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가 허영만, 김세영 vs 영화감독 최동훈 and 만화평론가 박석환, 랜덤하우스, 2007.4.3

만화 <타짜>의 개정판 발간 기념 대담이 청담동에 있는 와인바 알리고떼에서 열렸다. 


만화가 허영만, 스토리작가 김세영, 영화감독 최동훈씨가 자리했다. 허영만씨는 동아일보에 연재중인 <식객>의 취재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고, 김세영씨는 몇 년 전부터 독자적으로 스포츠투데이에 연재중인 <겜블>의 원고를 마감한 후 자리했다. 최동훈씨는 동명의 영화 <타짜>의 편집을 진행하던 중에 짬을 내서 참석했다.



장소 : 청담동 와인카페 알리고떼

일시 : 2006년 8월 24일 21시

대담 : 허영만(만화가), 김세영(스토리작가), 최동훈(영화감독)

진행 및 정리 : 박석환(만화평론가) 



와인 카페의 타짜들



박 : 허선생님이 추천한 장소라면서요. 대담을 진행하기에는 뭔가 좀 어색한데요. 그냥 쉬고 싶은 느낌의 장소입니다. 선생님 작품에 대한 추억만 이야기하다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웃음). 

허 : 추석 개봉을 앞두고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최감독도 계시고 어렵게 시간내준 김작가도 계신데 옛날이야기만 하면 되나. 영화 <타짜>의 개봉에 앞서 만화 <타짜>의 개정판도 나오고하니까 조용한 곳에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미요(웃음).

박 : <식객> 취재 여행 다녀오시는 길이라면서요. 

허 : 강화도에 갔다가 하룻밤 묵고 오는 길인데 아이템은 비밀이요(웃음). 취재를 같이 다니는 이호준씨랑 택시타고 왔는데 많이 막히네요. 

최 : 주5일 근무로 바뀌면서 목요일 모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촬영 끝내고 편집하다 오는 길인데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김 : 도로도 막히고, 스토리도 막히고(웃음). 스포츠조선에 <타짜> 연재할 때도 꽉꽉 막혀서 풀기 어려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스토리가 잘 나가지 않으니까 나는 도망 다니고 허선생님은 찾아다니고 그랬지요. 그래도 결국 뚫리고, 만나 집디다. 

박 : 그러게요. 시간 맞추기 정말 어려운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활동하고 계시는 분야에서 최고의 꾼들과 함께한 만큼 ‘설계’ 한번 제대로 해서 ‘수술’해야겠습니다(웃음).



우리 만화계의 타짜 _ 만화가 허영만


  허영만(1947년 생)은 74년 소년한국도서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로 데뷔 이후 <미스터손>, <비트>, <카멜레온의 시>,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 <미스터Q> 등 1천 여 편 이상의 만화를 창작했다.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현역 최고의 만화가로 뽑히고 있는 허영만은 현장 취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오락적 감동과 함께 독특한 분야의 지식정보를 담아내고 있다.

허 : ‘수술’은 최감독꺼죠. 최감독 영화 <범죄의 재구성> 카피가 ‘수술하려다 수술 당하는 인생’ 뭐 이런 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 : 사기치려다가 사기당하는 인생! 그런 의미입니다. 사기꾼들이 사기 칠 때 자기들끼리 통하는 은어로 사용한 건데 그냥 창작입니다. 허선생님처럼 직접 취재해서 그들이 쓰는 용어를 적은 건 아닙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런 은어를 쓰면 좋겠다 싶어서 만든 건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화가 결정되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만화 <타짜>를 수도 없이 다시 읽었습니다. 평소에도 허선생님의 다른 작품을 보며 현실감이 만들어내는 박력과 긴장을 느끼고는 했는데 <타짜> 역시 정말 취재가 제대로 된 작품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허 : 분위기만 묘사해주면 되는 글이나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영상과 달리 만화는 이 두 가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해요. 그러다보니 현장 취재에 더 매달리게 되죠. 꾸며서 해야 할 부분과 사실을 보여줘야 할 부분이 따로 있거든요. 

<타짜> 할 때도 은퇴한 타짜를 만나기 위해 김선생과 같이 지리산 끝자락까지 찾아가서 기술 좀 보여 달라고 때 많이 썼습니다(일동 웃음). 그 뒤로도 좀 한다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서 이거저거 사주면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파내느라 고생 많이 했지요. 

