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정보화사회와 포르노, 원광대 신문, 2000


포르노.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는 창녀(pornoi)와 문서(graphos)의 합성어이다. ‘인간의 육체 혹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 성적인 자극과 만족을 주기 위한 인쇄 표현물’이 포르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이다. 이는 글이나 이미지를 통해 성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것을 뜻하며 포르노성 표현물을 음란물(obscene material)이라 규정한다. 포르노는 대개 하드코어(hardcore)와 소프트코어(softcore)로 구분된다. 하드코어는 ‘오로지 성적 흥분과 자극을 위하여, 성적묘사 혹은 기술이 현저하게 노골적이고 사회의 도덕관념을 심히 해칠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 가치도 갖추지 못한 성 표현물’을 뜻한다. 반면 소프트코어는 이보다 순화된 표현물을 이른다. 현재 하드코어 포르노의 표현은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는 성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소프트코어는 관음 취미를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발전 중이다. 전자가 여성에 대한 가학・피가학적인 모양을 뛰고 있다면, 후자는 여성의 신체 부위에 대한 재현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사건’ 이후 검찰의 하드코어와 소프트코어의 구분점이 ‘성기묘사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났다.

포르노. 포르노적 표현물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시작됐다. 인류가 ‘몸’을 출산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적으로 행사하게 되면서 포르노는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타인의 ‘몸’을 관장할 수 있는 권력자는 이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가있고, 피권력자는 타의에 의해 이를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 이는 곧바로 관습화의 과정을 거쳐 ‘보여주고, 보는 것’이 일종의 권력 선포, 권력 분배의 과정이 된다. 모든 예술사조의 그림자처럼 자리했던 음란창작물 역시 권력과 피권력 간의 관계에 의해 도출된다. 포르노가 권력자의 허영과 이를 꿈꾸는 자들의 기대에 의해 연출되고 있음은 몇몇 하드코어 영화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포르노의 연출은 기괴하지만 보편적인 상징과 기호들로 엮여져있다. 이른바 물신숭배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들의 일면에서 우리는 ‘제복’을 발견하게 된다. 나찌복장을 한 금발의 여자, 세라복을 입은 동안의 소녀, 앞치마를 두른 하녀, 심지어 수녀복과 간호사복 등.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쇠사슬, 밧줄, 끈 등으로 묶여있다. 권력의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칠 때면 어김없이 채찍질이 가해진다. 제복, 사슬, 채찍질은 권력자만이 누릴 수 있는 만족(?)을 준다. 그리고 이는 보는 이 스스로가 권력자가 되도록 만들고, 격렬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돕는 작용을 한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쓴 마광수는 ‘야한 여자’의 정의를 ‘스스로 불편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길게 기른 손톱이나, 두께가 느껴지는 눈화장, 15cm이상의 하이힐, 꽉 조이는 옷차림 등을 이른다. 이는 그대로 포르노의 관점. 권력의 시각에서 재현되는 피권력자의 모습이다. 

포르노는 새로운 권력의 출현과 성장을 돕는 기폭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포르노의 대중화는 15세기 인쇄기술의 발달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인쇄술의 발달은 정보의 주도자를 권력자가 아닌 피권력자, 정보의 창출자가 아닌 수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사회를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인쇄는 엄청난 권력을 지니게 됐다. 여전히 이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었지만 ‘미디어권력’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인쇄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물론 신문의 출현과 글 읽기, 소설의 대중화에도 음란성 삽화와 음란성 그림 소설 등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었다. 산업화사회에 권력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공장의 생산력과 자원이었다면 정보화사회에서의 권력 핵심은 신기술, 신매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문명, 새로운 기술의 전파는 포르노의 정치・사회학적 영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례로 80년대 중반 VTR의 가정 보급을 부추긴 것은 미국산 포르노였다. 산업화사회의 마지막 세대, 이른바 386세대에게 인터넷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한 것도 플레이보이의 핀업걸 이승희였다. 컴퓨터에 CD-P, CD-WR을 장착하게 만들면서 대량판매로 가격 대를 하락시킨 일등공신은 일본산 미소녀 포르노였다. 나쁜 아이들의 대명사가 돼버린 ‘빨간마후라’. 땅에 떨어진 청소년들의 도덕 불감증을 온 국민이 확인하고 전율에 떨었지만 이후 8m 비디오카메라(켐코더)의 매출은 수직상승 했고, 국산과 일산의 업계 쟁탈에 불이 붙었다. 

‘8m의 정치・사회학적 위치’에 대한 논의는 차후에 더욱 선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간략하게 이에 대해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디오 플레이 기능은 극장의 유일한 빛, 영사기로 대표되던 영상시대의 권력자를 개인의 방 안으로 가져가게 했다. 둘째, 카메라를 가진 자. 시대를 기록하는 자를 특정인이 아닌 대중으로 삼았다. 셋째, 복사・편집 기능은 개인이 사실의 재현, 과장, 변형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정보화 시대를 대표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새로운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함을 알 수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0양 비디오’라는 사적 감정의 저장물을 훔쳐보고 나서 깊은 도덕적 충격과 회의, 모멸감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를 포르노에 대한 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포르노는 보고자 하는 이, 권력을 행사하고자하는 이의 시선과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고 완성된다. 가령 ‘이웃집 여자’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은 결코 포르노의 아이콘이 될 수 없지만 이 대상에 대상 성적 호기심과 훔쳐보기에 대한 권력적 관음 취미가 개입되면 ‘이웃집 여자’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도 포르노 영상물의 출연자가 되고, 이를 훔쳐보는 이에 의해 포르노로 완성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0양 비디오’와 함께 세트로 거래되고 있는 ‘00여대 화장실 몰카’, ‘수영장 몰카’, ‘신혼부부 몰카’ 등 이른바 몰래카메라 비디오들이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익명의 사람들은 그저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건전한 성적 지식과 인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몰래 카메라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채포되고 희롱 당한다. 그들은 정보화사회의 권력자에게 잊지 못할 고문을 당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이 피해장면을 보고자하는 이들, 권력자의 모습을 흉내내고자 하는 이들이 이를 포르노로 만든다. 그렇다면 정보화사회에서의 포르노는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포르노는 성적흥분을 일으킬 목적으로 한 서술, 시각적인 표현물이 아니라 이를 찾아나서는 시선들이다. 이를 공급하고자, 공급받고자 하는 이들이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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