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 붐-너무 많은 만화축제, 2000



다양한 만화관련행사 


90년대 중반 외국산 공룡 한 마리가 김영삼 정부의 운영노선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과학기술원은 현대자동차의 1년 수출액과 스티븐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이 벌어들인 수입을 단순비교, 김 전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전대통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문화산업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지시했다. 이후 국산 공룡들인 아기공룡 둘리와 용가리의 분투가 시작됐고, 쥬라기공원의 꿈에 부픈 문화산업꾼들이 대한민국의 만화공원화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쏘아올린 신호탄이 95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95)였다. 지금도 정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하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고민한다. 당시의 고민은 지금보다도 컸다. 이 고민을 적당히 어루만져준 것이 1회 행사의 큐레이터를 맞았던 한창완(세종대학교 영상만화과) 교수였다. 서강대 석사논문으로 제출된 ‘한국만화산업연구’에서 그는 전세계 만화시장의 규모를 4조원으로 측정했고, 우리나라를 세계3위의 애니메이션 강국이라고 적었으며 국제규모의 전시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상당히 유혹적이었고, 정밀한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정부와 만화・애니메이션계 인사들은 그를 선봉으로 국내최대 규모의 문화행사를 계획했다. 정부의 생색내기 문화정책과 투자가 극에 달한 행사라는 거센비판과 국내 초유의 만화관련 페스티벌이라는 흥분이 교차하는 가운데 SICAF는 15만명의 입장객을 동원했다. 96년 2회 행사 때는 2배로 커진 규모에 걸맞게 30만명의 입장객을 동원, 코액스 개관이래 단일행사로는 최대입장수입을 기록했다. 이후 대기업,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단 만화관련 행사를 기획하기 시작, 한해 6~7개의 국제규모 행사가 열리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춘천시 주관 하에 열린 ‘춘천만화축제’, 동아일보사와 LG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 등이 있다. 공모전, 전시행사, 상영회, 놀이공간 등을 마련한 이 행사들은 SICAF의 아류라는 비판과 행사진행 미숙 등의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 행사 조직원들이 동일 성격의 행사에 겹치기 참여하면서 ‘붕어빵 행사 만들기’에 그쳤다. 98년 SICAF 조직위원회는 ‘행사통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입장조율이 안된 채 올해도 3개 행사가 동일한 시기에 개관, 본 행사준비보다 입장객 모시기에 더 바빴다는 비난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로 3회 이상 열린 위 행사들은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나름의 행사 특성을 만들고 있다. 먼저 SICAF는 기획전시를 바탕으로 아마츄어 만화인, 만화관련 기업의 상품판매장 역할을 하고 있고, 춘천만화축제는 지역문화 활성과 애니메이션 마켓,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은 공모전과 아동 관객층을 겨냥하는 전시기획에 중점을 두었다. 이외에 ‘부천대학만화애니메이션축제’는 만화관련대학의 개설붐과 함께 학과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박람회, 졸업작품 경연장의 역할을 하고 있고, ‘ACA(전국 아마츄어 만화인 연합) 만화축제’는 아마츄어 만화인들의 작품활동 공간, ‘캐릭터 박람회’는 국내 캐릭터 상품의 해외 수출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만화의 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타분야의 문화행사에서도 만화관련 기획과 전시공간을 마련, 만화인 모셔가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국제도서박람회’, ‘광주비엔날레’, ‘새천년 문화축제’ 등 만화와 직・간접적 영향 속에 있는 문화행사들에서 만화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특히, 잇단 전시행사의 영향으로 아마츄어 만화인들 사이에서는 창작풍토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순수만화창작은 뒤로한채 전시형태에 걸 맞는 일러스트 등 멋스럽고,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풋내나는 상품(열쇠고리, 가방텍, 책갈피, 뺏지 등)제작, 일본만화의 등장인물들을 흉내내는 만화분장(코스튬플레이) 등이 이뤄지고 있다. 

김 전대통령의 산업정책은 IMF라는 경제위기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열린 만화붐과 만화행사들은 ‘문화산업’이라는 거국적 명제하에 기획됐고, 현재까지 별탈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관련인사들 사이에서는 문화를 산업의 척도로 해석하고, 관련 인구를 창출하려는 전시행사 열기는 ‘문화의 IMF’가 머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화행사의 열기는 만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만화창작인구의 확대, 만화의 대중화 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과거 만화인들이 만화의 발전을 위해 주장했듯, ‘타분야의 균형있는 지원과 관심, 연계 속에 문화의 발전이 온다’는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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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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