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테판 외에
이 작품은 1922년 세상을 떠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4년에 걸쳐 쓴 원작 소설을 광고아티스트 출신의 스테판 외에가 만화화 한 것이다. 주인공 마르셀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난 시간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난해한 문장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설정 등으로 일반 독자는 물론 전문 연구가들도 이해하기 힘든 작품으로 손꼽힌다. 원작의 유명세에 비해 읽은 독자가 몇 안 된다던 이 작품은 읽기 쉬운 만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이 만화는 원작을 각색해서 축약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원작의 내용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원 문장을 그대로 삽입했다. 지문과 대사가 빽빽해서 만화적 재미는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셈. 그러나 만화작가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 어려운 ‘프루스트 문학에 접근하는 지름길’로는 충분하다. 시리즈 3권 ‘활짝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편은 바닷가 휴양도시 벨벡을 배경으로 아직 미숙하기만한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스테릭스와 골의 12보물/ 알베르 우데르조
프랑스 만화의 대표선수 격인 ‘아스테릭스 시리즈’는 프랑스인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그들만의 기질, 감각적 유머, 역사인식 등을 담고 있는 명작이다. 이미 수차례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소개됐으며 세계인이 함께 읽고 있는 이 작품은 작지만 똑똑한 골족(옛 프랑스의 영토)전사 아스테릭스와 덩치 큰 장사 오벨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만화이다. 유럽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녹여낸 이 작품은 인문교양서로도 분류되며 ‘아스테릭스를 읽지 않고서는 유럽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교양만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모험 스토리를 담아낸 이 작품은 전 세계 42개국에 번역 출판됐으며 2억 8천만 부 이상이 판매됐다. 이 작품의 판매가 부진했던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는 통계가 있는데 이를 토대로 유럽인들은 ‘미국인이 절대로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증거 중 하나가 아스테릭스를 재미있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작 만화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을 읽고나면 미키마우스가 더욱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만큼 공부가 되는 만화이기도 한 까닭. 익숙하지 않은 유럽문화와 용어가 마구 섞여 있어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예쁜 그림과 개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1996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만화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9.11테러 1주년에 즈음하여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미국의 젊은 작가 조 사코가 그린 이 작품은 이스라엘 점령 지구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 거리를 직접 경험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 지역명이다. 1967년 중동전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하면서 종교 인종 자원 등에 따른 분쟁과 전쟁이 끈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이로인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지경이다. 작가는 이 한순간 한순간을 기록하는 한편 언론인으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한다. 스필버그 등의 천재를 배출하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인식과 다르게 테러나 일삼는 무리로 인식되고 있는 아랍인에 대한 편견에 수정을 요구하는 한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과격한 활동이나 과도한 민족주의에도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를 중심으로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랍인들과 유대인 간의 갈등, 유대인을 도왔던 미국과의 오랜 대립구도 등 현대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작품 말미에 수록된 전문가들의 해설이 작품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쥐> <맨발의 겐> 등을 잇는 반전만화의 성격과 함께 코믹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는 오레곤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고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안전지대>(한국어판 미 발표)로 2001년 미국의 유망한 만화가에게 수상하는 윌 아이스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켈트이야기/ 휴고 프라트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만화가 휴고 프라트의 명작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는 70년 대 초 프랑스에 번역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불리는 카레이서 쟈크 라피트가 부상으로 입원했을 때 미테랑 대통령이 직접 선물했을 정도로 유럽인이 생각하는 사랑 자유 열정 등의 감수성을 대표하고 있다. 일종의 모험만화 형식을 뛴 이 작품의 주인공 코르토 말테제는 큰 깃의 해군제복과 모자, 깊은 눈과 늘씬한 키, 귀걸이 등으로 낭만적인 캐릭터를 대표하기도 한다. 1917년에서 1922년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세계 열강들의 전쟁과 암투, 보물 찾기와 모험에의 열정 등이 가득 담겨 있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영국 프랑스 등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한 작가처럼 주인공은 세계를 무대로 한 모험담을 들려준다. 이 시리즈 중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켈트이야기>는 켈트족 마법사들의 세계를 배경으로 작가 특유의 낭만적 모험담을 담아냈다. ‘눈을 뜨고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의 꿈이 언제 끝날지를 모르니까’ 같은 매력적인 대사가 넘쳐나는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본식 판타지만화의 현란한 모험담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좀 낯설지만 세계사 교과서나 백과사전을 읽고 싶은 욕구를 주기도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틴플,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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