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만화잡지가 창간됐다. 그것도 아동, 청소년 대상의 만화잡지가 아니라 가판 판매를 중심으로 한 성인만화잡지이니 성인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다. 문화와 만화의 중심을 표방하고 시리즈만화라는 새로운 컨셉트를 내세운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한겨레> 신문은 영화잡지 『씨네21』을 낳고 『씨네21』은 만화잡지 『팝툰』을 낳은 격이니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한겨레> 신문과 『씨네21』은 창간부터 지금까지 만화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왔고 그만큼 많은 지면을 통해 새로운 만화작품과 만화작가, 평론가와 칼럼리스트를 발굴해왔다. 애정과 관심이 높았던 만큼 실천적 노력과 관련 사업에 대한 의지도 높았다. 물론 우리 만화계도 그만한 성과로 답해왔다. 이런 전철이 있었기에 『씨네21』판 만화잡지의 창간이 가능했을 터다. 역할도 있었고 답변도 받았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만화의 핵심 소비층과 새로운 성인만화잡지
이두호, 「가라사대」
일반적으로 각급 미디어는 내용과 상관없이 핵심 소비층이 존재한다. 만화의 경우는 핵심 소비 연령층이 소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년 > 아동 > 순정 > 청소년 > 성인 > 여성 > 준성인 등의 순으로 소비 연령층을 구분했고 이를 기준으로 매체를 창간해왔다. 사실 성인만화잡지의 부흥기는 소년만화잡지밖에 없던 시절에 이탈 독자층과 신규 독자층을 창출해서 얻은 성과였다.
성인만화잡지 시대를 연 『만화광장』, 이를 주간 시장으로 확대한 『주간만화』 같은 전설적인 만화잡지는 그 같은 역할에 충실했고 기록적인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이른바 영지라고 불렸던 청소년지와 여성만화지, 준성인지 등은 이탈 독자층을 붙들고 시장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이 강했다. 독자층을 세분화한 기획은 소비를 집중시켜 왔던 핵심 매체의 위축으로 이어졌고 한 출판사의 다른 잡지들이 유사 독자층을 놓고 내부 경쟁을 벌이도록 만들었다. 세분화가 개념적으로는 만화문화의 외연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지만 내실을 기하는데 실패했고 그만한 규모의 경제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좌초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만화잡지 위축기, 성인만화잡지 부재기에 성인이라는 신규 독자층을 핵심 소비층으로 삼은 『팝툰』의 전략적 접근은 나름의 성공 방법론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어 만화잡지를 뗀(?) 이탈층을 재집결시키겠다는 의지다.
『팝툰』 창간호를 펼치니
창간호를 놓고 『팝툰』을 정의하자면 격주간 만화전문잡지로 봐야겠다. 성인 취향의 연재만화와 단편만화 그리고 만화관련 뉴스를 담고 있다. 그런데 기대가 큰 때문인지 아쉬운 부분이 많다. 만화잡지계의 현재가 넉넉하지 못한 만큼 더욱 치열한 논의와 분석, 냉철한 기획과 시도가 필요했음에도 첫 호의 결과는 평이하다 못해 부실해 보인다.
김연서, 「내 귀에 도청장치」
만화계의 새로운 담론을 이끌겠다는 의도와 달리 기획기사는 기본적인 정보 오류가 많았고 우리만화사에 대한 제한적 인식도 아쉬웠다. 시리즈만화를 내세운 연재만화 편집방침은 그 컨셉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고 14명의 만화작가는 나름의 공력과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 분명함에도 또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야사를 소재로 한 이두호의 「가라사대」는 정년 퇴임으로 대학 강단에서 내려온 이두호의 복귀작 치고는 너무 가벼운 워밍업이다. 홍승우의 「즐거운 조이보」는 칸을 늘린 부담이 보이고 김연서의 「내 귀에 도청장치」는 아트웍이 덜 정비되어 있다. 종이출판 진영보다 온라인에서 더 활발한 활동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는 Agust25, 마인드C 등의 작품은 모니터에서의 파격을 전하지 못한다. 석정현의 작품은 그가 지닌 선명한 아우라를 비켜가 있다. 물론 어떤 매체에서도 자기 빛깔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매체를 해하지 않는 작가도 있다. 이경석의 「전원교향곡」이 지닌 해학성과 장경섭의 「아내의 지중해」가 보여준 통찰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작품이다.
만화에 대한 높은 인식과 그간의 역할, 전문 편집진을 주축으로 설정된 컨셉트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자람이 없다. 『씨네21』이 만화전문편집진을 영입해 새로운 성인만화잡지를 창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행성을 담보하고 있는 기획 아닌가. 하지만 면면을 살피자면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예고편에서 본 액션장면이 전부인 저예산 허리우드 영화를 본 느낌이다. 구조는 좋은데 알맹이가 없다. 왜 그럴까?
