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테츠야 츠츠이의 <리셋>, 동아일보, 2007.09.29


‘세컨드 라이프’가 인기다. 두 번째 삶, 노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린든랩사가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 이름이다.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게임(MMORPG)’이라는 복잡한 장르의 이 서비스는 3D로 현실의 삶과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한 금융전문가의 설명처럼 사용자가 직접 집을 지어 사회생활을 하고 회사를 차려 경제활동을 하는 가상현실 세계다. 이 서비스는 가상공간과 체험을 판매하는 미래형 지식산업의 전형이지만 부정적인 요소도 만만치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널리 알려진 ‘리셋 증후군’이다.

테츠야 츠츠이의 만화 ‘리셋’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가상현실게임과 리셋증후군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신의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리셋하십시오’라는 섬뜩한 명령어와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자살한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꿈꾸던 히토미의 남편도 이 중 한 명이다. 남편은 ‘디스토피아’라는 이름의 ‘1인칭 온라인 슈팅게임(FPS)’에 빠져 있었다.

이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감당하기 힘들 때, 이를 게임 상황인 것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스스로 리셋(자살) 버튼을 누른다. 연쇄 자살 사건이 벌어지자 언론의 관심이 이 아파트에 집중돼 게임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경찰청 정보통신국은 이 게임이 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동하게 만들어서 사용자를 자살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단서를 포착하고 전문 해커 슌스케를 파견한다.

이 작품에는 ‘세컨드 라이프’의 대중화를 예견이라도 한 듯 동일한 개념의 게임 제작 서비스가 등장한다. 개발자가 아니라 사용자 수준의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현실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슈팅게임을 만들 수 있다. 자살을 부르는 게임 ‘디스토피아’는 전신화상 장애인으로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는 히로키가 제작한 것이다.

아파트 입주자들은 히로키의 음모와 상관없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동일한 곳에서 옆집 사람을 살해하는 게임을 즐긴다. 게임은 곧 현실이 되고 순스케와 히로키는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대립한다.

실제로 ‘세컨드 라이프’에는 사용자들이 제작한 수많은 슈팅게임이 플레이어들 간의 총격전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히토미의 남편을 통해 ‘상식적이고 분별 있는 인간은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우리의 뇌가 가상공간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정보를 보정하기 때문’에 현실보다 ‘보완된 세계’를 더욱 현실처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이탈행동과 사회문제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가상현실게임은 사용자의 몰입도에 따라 세컨드가 아니라 퍼스트로 인식될 수 있다.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삶이라지만 가상현실 시대에 리셋은 시작이 아니라 종결이다. 리셋에 이르지 않고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비법은 없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박석환의 만화방, 동아일보, 2007. 09. 2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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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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