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정보화사회를 지배하는 청소년과 여성, 코코리뷰 2007.2.3





전화와 텔레비전으로 나약해진 사회(?) 

청소년을 나약하게 만들고,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 전화와 텔레비전이라고 한다. 전화와 텔레비전의 발달은 청소년과 여성을 집안에서 머무르게 했고, 세상과 격리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산업화사회에서의 경우에 해당한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 또 공부`를 외치던 시대, 다종다양의 제품군을 생산하는 노동자와 영업력이 경제를 좌우하던 시대가 그렇다. 

정보화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 전화와 텔레비전은 강인한 힘을 바탕으로 한 노동력과 사회적 처세를 골간으로 하는 영업력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전화와 텔레비전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청소년과 여성들은 정보화 혁명이 불어닥치면서 새로운 고소득자들로 분류되고 있고, 신정부는 이들을 `신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받들고 있다. 

1997년 이후 산업화사회의 썩은 잔재들로 인해 국가 경영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건설, 건축, 전기, 전자 등 외형적으로 큰 사업을 차지하기 위해 자행된 남성사회의 비리구조, 앞뒤 가리지 않고 규모 확장이 능사인 냥 문어발 식으로 늘린 방만한 기업구조는 우리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들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미래사회 `경제의 힘`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우리의 기업들은 이를 겨우 컴퓨터 케이스(하드웨어) 만드는 일 정도로 생각한듯 하다. 국민들의 정보화사회에 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21세기형 지식인이 되지 못한다고 하자 이를 구형 컴퓨터는 버리고 신형 컴퓨터를 구입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이른바 폐 컴퓨터가 새로운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이런 일련의 사고들은 바로 산업화사회 식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땀만 흘렸던 남성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집단이 생산집단으로 

우리사회의 청소년과 여성은 대표적 소비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돈을 벌줄만 알았지 쓸줄 모르는 남성들 덕에 집이 곧 생활의 무대인 청소년들과 여성들이 소비수준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급속도로 쪼그라든 남성들의 수입은 이들의 소비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들은 스스로의 소비분야를 확장, 생산자의 위치를 찾아 나섰다. 이른바 생비자라는 개념의 안방창업 열풍이 불어 닥쳤다. 이들은 전화와 텔레비전, 그리고 남편(아버지)가 사다 놓고 길들이지 못한 컴퓨터와 남아도는 시간과 정열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그중 일부 여성들과 청소년들은 고소득 소호족(작은 사무실이나 집에서 소규모 인원으로 창업하는 사람들)이라는 명함을 지니게 됐다.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청소년과 여성의 역할이 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수많은 만화들 속에서도 접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칭송받던 성인 남성들을 대신하고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이들은 분명 청소년과 여성이다. 이 주장을 만화로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만화는 이를 시사하고 있었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들 속에서 미련하고, 악독하며, 힘만 쎈 어른들을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처단해왔다.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무기를 사용해왔다. 그것을 이제와서 말하자면 정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놀이 기구인 동시에 무기가 되는 것들. 예를 들어 그것은 요요일 수도 있고, 딱부리일수도 있으며, BB 총 일수도 있다. 어른들의 고정된 시각으로는 몇 푼 안하는 장난감일수도 있는 것들이 그들에겐 무기가 된다. 

컴퓨터 게임이 그렇고, 인터넷이 그렇다. 아이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한 선물이었을 뿐인 컴퓨터. 그들은 이 장난감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는가 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컨텐츠 사업을 벌린다. 그리고 아빠를 위협하는 재력가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성들. 

그들은 더 이상 캔디가 아니다 

그들 역시 더 이상 피터팬 곁에 있는 멍청한 웬디 마냥 큰 눈만 깜빡이고 있지 않는다. 겁 많고 나약한 소녀로서, 또는 과보호적인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팅커 처럼 적극적으로 피터팬(남성)의 잘못을 따져들고, 고쳐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도 아니면 피터를 도와 직접 전장으로 나서서 싸우고 있다. 

`공주만화` 일색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순정만화에서도 이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전의 공주들, 남성의 사랑을 받는 이들의 유형은 큰 변화없이 `캔디형` 인물이었다. 가난하고, 억세며, 착하기로 따지면 첫째가고, 똑똑하기로 따지면 내세울 것 없는 여자. 이런 여자를 안소니도 테리우스도 사랑한다. 그것은 최근에 와서도 변함없는 전형이다. 그리고 여전히 남성만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작품들 속에서 여자의 역할은 달라졌다. 더 이상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무릎 끊지 않으며, 제멋대로 관대한 척하고 동정하는 투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민하지 않는다. `일과 사랑` 따위보다 `일하는 여자와 살림하는 여자`사이의 직접적인 갈등에 휩싸인다. 그러나 결코 거짓 투성이인 남자들의 설득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한다. 

