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나는 여전히 만화가가 되기 싫다, 만화동네, 2007.2.4

출판만화정책 변해야 한다

별을 보고 길을 찾던 때의 행복함을 말한 문장가가 있었다. 나는 ‘별’을 ‘하고 싶은 일’, ‘길’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동일하고, 매일을 즐기는 것이 곧 인생의 지도가 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게 만화는 그때의 ‘별’과 ‘길’이다. 만화창작을 소원하다가 만화평론을 하면서 그 별과 길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내 머리 위에는 만화라는 별이 뜨고 지길 반복하고, 나는 ‘매일매일 만화가가 되는 꿈을 꾼다’. 이 꿈이 더욱 꿈으로 남는 이유는 만화에 대한 주변의 대접이 갈수록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매일 만화가가 되는 꿈을 꾼다

요즘 만화가는 ‘아이들 코 묻은 돈 뺏어 먹는 놈’에서 21세기형 신지식인으로 변했고, 만화매체는 멀티미디어 컨텐츠 산업의 핵심영역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만화이미지는 문자이미지를 대체, 그 활용도를 넓히고 있다. 이런 상황을 기다리기나 한 듯 정부는 눈에 띄는 형태로 만화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수혜자의 대상과 폭도 넓혀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등의 전시행사 지원,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부천만화정보센터 등의 시설투자, 만화가 김진의 <바람의 나라> 등 우수작품・우수만화출판사에 대한 포상, 신인작가들의 창작공간 제공 및 기획작품 사전투자 지원, 만화관련산업에 대한 벤처자금 지원, 만화관련 단체의 사업에 따른 기금 지원, 만화관련 각종 연구조사 등.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유혹적이고, 따듯한 세례가 만화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이쯤 되니 저만치 밀쳐 논  내 꿈과 별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 보인다. 

자식 덕에 사는 부모, 애니메이션 덕에 사는 만화

하지만 이 정도에 감격하고 있자니 갑자기 처량해지고, 심히 불쾌한 기운이 솟구친다. 먼지 풀고 도망가는 미군트럭을 억지웃음으로 쫓으며 ‘기브미츄잉껌’을 외치던 시절의 영상이 떠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화의 산업적 파급효과에만 매달려 뻘건 눈을 돌리고 있는 태도도 이해할 수 있다. 터미네이터보다 더 위풍당당하게 나타나서 꽁짓 돈 쥐어주고 ‘아윌비백!'을 외치며 돌아서는 문화관료들의 행태도 그럭저럭 눈감아 버렸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만화매체에 대한 관료들의 인식이다.

문화관료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은 그들이 ‘만화’라는 매체 통용어나 ‘만화영화’라는 하위 장르용어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와 ‘영화’의 하위장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고, 단적으로 ‘출판만화의 발전없이 애니메이션의 발전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직언이다.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산업국에서도 만화는 출판진흥과에서, 애니메이션은 영화진흥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 매체를 2개과에서 관리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만화의 자식이랄 수 있는 만화영화, ‘애니메이션’을 매체 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라는 매체 통용어에 대해 우리사회가 아직 부정적이다’는 이유를 대면서 모자관계의 문화역사・과학적 정황을 역행시키고 있다.

정부의 공식보고문이나, 보도문, 그리고 정책문서 등을 통해 ‘만화’라는 매체통용어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용어를 사용하면서 각종 언론매체 등이 이를 답습하고, 만화의 붐을 위해 조성됐던 애니메이션 붐이 역류되면서 ‘만화’라는 매체 통용어가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군부시절의 호칭이 국민의 정부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프레지던트’로 바꿔 사용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이런 분위기는 정부의 정책과도 깊숙하게 연관된다. 앞서 열거했던 ‘만화매체’에 대한 지원의 대부분은 ‘애니메이션’에 집중되고 있다. 그나마도 시설투자, 설비투자 등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중복투자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최근 문화관광부는 애니메이션의 국내시장규모를 2,700억원으로 조사 발표했다. 출판만화는 1/4규모인 5,000억원. 부모보다 성장한 자식은 자랑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장한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의 실제상황은 출판만화에 잉태된 태아에 불과하다. 출판만화의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성장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출판만화의 배를 갈라 애니메이션을 꺼내겠다는 식의 발상은 오히려 발육단계를 위협하는 행위일 뿐이다.

창구 앞 책상머리 정책과 지원은 필요없다

멀티미디어컨텐츠의 옛 이름은 만화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출판만화는 신(新)매체의 모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모태는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 창의적 도전과 비판의식, 새로운 문화와의 자유로운 접합을 근간으로 한다. 이 매체에 대한 당국의 정책 역시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새로워야 한다. 만화매체를 부정하며 애니메이션에 갖은 추파를 던지고, 출판만화 자체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간주하면서, 출판만화작가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사후에 검열하겠다는 식의 태도. 이런 지원과 법제 아래서 출판만화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의 영양 공급 기능 역시 당연히 중지된다. 

IMF 이후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정부 돈 따먹기’가 제일 쉽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현 정부의 문화정책은 과거와 다르다. 하지만 현재 당국의 만화에 대한 지원은 군부시절의 문화정책만큼이나 폐쇄적이고, 당위적이다. 관료들은 여전히 역사의 교과서와 교육된 사고로 작성된 모범사례집을 버리지 못한채 ‘벌거벗은 임금님’ 마냥 촌티를 자처하고 있다. 옷이라는 외양적 이미지가 최고의 권위를 만들어 주진 못한다. 그처럼 애니메이션을 정면에 내세운 투자정책 등은 최고의 옷으로 최고의 권위를 보여주려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짓거리에 불과하다. 이런 터다 보니 내가 여전히 만화가가 되는 꿈만 꿀뿐, 만화가가 되려 하지 않는지 모른다. 만화매체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매체 자체가 부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만화가가 되고, 출판만화를 하나. 잠깐 동안의 백일몽을 뒤로 미루고, 내가 사랑하는 모난 별 만화를 위한 궁리나 할 밖에. 

(끝)


 만화동네, 만화가협회, 1999 게재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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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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