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리니지/둠슬레이브/파페포포/20세기기사단 외, 틴플, 2003

리니지/ 신일숙

동명의 온라인게임으로 더 유명한 '리니지'의 원작만화. 작가가 독자들이 보기에 가장 편하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순정만화 마니아가 좋아하는 요소만 담아낸 걸작이다. 90년대 초의 인기작인 만큼 ‘한물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온라인게임의 영향을 빼고라도 여전히 클래식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총 10권으로 완결됐던 작품 분량을 재조정하고 고급스런 표지와 컬러 일러스트 등을 포함해서 새롭게 출판된 것. 아덴 왕국의 데포로쥬 왕자가 어린 나이에 반왕 켄 라후엘에게 옥좌를 빼앗기고 혈맹 5인이 왕자를 몰래 키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력적인 왕자가 흑마술을 쓰는 마녀와 그에게 사로잡힌 왕과 싸워 이기는 권선징악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최근 동명의 온라인게임이 18세 이용가로 등급판정이 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원작은 영웅신화의 전형적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교육적이다.


둠슬레이브/ 형민우

국내 작가의 미국만화계 진출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됐던 작품을 번역 출판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지사정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연재하는 것. 미국은 만화시장 규모에 있어서는 우리의 2배 수준으로 일본에 비해 크지 않지만 전 세계적 배급망을 지니고 있어서 만화수출의 첫 번째 관문으로 통하고 있다. 임광묵 이태행 등의 작가가 이미 진출해 있고 형민우는 이 작품으로 첫 신고식을 하는 셈이다. 미국 출판사의 기획과 참여로 제작된 이 작품은 미국에서는 내년에 출판될 예정이고 그에 앞서 국내에 먼저 소개됐다. 고도의 파괴 훈련을 받은 집단과 이에 맞서는 동방의 무예가 집단의 대결을 다룬 이 작품은 작가의 힘 있는 펜화와 연출, 미국 현지에서 직접 작업한 감각적 컬러링 등이 곁들여져 우리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함이 가득하다. 작가는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악령과 신부의 대결을 그린 판타지물 <프리스트>로 1999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대만 만화잡지에 <태왕북벌기>라는 작품을 연재하는 등 작품성과 상품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파페포포 메모리즈/ 심승현

'누구에게나 평생 혼자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다.' 사람들은 혼자 간직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말하고 싶어 한다. 또 굳이 혼자만 알겠다는 것을 듣고 싶어 안달이다. 이 작품의 작가와 이 작품을 너무나 사랑하는 독자들의 관계가 꼭 그렇다. 애니메이터 출신인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파스텔톤의 색채와 붓자국 느낌이 나는 터치, 그리고 팬시풍의 깔끔한 데생으로 살려냈다. 독자들은 인터넷 사이트 다음의 카페(cafe.daum.net/papepopo)를 통해서 작가의 기억과 이야기를 훔쳐 읽어왔고 무명의 작가는 어느새 이를 책으로 만들었다. 혼자 간직하고 싶다던 것들이 이렇게 나뉘어 지면서 이 책과 작가의 기억은 이 겨울을 춥게 보내고 싶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됐다. 작가는 '사랑이란 더운 여름날 땀 흘리는 남자친구를 위해서 몇 번이고 매점에 가서 미지근해진 음료수를 차가운 것으로 바꿔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사랑이란, 관계란, 추억이란 등에 대해서도 손난로 마냥 따듯한 잠언을 들려준다. 보통의 만화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동화 또는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집은 보는 이를 무작정 행복하게 만들어버린다. 순수한 청년 파페와 여린 처녀 포포가 그려내는 사랑은 그저 그런 생활 속의 일들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발견하고 작가가 세겨 놓은 일상은 온통 아름답기만 하다. 그처럼 평범하지만 예쁜 추억이 만화의 주인공들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J.M 바스콘셀로스 원작

어느날 갑자기 작가 이희재가 출판가의 히트메이커가 된 듯 하다. 아동용만화 <삼국지>가 100만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그렇고 후속작인 <아홉살인생> 역시 베스트를 기록했으며, 그 옛날의 걸작들이 양껏 멋을 부려 다시 나오는 걸 봐도 그렇다. 이희재는 이제 더이상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고집불통 작가의 모습은 아니다. 그는 한결 친근해졌고 그의 만화는 한층 맛깔스러워졌다. 가난과 역경 속에 성장하는 주인공 제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브라질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80년 대 우리내 삶의 한측면을 담아내고 있다. 


20세기 기사단/ 김형배

  이 작품은 1976년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를 동명의 만화로 각색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작가가 78년 발표한 것. ‘태권브이’ 시리즈가 고급스런 모양새로 복간되더니 작가의 최고 히트작이랄 수 있는 이 작품도 새 옷을 입고 출판됐다. 지구평화를 위협하는 스펙터의 무리들에 맞서 싸우는 지구연합군이 ‘20세기 기사단’이다. 냉전시대의 작품답게 악당은 공산주의자들이고 이들을 응징하는 이들은 민주진영의 소년들이다. 근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특전물(여러명의 등장인물이 팀을 이루어서 특정 단체와 맞서 싸우는 형식)로 새롭게 고안된 군사용품과 색다른 무기가 볼거리. 또 첩보물에서 볼 수 있었던 수사, 저격, 추격, 테러 등의 요소가 다양하게 삽입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게임전문잡지사에서 출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액션 대전게임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선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미 성인이 된 당시 꼬맹이들의 추억 달래기 용 정도로 이 작품의 복간을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도 이 부분. 만화캐릭터의 영향력은 ‘둘리’처럼 적어도 2대 이상의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을 때 형성되는 것이다. 최근 태권브이의 3D 애니메이션화가 진행 중인데 이 작품의 게임화도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틴플,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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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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