작가 관리, 편집, 제작은 성공적이지만…
어쩌면 우리 만화계는 시장의 혼란만큼이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혼란도 겪고 있는 것 아닐까. 가령 언론은 우리 만화계의 문화산업적 역할과 세계적 경쟁력에 대해서 말한다. 눈에 띌만한 대중적 흥행 실적과 사례(만화원작 드라마 <궁>과 영화 <타짜>의 흥행, 인터넷만화와 교양만화 시장의 급성장, 다양한 우리 만화의 해외 수출 실적)도 제시한다.
이들은 만화라는 형식과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집단(작가, 기획자, 편집자)과 노선(코믹스계, 대본만화계, 온라인계, 서점만화계)에서 생산해 낸 결과물들이다. 더군다나 그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은 한국어판 일본만화 시장이다.
이경석, 「전원교향곡」
언론과 대중은 ‘만화’라는 장르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서 인식하지만 만화계 내부에서는 각각의 시장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마치 다 같은 연기지만 연극, 영화, TV드라마가 다르듯이 다 같은 만화로 보이지만 코믹스, 일일만화, 교양만화, 인터넷만화가 다르다. 단순히 매체와 유통환경이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성과 기법이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르다. 각각의 환경에서 일하는 작가가 다르고 기획자와 편집자가 다르다. 그들이 지닌 만화에 대한 철학과 독자에 대한 태도도 전혀 다른 층위에서 존재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장에 대한 규모 조사는 전체 만화시장을 놓고 하고 사례연구는 각각의 영역에서 성공한 아이템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조직과 인력, 작품과 작가를 포함한 사업기획은 특정 영역에서 성장한 자원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의 층위를 넓히더라도 편집진의 층위를 넓힌다는 것은 투자 규모와 조직구성상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다보면 작가 관리와 잡지를 만드는 편집, 제작은 성공하더라도 잡지 안의 알맹이인 작품을 만드는 부분에서 기획자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각기 다른 영역의 작가들과 독특한 개성의 작품들에 저마다의 특징을 부여하면서 하나로 아우르는 데스크의 역할 역시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이 선행되지 않으면 만화시장에 대한 목표수치와 필드는 크게 보이지만 결과를 놓고 방법론을 분석해보면 좁아터진 울타리 안에서 뛰는 격이 된다. 거기에 특화성, 차별화 등 등을 내세우다보면 결과물은 삼천포를 훨씬 지나쳐 간다. 좋은 브랜드 이미지, 검증된 전문 인력, 우수한 작가진영을 구축하고도 만족시켜줄 만한 독자층을 이끌어 내지 못하게 되고 사업계획 수립 단계에 제시했던 목표수치를 밑도는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다.
쇼를 하라, 쇼가 전부가 아니라면
『팝툰』 2호 표지
격주간 만화잡지 『팝툰』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다. 하지만 부족하다. 국가지원사업이라는 울타리의 한계와 단기간에 성과를 내놔야 하는 부담감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편집진에게 충분한 역량이 있음을 안다. 이것이 기회다. 그러나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좀 더 고민해야 한다. 『팝툰』 창간호는 우리만화계의 광대한 지형과 깊이 있는 자원 그리고 내부 역량을 모으는 노력에 미진했다. 만화독자조사는 잡지에 실을 기사를 쓰기 위해 한 것은 아닐 터. 독자의 요구를 들었으면 잡지가 가야할 길을 정해야 한다. 독자의 요구가 명확하면 그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우리 만화계의 자원들을 재집결시키고 그들의 만족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3세대 핸드폰 시장이 열리면서 양대 통신사의 광고전이 치열하다. 광고 카피는 ‘쇼를 하다’와 ‘쇼가 전부가 아니다’로 한쪽은 기술 혁신이 보여주는 생활의 변화에 주목한다면 반대쪽의 항변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광고효과 측면에서는 ‘쇼를 하다’가 더 지지를 받는 모양이다. 전부가 아닌 것에 대한 입장 전달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다. 쇼를 해라. 『팝툰』과 가치 있는 연재만화를 엮기 위한 쇼, 만화작품이 우리의 생활과 사고를 전환시켜줄 수 있는 쇼를 하라. 반대편의 입장이라면 쇼가 아닌 것을 분명히 전달해 달라. 그것이 『팝툰』이 해야 할 노력이다.
* 만화평론가 박석환은 만화로 글을 익혔다. 덕분에 글과 말 외에 만화라는 제3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다. 20대에는 만화를 그리면서 문학을 배웠고, 30대에는 만화평론을 하면서 방송과 미디어기호학을 공부했다. 만화포탈사이트 기획안을 들고 회사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디지털과 콘텐츠연구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게 만화는 종이에 인쇄된 오락물이 아니라 디지털미디어콘텐츠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언어이다. 이를 유효하게 구사한 만화적 표현물을 좋아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컬쳐뉴스, 2007. 03. 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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