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獨월드컵까지 연재… 작가 10년 걸친 '축구 전쟁'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월드컵 예선 축구 경기 도중 양국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의 불법 이주자들을 국외로 추방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전쟁 발발의 계기가 된 것은 축구였다. 100시간 전쟁으로도 불리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축구는 전쟁이다’라는 말로 기억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경제파급효과가 7조9,000억 원에 이르고 남의 나라 프로 팀에서 활동 중인 브라질 선수들이 본국으로 입금한 돈만 수 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축구는 그 자체로 나라 살림을 일으키기도 하고, 쌈짓돈을 빼오기도 하는 전쟁이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낡은 표어 문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A매치(국가 대표 경기)가 국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점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축구는 나서거든 꼭 이기고 돌아와야 하는 진짜 전쟁이다.
조재호의 ‘폭주기관차’는 축구를 소재로 한 만화이다. 98년 등장한 이 작품은 80년대 중반이후 사라졌던 축구 소재 만화의 전통을 잇고, 이 장르만화의 새로운 중흥기를 예고했다. 선배작가 배금택이 그린 ‘황제의 슛’을 원작으로 했지만 축구만화의 전형을 구축한 이상무의 ‘울지 않는 소년’과도 연결된다 (배금택은 이상무와 문하생 생활을 함께 했다).
두 선배작가의 작품은 비운의 축구황제와 그의 쌍둥이 아들, 그리고 축구협회를 기본 구조로 한다. 이상무 축구만화가 가족애와 화해에 치중한 홈드라마였다면, 배금택 축구만화는 가족 간의 증오심과 승부욕에 집중한 스릴러적 분위기가 강했다. 조재호는 배금택의 이야기와 이상무의 정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액션 소재 연재만화의 내러티브와 동일한 축구의 토너먼트 방식에 집중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강한 팀과 싸워야 하는 이 구조는 선수들에게 마지막 힘까지 요구하는 진정한 승부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속한 팀이 이겨야 다음 경기도 열리고 작품도 계속되는 만큼, 한편으로는 결과가 뻔한 게임이다. 작가는 이를 팽팽한 긴장으로 유지하기 위해 질 것 같은 승리를 연출하기 위해 독자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조재호는 전작 ‘다이어트 고고’ 이후 오직 이 한 작품에만 매달렸다. 현재 18권의 이야기가 진행 중이고,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연재를 이어갈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10년 전쟁’ 끝에 작품 하나가 완결된다. 조재호의 개인적인 전쟁이 꼭 승리로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만화계도 이제 그런 작품 하나쯤 자랑해 볼 때가 됐다. 이상무 만화에서 축구영웅 차범근 정도를 찾을 수 있었다면 ‘폭주기관차’에서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만날 수 있다. 얼굴은 홍명보 황선홍인데 이름은 홍명부 황세홍인 축구 스타들을 찾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4-06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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