박 : 현대만화에서 철저한 고증이나 취재는 하나의 덕목이 되고 있습니다. 만화의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그 상상력을 현실감 있게 만드는 것이 고증이고 취재인 셈이죠. 그래서 현대만화는 단순히 오락적 이야기에 담긴 의미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사실성과 활용성을 극대화 시켜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 안에 지식정보를 담아내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허선생님의 작품 목록을 다시 보면 이 작가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만화계와 문화계를 리드하고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정적 취재를 통해 걷어 올린 상큼한 소재와 노련하게 칼질 된 이야기 구조 그리고 적당히 버무려진 정보와 진한 뒷맛으로 전해지는 감동. 이런 것들이 독자가 원하는 맛이고 허영만표 만화가 지닌 멋입니다.  

김 : 만화에 있어서 허영만만한 타짜는 없지요. 그런데 허선생님 만화의 매력은 역시 연출력이예요. 

영화는 전체 이미지를 흘려보기 때문에 만화와는 전달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죠. 만화도 영화처럼 쭈욱 흘려보기는 하는데 독자가 어떤 정보나 감동을 원하는 장면에서는 분석적으로 보게 되거든요. 

영화의 시간은 감독이 통제하고 영사기가 통제하지만 만화의 시간은 독자가 알아서 페이지를 넘기기 때문에 대사를 칠 때 더 고민하게 되는데 허선생님은 이 조절에 능합니다. 스토리작가 잡는데도 능하고요(웃음).  


타짜의 타짜 _ 스토리작가 김세영 



  김세영은 1986년 허영만의 만화 <카멜레온의 시>의 스토리를 쓰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고독한 기타맨>, <오!한강>, <타짜> 등 허영만 만화의 히트작을 담당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쓴 김민기와 함께 만화가의 그늘에 가려있던 스토리작가의 역할을 공식화 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드라마를 풀어낸다.    

최 : 그런데 평소 허선생님과 김선생님이 콤비를 이뤄서 하는 작품들을 접하면서 두 분의 역할 분담 방식이 궁금하던데요. 작업 방식이랄까?

허 : 전체적인 작품의 소재나 컨셉트는 주로 내가 잡는 편이요. 귀동냥을 통해 얻기도 하고 평소에 관심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수집도 하죠.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내가 그릴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나서 김선생과 소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료도 보여주고 주인공 설정이나 배경도 같이 검토하고 해요. 중간 중간 진행에 대해서 컨트롤을 하기도 하는데 내가 김선생의 스토리를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는 편이지. 

박 : 김선생님과는 <카멜레온의 시>부터 함께 작업하셨지요. 그때가 1986년부터니까 20년이 넘게 공동 작업을 한 셈이네요. 늘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서 또 하나의 장르를 구축해가는 허선생님의 힘도 놀랍지만 이를 받히고 있는 것은 김선생님의 이야기라고 봐야겠죠. 물론 독자가 보는 만화는 허영만의 가슴과 손을 통해 나오지만 그 이면에는 김선생님의 이야기가 있는 거죠. 

김 : ….

허 : 김선생은 자기 이야기만 나오면 묵묵부답이야.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표현이 없어요. 

<타짜> 기획 단계에서 인터뷰를 같이 나갔을 때도 나는 하나라도 놓칠까봐 이거저거 적고 그리느라 난리인데 이 쪽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어요. 이렇게 보면 머리 위에 말풍선이 하나 그려져 있는 게 보여. 딴 생각하고 있는 거죠. 지금도 말풍선 보이네. 딴 스토리 쓰고 있는 거요(일동 웃음).

김 : ….

박 : 김선생님이 늘 저렇게 고민하시니까 허선생님 작품의 구성과 대사가 맛스러운 거겠죠. 

허 : 그렇기는 한데 신문은 일일 마감이잖아. 그런데 김선생이 스토리를 안 보내서 원고 마감하느라 고생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요. 한번은 새벽에 찾아가서 김선생 집 유리창에 돌 던진적도 있다니까(웃음). 그럴 때마다 두 번 다시 김세영이랑은 작품 안 한다고 했는데 또 하게 되고, 또 하게 되고 그러더라고. 마감은 지났어도 제대로 된 게 오니까 하는 거지. 

장편을 끌고 가는 힘이 있어. 다른 스토리작가랑도 일을 많이 했는데 이 친구들은 조금 길어지면 금방 지쳐버려서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 해져요. 

김선생은 좀 늦어서 그렇지 끝까지 이야기의 맥을 놓지 않고 가. 그런데 사람이 워낙 순해서 작품이 독한 면은 부족해. 나는 <타짜>에서 어머니를 해할 만큼 못 된 도박사도 그려보고 싶었는데 너무 순해졌지(웃음). 


