 출판만화와 웹툰의 대립으로 방향을 조정했다.
위에 원고는 실제 게재된 것이고 아래는 수정 이전 버전이다.
최근 '만화리뷰쓰기'라는 단행본을 쓰고 있는데... '만화리뷰의 이론과 실제' 쯤 되는 실용적 글쓰기 시리즈 중 하나다.
예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담아둔다.
핑크레이디 그리고 네이버만화 코너
2007년 만화대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온라인투표로 진행된 인기상은 박소희의 <궁>이 3년 연속 수상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예상을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네이버에서 투표를 한 탓도 있지만 네이버만화 코너에 연재 중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가 6만5천 여 표로 1위에 올랐다. <궁>과의 표차는 8배다. 드라마 화 된 원작만화의 인기와 온라인에서의 인기가 격돌한 셈이고 ‘웹툰대세론’이 또 한번 입증 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웹툰 판을 장악하고 있던 미디어다음의 만화세상 코너가 네이버의 제체기 한번에 쫓기는 꼴이 됐다는 점이다.
올해 네이버만화는 출판만화의 온라인 서비스를 확대해 웹툰 섹션과 도전만화가 섹션을 신설했다. 웹툰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온 다음, 파란, 엠파스에 비하면 초라한 출발이다. 한동안 색다른 만화가를 찾지도 못했다. 이미 몇 차례의 웹툰 붐과 함께 대기 중이던 만화가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버의 사용자층과 유입력은 상상이상이었다. 더 없을 것 같던 조석과 김규삼 같은 헤비급 유머폭탄을 찾아냈고 매일 새로운 선수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다음만화의 서사성이 네이버만화의 엽기성에 눌린 결과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우의 ‘핑크레이디’는 이 같은 편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남자친구와의 재회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이다. 주인공인 겨울이와 현석이를 만나게 하고 헤어지게 하는 장치도, 갈등을 부추기는 인물이나 상황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진부한 드라마가 묘한 집중력과 기대감을 부른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보는 내내 행복하다. 예쁜 그림 탓일까? 백마 탄 왕자는 아니지만 그림 잘 그리는 미대생에 째즈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바텐더가 주인공이다. 잘생긴 주제에 순종적이다. 여주인공은 국민 여동생급 큐티걸로 공격적이지만 덤벙댄다.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영상도 떠오르고 음악도 흘러 다닌다. 섬세한 일러스트 같은 그림이 머리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의 긴장을 불러온다. 주인공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아프고, 눈만 감아도 시간과 사건이 저절로 흘러가 부족한 서사를 채운다. 동적영상도 소리도 없는 만화라는 매체의 현재적 입장과 시도가 드러난다. 평면적인 만화가 영상과 싸워 이 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결과겠다.
명화의 감동을 상황에 맞춰 불러낸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고흐와 뭉크, 클림트와 뮈샤가 그린 명화를 구석구석 잘도 배치했다. 연정을 품고 있는 이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들켰을 때 한 쪽 벽에 뭉크의 ‘절규’가 걸려 있는 식이다. 아르누보풍 명화의 장식미를 패러디 한 대목에서는 묘한 미적 쾌감을 전한다. 최근 출판된 단행본에는 부록형식으로 명화 해설 페이지가 수록됐다. 엽기천국이던 네이버만화가 매우 전략적인 만화가를 불러낸 셈이다. 다음만화가 뒤돌아봐야 될 대목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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