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가의길/계간만화/박모씨이야기 외, 틴플, 2003


만화가의 길/ 데즈카 오사무, 김미영 역

데즈카 오사무는 아톰의 아버지 또는 만화의 신이라고 불린다. 영화적 표현을 만화형식에 담아낸 최초의 작가였고 다양한 유형의 장르만화를 개발해냈다. TV판 일본만화영화의 선구자이기도 하고 문화로서의 만화, 산업으로서의 만화를 이끌어낸 개척자이다. 이 책은 만화라는 매체에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고 만화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실험한 작가가 198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오사카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엘리트가 만화챔피언으로 거듭나기 위해 행했던 땀방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만화가 지니는 영향력과 기능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고 만화를 통해 현실과 미래를 논했다.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톰> 등의 작품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거 로봇이라는 개념과 함께 과학문화 발전에도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만화책은 아니지만 만화천재가 쓴 자서전인 만큼 쉽고 빠르게, 재미있고 오래 기억되게 구성됐다. 


박모씨이야기/ 박무직

박모씨는 참 재밌는 사람이다. 이 작가를 여러번 봤고 그의 작품이나 글도 여럿 접했다. 그때마다의 느낌은 무척 섬세하다는 것인데 그의 작품이나 글은 섬세함 보다는 우직함이나 과격함이 묻어날 때가 많다. 아니 양측면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박모씨의 여러가지 주장들로 엮여있다. 창작에서 부터 유통, 정책이나 제도에까지 박모씨는 전방위에 걸쳐 매우 빠른 속도로 주장을 전개한다. 예의 그 섬세함이 만화계 내부를 들여다보고 그 과격함이 내부에 일성을 퍼 붙는다. 그러나 그 섬세함과 과격함은 때때로 함께 있어 논지의 전개 과정없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계간만화/ 바다그림판, 새만화책

이 잡지는 <자지도시의 추억>을 발표했던 범상치 않은 작가 김대중이 출판기획자 번역가에서 잡지편집자로 역할 변신을 해서 쏘아올린 만화 창작과 비평지이다. 꾸준히 만화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김창남 성완경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정준영 박세형 등의 필진이 다양한 시각에서 새만화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고, 윤태호 김동화 윤승운 등 여러 작가의 단편이 수록됐다. 잡지 자체의 성격과 구성은 <화끈> <히스테리>를 잇는듯한 느낌이 강했지만 서울애니센터의 풍족한 재정지원 하에 이뤄진 결과물은 그들의 촌티를 추억으로 묻어버리게했다. 풍족한 재정이 때로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세련된 잡음으로 들려질수도 있을까. 계간만화의 창작만화와 비평은 적당히 한 덩어리인듯 싶다가도 나뉘어있었고 한 식구인듯 싶다가도 닮지 않은 얼굴이 많았다. 


유리가면/

<유리가면>은 천부적 재능과 상대적 열정을 동시에 지닌 두 명의 여자 연극배우가 펼치는 에스컬레이터 게임이다. 스포츠 시합처럼 연습과 실전에서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재능 대 열정에서 열정 대 재능으로 캐릭터를 바꾸면서 또 한판 대결을 펼친다. 순정만화의 화풍과 장르적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사구조만으로도 이 작품은 구습적인 순정만화의 울타리 속에 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타령에서 일찌감치 탈출해있다. 보 잘 것 없이 가난하기만 한 주인공 마야와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지닌 아유미. 마야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서 연극을 통해 신델레라의 꿈을 꾸지만 작가는 이를 이야기의 한 설정으로만 간주할 뿐이다. 마야와 아유미는 소년만화의 열혈 주인공, 가령 <공포의 외인구단>에 등장하는 오혜성과 마동탁 처럼 그려진다. 가진 것이 없어서 열정을 사르고 재능 앞에 무기력한 열정에 패배감을 느낀다. 재능이 있지만 열정의 상대가 두렵고 열정을 지니기 위해 재능을 단련시킨다. 그러기를 몇 차례 연인과 조력자는 근성을 일깨운다. 꿈 도전 승리를 테마로 두고 있는 소년만화의 전형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틴플,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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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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