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앤디 라일리의 돌아온 자살토끼, 컬쳐뉴스, 2007.04.05


2004년 한국어판이 발매된 『자살토끼』는 무표정한 가수 ‘김C를 웃긴 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2005년 속편격인 『돌아온 자살토끼』가 발매됐다. 전편에서 보여줬던 황당한 자살 방법론과 시도가 웃음을 자아내는 이 작품 역시 폭넓은 독자층에게 읽혔다. 문제는 속편 출간 전후 인기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명인 자살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 팔린다던 유럽만화 그것도 카툰

『자살토끼』는 영국 출신 만화가 앤디 라일리의 작품이다. 앤디 라일리는 영국 만화계와 애니메이션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멀티 크리에이터로 독특한 상상력과 풍자성 넘치는 작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찾아 온 앤디 라일리는 낯선 영국 만화가에 불과했다.

2004년 이 작품의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당시 출판계는 색다른 수입 출판물을 찾기 위한 도전적 시도들이 넘치던 때였다. 이때 출판계에서 찾아 낸 것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고품격 유럽만화였다. 문학과 미술 그리고 영화의 세 지점 사이에 위치해 있는 유럽의 수준 높은 걸작 만화선집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줄줄이 소개됐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다. 

한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영국 만화가였고 만화책 중에 제일 안 팔린다는 카툰집이었지만 그 많은 유럽만화 중에 유일하게 이 작품만이 도서 판매순위 상위권에 제목을 올렸었다. 출판사는 이 여세를 몰아 2005년 속편격인 『돌아온 자살토끼』를 출판했고 2006년에는 『양치기 아빠의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또 다른 형식의 카툰집을 내놨다. 첫 작품에 대한 성과가 좋았으니 후속작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도 그만큼 높았을 테다.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죽기위한 모든 방법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다’는 카피와 함께 시작되는 『자살토끼』는 ‘죽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는 『돌아온 자살토끼』의 회고로 끝났다. 전원이 켜진 토스트 속에서 토끼는 귀만 쫑긋 세운 채 죽으려 한다. 다리미 밑에 누운 토끼가 전기 스위치를 누르려 한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선화(線畵) 속에서 토끼는 죽으려하고 있거나 죽은 듯 멈춰있다. 표지에 쓰인 카툰처럼 본문 내용도 토끼가 시도하는 다양한 자살방법에 대한 것이다. 

토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해준 동물이다. 토끼를 주인공으로 한 대표적인 만화를 외국에서 찾자면 한나 바바라의 벅스버니, 우리나라에서 찾자면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토끼 모두 그리 긍정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버니는 잔꾀를 부리는 캐릭터이고 마시마로는 분별이 없는 캐릭터였다. 마찬가지로 앤디 라일리의 토끼도 긍정적이지 않다. 그나마 버니가 홍당무를 얻기 위해, 마시마로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돌출행동을 한 것과 달리 앤디 라일리의 토끼는 별다른 이유 없이 죽기위해 돌출행동을 한다. 토끼의 자살 시도 방법은 기상천외하면서도 문명비판적이고 기계주의 시대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는 듯 하다. 그러나 두 권에 걸쳐 등장하는 100여 종의 자살 방법은 크게 세가지 정도의 이해를 구하는 선에서 끝난다. 첫째는 그렇게 해서는 죽을 수 없을 것 같다. 둘째는 그런 방법을 써서 죽으려고 하면 아무도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 셋째는 그렇게까지 해서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이다. 

얼핏 작가는 죽기 위한 모든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독자는 이를 즐기고 의미를 찾으려고 웃음을 유발하는 몇몇 장치들을 제거해 본다. 그리고 나서 토끼에게 묻는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어렵겠다. 그런데 왜 죽으려는 거냐? 작가의 의도는 여기에 담겨있다. 독자가 토끼에게 자살의 이유를 묻는 것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자살의 이유를 묻는다. 왜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를 묻는다.


문제는 생명경시 풍조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 교육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과 연예인 자살 그리고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일반인의 동조자살은 아무 상관이 없다. 작품 내용 또한 자살을 미화하거나 실질적인 자살의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살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예방적 차원의 텍스트임에 분명하다. 굳이 연결고리를 찾자면 이은주 자살 전후 이 작품의 한국어판이 출간됐다는 한국적 상황 정도이다. 

문제는 자살 예방적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의 인기와 무관하게 우리 사회의 자살율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인 자살 역시 가수 유니에 이어 탤런트 정다빈으로 이어지면서 꼬리를 물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언론은 이은주 사건 이후 제정된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넘어서는 기사를 앞 다투어 내놓고 있다. 자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추측성 기사와 자살을 선택한 연예인에 대한 미화성 기사, 자살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기한 기사 등이 넘쳐난다. 이는 곧 바로 동조자살 수치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문제는 자살 자체가 아니라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이다.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개선 방안이다. 물론 창작물 자체에 대한 근본적 개선책과 통제방안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텍스트로서의 창작물을 어떻게 읽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미디어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주체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수용자 교육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컬쳐뉴스, 민예총, 2007.02.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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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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