도박의 재구성 _ 영화감독 최동훈 


  최동훈(1973년 생)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한 영화감독으로 그해 각종 영화제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대사와 정교한 시나리오, 경제적이면서도 대담한 연출력을 지닌 영화판의 블루칲으로 통한다. 첫 영화 개봉 이후부터 <타짜>를 영화화 할 감독 1순위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박 : 기존에 발간된 <타짜>는 총 4부 41권으로 구성된 대작입니다. 재간본은 22권으로 기획됐다는데 1부가 고니를 주인공으로 한 ‘지리산 작두’, 2부가 고니의 조카 함대길을 주인공으로 한 ‘신의 손’, 3부가 전설적인 타짜 짝귀의 아들인 도일출을 주인공으로 한 ‘원 아이드 잭’, 4부가 박태영을 주인공으로 한 ‘벨제붑의 노래’지요. 1, 2부는 화투이야기고 3, 4부는 카드죠. 1, 2부가 가족사로 인해 화투에 뛰어드는 운명적 드라마라면 3, 4부는 열등감을 넘어서기 위한 반영웅들의 이야기로 충격적인 설정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최감독님이 영화화하는 <타짜>는 1부지요. 

최 : 개인적으로도 4부를 영화화하고 싶었습니다. 1부는 여기저기 떠도는 도박 오디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고, 3부와 4부가 극적 갈등과 대결이 확실해서 영화에 맞겠다 싶었죠. 그런데 허선생님이 ‘뭐 급하다고 4부부터 하냐고 1부부터 차근차근하자’고 하셔서 1부를 하게 됐습니다. 다른 곳에서 4부만 하자고 해서 안 하셨다니까 어쩔 수 없었지요(웃음). 

박 : 1부가 등장인물도 많고 꾼들의 화투는 움직임이 없어서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허 :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섰다는 패를 쪼면서 하니까 그릴 컷이 명확한데 고스톱은 어렵더라고. 

타짜들이 좋은 패를 받았다고 대놓고 좋아할 수도 없고, 기술을 부릴 때도 큰 동작으로 묘사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판권계약하고 최감독 처음 만났을 때 만화랑 똑 같으면 영화 안 보러 간다고 했지(웃음). 

최 : 그 덕에 각색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우선 등장인물을 대폭 줄이면서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수정됐습니다. 아무래도 4명의 메인 캐릭터에 맞추다보니까 정마담(김혜수 분)의 역할이 커졌지요. 그리고 시대적 배경도 90년대 초반으로 바꿨습니다.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 고니의 드라마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는데 아무래도 제가 살아보지 않은 시절이라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좀 더 솔직하고 쿨하게 도박에 기대는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내고 싶었지요. 그래서 강남 부자들과 억대 연봉의 직장인이 생겨나던 시절로 바꿨습니다. 

고니도 원작에서는 좀 뚱뚱하고 우직한 느낌인데 젠틀하게 바꿨어요. 고니(조승우 분)가 미스 캐스팅이라고 인터넷에서 난리라면서 승우씨가 걱정하기도 했는데 제가 원하는 고니의 모습은 딱 조승우였습니다. 편집하면서 보니까 제대로 나왔던데요(웃음). 

박 : 원작에서는 한국전 이후의 이념과 빈부의 갈등이 주인공의 도발을 이끌어내는 장치였는데 이 부분이 사라진 셈이군요. 원작자들께서는 아쉬운 면도 있겠는데요. 

허 : 영화는 영화대로 재밌어야 하고 만화는 만화대로 재밌어야지. 영화 <타짜>가 만화 <타짜>랑 똑 같으면 영화 본 사람들은 만화 안보고, 만화 본 사람들은 영화 안 볼 거 아냐. 원작과 다른 영화가 나와야 원작도 더 사랑받지. 개정판도 내는 마당에(웃음). 

최감독 알기 전에 <범죄의 재구성> 봤는데 재밌더라고. 나중에 영화사 측에서 최감독이 하기로 했다고 해서 맡겨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만큼 신뢰가 있어서 박영석(산악인) 대장이랑 같이 영화에 깜짝 출연도 했어요. 

최 : 허선생님 연기력이 만화 연출력만은 못했습니다(웃음). 이번 영화의 색다른 볼거리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민을 더 많이 했습니다. 다른 게 있어야 하니까요. 


<타짜> 다시 읽기 _ 만화 <타짜> 


  만화 <타짜>는 김세영이 스토리를 쓴 허영만의 대작 도박 만화로 1999년 스포츠조선에 연재를 시작해서 2003년 4부 총 41권 분량으로 완결된 작품이다. 잡지 연재만화가 위축되던 시기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면서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구축했고, 스포츠조선 인터넷판에 올려져 인터넷을 통한 만화보기라는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PC용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으로도 제작됐고 직장인들 사이에 포카 배우기 열풍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신문 연재 완결 이후 같은 매체에 동일 작품이 재연재 되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박 : 허선생님은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재미론으로도 유명합니다. <타짜>는 이 명쾌한 논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법이기는 한데 결말을 알고 있는 작품이 동세대에게 다시 읽히는 이유는 뭘까요. 2003년 연재를 완료한 작품이 2004년 같은 매체에 재연재 되는 것도 그렇고. 

