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잡지와 동반 쇠락한 코믹스계 만화의 대표작
스포츠지로 옮기며 변색
조직 내 배신자 때문에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됐던 ‘뱃짱파’의 두목 강혁이 출소했다. 수감 중 종교에 눈을 뜬 강혁은 새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고 강 새삼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한참 늙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림 작가 신인철과 글 작가 김기정이 빚어낸 ‘차카게 살자’는 나이든 조직폭력배 두목이 학교에 간다는 독특한 설정과 탄탄한 연출력으로 2001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기존 학원명랑 장르를 엽기코미디로, 학원액션을 조폭액션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이 작품은 장르만화의 새로운 즐거움과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대중적으로도 높은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코믹스계 만화’의 현재를 조망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차카게 살자’의 설정은 123만명을 동원한 정준호 주연의 영화 ‘두사부일체’(2001년)와 동일하다. 영화보다 앞서 나왔지만, 법원은 영화 편을 들었다. 만화잡지 ‘영점프’의 대표작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2003년 잡지가 폐간되면서 ‘불명예 완결작’이 됐다.
이후 한 스포츠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차카게 살자 II’로 연재되고 있다. 청소년 대상의 주간지에서 성인대상의 일간지로 연재 지면이 달라지자, 지면의 성격에 맞춰 작품의 색깔도 상당부분 수정됐다. 단행본 역시 대형출판사에서 중소규모의 만화전문출판사로 옮겨 출간된다. 작품성과 대중성에 있어 부족하지 않은 평가를 받았지만 우울한 기억만 기록된 작품이 됐다.
90년대 이후 등장한 ‘만화전문잡지 시스템 하의 코믹스계 만화’는 ‘10년 호황’을 뒤로 하고 급격한 하강세를 보였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너무 많은 수의 일본만화 수입과 빌려보기 위주의 소비풍토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2003년 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만화는 9,081종 3,335만9,330부가 발행됐다.
전체 발행부수 대비 29.9%로 1등 종목이다. 문제는 발행부수와 판매부수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과 대표적인 대중문화상품이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취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한 작품이 있더라도 시장의 성격에 맞춰 소량생산되고 ‘밀어찍기식’ 다품종생산에 묻혀버린다. 대중성이 높은 영화나 TV드라마에 비해 약자이고 ‘동일성 유지’라는 저작권법 상의 권한도 축소된다. 스포츠신문의 ‘벗기기 부수경쟁’에 이용되어 근본없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호황기의 작품이 폭 넓은 대중을 상대로 한 만화라면 축소지향적 시장에서는 소수에 충실한 도전적 작품이 득세한다. 다양성 차원에서 환영하지만, 주류시장의 축소는 주류만화와 소수만화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 판타지전문 장르만화잡지를 선언했던 ‘주니어 챔프’, 20세 후반의 만화세대를 겨냥한 ‘웁스’, 실험만화를 껴안았던 ‘영 점프’ 등의 폐간은 주류가 소수시장을 겨냥하면서 얻은 뼈아픈 추억이다. 주류는 주류의 방식으로 승부해야 한다. 주류만화는 더 많은 대중의 뜻을 따르거나 이끌어야 한다. 90년대 초ㆍ중반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성공적인 장르만화에는 그 선명한 원칙이 담겨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4-04-2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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