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오쿠 히로야의 ‘간츠(GANTZ)’는 기이한 상상력과 파격적인 비주얼이 빛나는 작품이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노숙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15세 소심남 ‘쿠루노 케이’와 동창생인 의협남 ‘카토 마사루’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이들은 간츠라 명명된 공간으로 전송된다.
이들은 이 시스템으로부터 해방(자유), 무기(권력), 재생(부활)이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제시된 적을 사살하는 롤플레잉 액션 게임을 펼친다.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첫 번째 시즌이 모두 20권 분량으로 최근 끝났다.(일본 현지에서는 전혀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두 번째 시즌이 연재 중이다).
간츠는 ‘판타스틱4’나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전투부대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장르는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을 한 팀으로 등장시킨다.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조합해서 문제 해결 방식을 찾도록 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셈이다. 미국의 전대물이 인종주의에 입각한 힘의 조합을 다룬다면 일본의 전대물은 혈연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서적 조합을 다룬다. 하지만 팀워크의 가치를 중시하고 동기부여를 통해 문제해결 방법과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전대물의 폭력성과 상업성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하지만 이 장르가 사랑받는 것은 아이들의 리더십과 사회성을 키워 준다는 근원적 가치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간츠는 이 같은 전대물의 장르적 특성과 원칙을 골격으로 한 성인 만화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낯선 공간에 떨어진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 다른 이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의협남은 “자유롭게 되고 싶은 녀석은 내 말을 들어!”라고 외치며 적을 물리치고 현실세계로 귀환한다. 영웅의 귀환은 그곳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 반면 소심남은 불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승리의 희열을 동경한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한 소년은 점점 영웅의 모습으로 변모하지만 여전히 가상현실일 뿐이다. 온라인게임상에서 1만 대군을 거느린 군주가 현실에서는 PC방 폐인에 불과한 것처럼 케이는 낯선 공간에서만 영웅이다.
이야기는 적이 외계인에서 흡혈귀로 바뀌면서 가상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 넘어온다. 이제 케이에게 필요한 것은 가상공간에서의 역할과 행동을 현실공간과 동기화하는 것이다. 종극에 케이는 자신에 대한 신뢰와 열정으로 두려움을 털고 “나는 간츠 팀의 리더다!”라고 소리친다. 이 작품의 본질적 매력과 작가의 의도가 빛나는 지점이다.
작가는 케이와 독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PC게임처럼 작품의 배경과 공간만을 지정할 뿐이다. 독자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조정자임과 동시에 상호작용자가 된다. 아트워크 전반에 컴퓨터 그래픽 도구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소재부터 서사구조까지 완벽하게 모양을 갖춘 본격 디지털서사만화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동아일보, 2007. 03. 1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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