어떻게? 속 좁고 아는 것 없는 여자들이 그럴 수 있을까? 

이들은 집 안에서 집 밖의 세상을 보다 상세하게 조감하고 있었다. 신문, 전화, TV, 인터넷 등을 통해 남자보다 멀리, 쉽고 빠르게 세상을 읽고 있었다. 이들이 정보를 소비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생산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현재 사회는 점차로 담당분야가 분업화, 세분화되고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특정 분야, 담당분야가 나뉘어 있다는 뜻이 된다. 남성들이 전문분야에 국한된 작업반경을 가진 반면,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독립된 조직체를 손수 운영하고 있다. 제작, 생산, 분배, 소비 등 전분야에 걸쳐 나름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들에게 정보를 소비가 아닌 생산으로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가령 새로운 켄텐츠 아이템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홍보하거나 판매하지 못한다면 허사가 아닌가! 여자들은 이를 가정 경영의 경험을 토대로 이끌고 있다. 실제로 한 가정주부는 자신이 관심이 높은 패션분야의 정보들을 수집, PC통신에 제공하면서부터 실력있는 IP 제공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여성들의 관심도를 조사 분석하고 임신, 출산, 유아 교육 등에 관한 정보와 백화점 상품 정보 등을 가공, 대규모 IP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혼자서,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화와 컴퓨터만으로 성공한 여성 사업인이 된 것이다. 또 한 여성은 TV 드라마를 죽도록 본다. 그리고 이를 분석하고 평가해서 각종 잡지들에 보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 여성은 PC 통신을 통해 주부모니터 모임을 결성하고, 어였한 매체비평가로서, 영향력있는 모니터 단체의 운영자로서 활동하게됐다. 고소득 자유기고가가 된 것이다. 이 경우는 전화, TV,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만화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청소년과 여성 작가들의 진출이 활발했다. 고교생출신 작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거 군입대를 서둘러 작가 기근현상이 벌어졌다는 풍문이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 자기 만족도를 높이 평가하는 여성작가들이 마감시간을 못 맞춰 잡지출간이 늦어졌다는 소리도 있다. 여성 만화잡지 편집장이 잡지 판매부수를 높이고, 아마추어 창작인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다라는 보고도 있다. 만화계는 청소년과 여성들의 참여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이다. 

정보를 잡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렇듯 산업화사회에서 2류 계급으로 천대받고 소외됐던 여성과 청소년들이 새로운 밀레니엄,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력을 등에 업고 주류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리더임을 자처하는 남성들은 어떤가? 여전히 남성들은 이들의 자본(몸, 신체)을 한낱 성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이들의 무식한 참여로 정보화사회는 대중적 지지도를 얻고 있다. 가령 이들은 전화의 다자간 통화, 텔레마케팅, 사서함 서비스 등 새로운 기능을 이용해 음란전화를 즐기고, 전화를 이용한 매춘에 참여하는 가 하면, 성인용품 구입에 활용한다. 또 일본문화 개방이전 야하기로 소문난 일본방송을 보기위해 파라보나 안테나를 세우는 가 하면, 초기 비디오(VCR) 대중화에도 `포르노 테잎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앞장섰다. 컴퓨터의 보급에도 이들은 신나는 오락게임들을 들고 와서 대거 참여했고, 인터넷 역시 사이버 섹스 사회로 알고 있는 듯, 야한 사이트에 능수능란하게 방문할 수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가장 최근의 정보저장 매체로 각광받고 있는 CD 역시 75분짜리 하드코어 포르노의 저장매체로 인식하고, 어렵사리 구한 CD를 동료들간에 돌려보기 위해 CD레코드기의 대중화에도 앞장선다. 남성들이 이처럼 정보화 사회 구축(?)에 한심하고 불경스럽게 앞장서고 있다면 여성들과 청소년들의 정보화 사회 구축, 그리고 정보 생비자로서의 역할은 탐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역할이 주어지고, 그들의 힘이 정당하게 쓰이고, 그들의 힘에 대한 대우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들은 성인남성 이상으로 살만한 세상 만들기에 참여할 것이다. 

코코리뷰, 한국만화문화연구원, 1999. 11. 15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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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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