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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의 만화방]샐러리맨의 애환, 아빠의 눈물
문학 하는 사람치고 시를 동경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처럼 만화하는 사람은 카툰을 동경한다. 카툰은 만화라는 표현 형식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 한 칸 만화 또는 한 장 만화를 뜻한다.
단순한 약화(컷)여서도 안 되고 해학적으로 표현된 인물(캐리커처)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여러 개의 칸과 장을 넘나들며 이야기(코믹스)를 전달해서도 곤란하다. 한 칸 또는 한 장이라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축소 과장 풍자 해학 등으로 ‘순간적 몰입과 충격적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하는 ‘최소한의 만화’다. 그래서 만화를 처음 배우는 사람도, 만화를 떠나는 사람도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이 카툰이다.
조관제는 김마정 사이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카투니스트다. 젊은 시절 소년들의 로망을 부채질하는 극화를 그렸고 기지 넘치는 화풍으로 어른들을 위한 성 풍속사를 풀어내기도 했다. 저돌성이 요구되는 시사카툰, 정보성이 요구되는 일러스트카툰도 두루 섭렵했다.
하지만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이라는 자리와 만화행정가의 활동이 더 부각되면서 과거의 만화가로 기억되는 듯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삶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 담긴 ‘조관제표 서정카툰’을 틈틈이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도 연다. 31일∼11월 6일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02-733-6469).
스마일 풍선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빌딩 숲으로 낙하하는 ‘샐러리맨’ 연작, 망치로 머리를 때려 별을 만들고 가족들의 밤길을 안내하는 ‘아버지’ 연작, 라면 먹는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저마다 식탐을 드러내고 있는 ‘식구’ 등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희생적 아버지를 다시 보여 준다. 또 ‘남자의 무게’ ‘결코 포기할 수 없어’ 등에서는 가정에서 작아지는 남성도 풍자한다.
이런 작품들은 가부장적 아버지의 케케묵은 시선과 성적 농담으로 인식될 법도 하다. 하지만 희생한 아버지와 핍박받는 남성이 파노라마를 형성하며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인 가족의 문제도 일깨운다. 이 전시회는 환갑 기념전의 성격도 짙다. 그런데 37년간 작가 생활을 기념하며 내건 38편의 작품이 모두 신작이다. 형식도 극과 극을 오간다. 종이에 먹과 수채물감을 이용한 전통적 방식이 있는가 하면 컴퓨터 채색이나 아크릴 물감을 이용한 낯선 작품도 여럿이다.
대중이 기억하는 자기 스타일을 더 견고하게 내보이는 것이 환갑을 맞는 작가들의 일반적 태도라고 한다면, 이 전시는 반대 방향에서 ‘조관제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다. 단 한 번의 눈 맞춤으로 색다른 깨달음을 제공하는 그의 카툰집도 기대해 본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게재매체. 동아일보, 200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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