허 : 사실 스포츠조선 재연재 결정은 아쉬운 대목도 많습니다. 동아일보에 신작을 시작했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할 여유도 없었고 신문사 형편도 전과 같지 않아서 새 작품의 고료를 대지 못했어요. 그래서 신문사 쪽에서 <타짜>를 처음부터 다시 연재하자고 하더군요. 이후 돌아보니 여러 신문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던 작품을 재연재 합디다. 

어찌 보면 제가 받는 재연재 고료 수준으로 신작을 할 수 있는 후배 만화가들도 있을 텐데 그런 친구들 길을 막은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합니다. 그런데 미안함 마음 한편으로 후배들이 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어요. 

최 : 저도 넘어야 할 선배들이 많습니다. 후배들에게 넘어야 할 산은 꼭 필요합니다. 

다시읽기와 관련해서는 저도 그 대열에 서있는 사람인데요. 아마 누구 못지않게 반복해서 봤을 겁니다. 전 <타짜>가 담고 있는 것이 도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부사의 진검승부가 아니라 기술 하나로 세상을 얻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인간들의 마음이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겨있기 때문에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할 때마다 다른 매력이 찾아지는 것 같습니다. 

박 : 저는 이 작품의 서사구조가 이탈적 욕망에 대한 가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독자의 허황된 꿈과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을 가져오고 도박이 일상적 유혹이 아니라 특수한 공포로 여겨지도록 해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독서 행위 자체에서 일종의 심리치료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대리체험에 따른 만족이 아니라 다름의 확인에 따른 정화 작용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죠. 

허 :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타짜>하면서도 뭐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예요. 작품을 다양하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피하고 이런 사람은 조심해라.’ 뭐 이런 정도를 전달하고 싶었죠. 

김 : 작품 속 주인공들이 ‘인생은 도박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역으로 ‘인생은 도박이 아니다, 그렇게 살지 마라’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목숨 걸고 승부하는 타짜들이 등장하는데 실력 대 실력의 대결은 승부를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설계가 들어가죠. 설계된 판은 어떤 타짜도 이길 수가 없어요. 


설계와 수술 그리고 우화 


  박석환(1973년 생)은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만화평론가이다. 허영만 데뷔 30주년 기념평론집 <허영만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을 기획 집필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허영만 만화의 팬이다. 출판만화, 만화기호학, 콘텐츠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 : ‘목숨을 걸고 승부하는 타짜도 설계 된 판을 이길 수 없다.’ 이걸 최감독님식으로 이야기하면 ‘수술을 하려는 사람이 수술을 당하는 세상이다’가 되네요(웃음). 

어떻게 보면 도박만화도 일종의 영웅서사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결말은 영웅의 귀환보다는 영웅의 반성과 후회로 종결됩니다. 반영웅인셈이지요. 그래서 <타짜>는 우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 이하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풍자하고 이를 통해 삶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 즉 어른들을 위한 우화입니다. 

길게 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 대담을 읽게 될 <타짜> 독자 분들께 한 말씀씩 해주시죠. 

최 : 만화 <타짜>는 진정한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긴장이 떠나지 않았어요. 재간본은 신문연재처럼 기다리지 않고 한번에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많은 사람이 사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일동 웃음). 그리고 영화 <타짜>는 원작의 설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긴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젊은 이야기꾼의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김 : 도박은 하면 할수록 사람이 고약해집니다. 돈만 있으면 이길 것 같도록 만들어진 것이 도박입니다. <타짜>를 읽고 기술이 아니라 내기나 도박 안하는 법을 배우셨으면 합니다.  

허 : <타짜>는 칼 대신 화투짱을 손에 든 승부사들이 목숨 내놓고 겨루는 대결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막하의 대결이라면 피해야 합니다. 

이길 것 같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상대는 이미 패를 알고 있습니다. 그게 도박입니다. 꽁 돈은 없어요. 

박 : <타짜> 연재 마감하시면서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하셨는데 독자들과 함께 5부를 기대해 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동훈판 함대길(2부 주인공)이나 도일출(3부 주인공)도 궁금하고요(웃음). 

재간본 발행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개봉하는 영화도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을 선택한 독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사진 왼쪽)


타짜, 랜덤하우스, 200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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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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