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지상월·소주완의 '협객 붉은매', 한국일보, 2004.04.20


보는 재미에 집중 '퓨전 무협'


권선징악 단순구조 복잡한 요소 걷어내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 행동이 비록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으나 그 말은 틀림없이 믿을 만하고 그 행동은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며, 한 번 허락한 일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어려움을 무릅써 가면서 남을 도와 죽고 사는’ 이를 유협(遊俠)이라 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협’은 혼란한 시국 탓에 재주는 출중하나 등용되지 못한 별볼일 없는 청춘이다. 무엇이든 남을 도와 명성을 얻고, 제후에게 선택되면 목숨 걸고 충성하는 충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조건 없이 남을 돕겠다고 자처하는 협이 하나의 직업이 됐다. 동일 직종 종사자가 많아지자 이들이 모이는 강호와 객잔은 천하 제일을 다투는 경연과 복수 그리고 사랑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이됐다. 비범한 사람의 성공처세기와도 같은 무협(武俠)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협객 붉은매’는 글작가 지상월과 그림작가 소주완 콤비가 그 협과 그 강호를 소재로 창작한 무협만화이다. 무림 지배를 꿈꾸며 황제의 권위까지 위협하는 무림 최고문파 동백꽃단은 단룡(정천)과 묵룡을 살수(殺手)로 키운다. 단룡은 형 묵룡이 최면제의 일종인 마령신단에 중독된 사실을 알고 동백꽃단을 탈출한다. 단룡은 비학천유엽이라는 문파의 무술을 터득하고 붉은매로 변장해 동백꽃단에 대항한다. 색다른 초식의 무협과 강력한 적 그리고 형과의 운명적 대결이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된다. 

1990년대 초반 우리 만화계는 일본식 만화잡지 출판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다양한 성향의 만화가들을 발굴하는 한편, 장르와 스타일에서도 진일보한 작품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섬세한 원근표현과 동적인 화면연출 그리고 굵고 강한 펜터치로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웅장함을 뿜어냈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골치 아픈 요소들은 거둬내고 권선징악의 단순구조 위에 결투를 통한 반전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보는 재미에 집중한 인기작이다. 물론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그림에 있어서 얼굴은 일본식 망가, 몸과 효과표현은 미국식 히어로 코믹 스타일이라는 지적과 함께 협의 철학과 강호의 시대성이 유효하게 연결되지 않아 장르의 원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비판에 놓이기도 했다. 

92년 만화잡지 ‘코믹챔프’에 처음 발표된 이 작품은 7년간 장기 연재되면서 26권으로 완결됐다. 연재 중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는가 하면, 동남아 각지에 수출되기도 했다. 2003년 세련된 장정의 복간판 발행에 이어 ‘붉은매2’가 ‘아이큐점프’에서 연재를 재개했다. 무림은 일곱 명의 자식을 앞세운 동백꽃단주에 의해 다시 장악됐고, 가짜 붉은매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돌아온 단룡은 또 다시 남들을 위한 싸움판에 나서서 목숨을 내놓는다. 남의 일꾼이 되겠다는 협! 그들에게 또 무슨 의도가 숨어있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4-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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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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