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하고 용한 무대리, 아름답고 아름답다
한 사내가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다.
사내는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스피커에서 다음 역 예고 방송이 나오고 사내는 사람들 사이를 용맹스럽게 비집고 들어간다. 순간 앉아 있던 승객이 일어서고, 사내는 절반쯤 일어선 승객 뒤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자리를 차지한다.
내린 승객의 바로 앞에 서서 앉을 자리를 기다리던 셀러리맨은 황당할 따름. 고개 숙인 사내는 앞에 서있는 셀러리맨을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머리를 뒤로 제치고 눈을 감아버린다. 기가 찬 셀러리맨은 ‘용하다 용해’라며 탄식한다.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거 완전히 무대리네’라며 웃는다.
스포츠서울에 연재 중인 일일시트콤만화 ‘용하다 용해’가 인터넷 상에서 폭발적인 조횟수를 기록하더니 ‘무대리 신드룸’을 예고하고 나섰다. 작달만한 키, 곱슬머리에 메기입술, 툭 튀어나갈 것 같은 똥배. 웃기려고 작정을 한 코메디언이 분장한 것 같은 모습이 바로 주인공 무용해의 모습이다. 용해는 고지식하고 까탈스러운 직장상사와 모든 면에서 뛰어난 후배들 사이에서 용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이른바 386세대, 낀세대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대표선수, 또는 그들을 위한 위안부가 만년 대리로 낙인찍힌 무용해이다. 그러나 용해는 참으로 용한 구석이 있다. 그가 열정적인 노력파이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용한 구석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무용해의 노력은 토끼 콤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해 성 보조기구를 사용하고, 상사가 지저분하다고 지적한 수염으로 애교를 떨고, 화장실 갈 시간을 아껴 일을 할 정도로 가상하다. 물론 그 결과가 용해가 미처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돼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용해가 용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독자들을 무식하고 염치없는 인간들로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오양의 비디오’. 관음증과 음담패설을 즐기는 일반대중이 그녀를 사회적으로 살해한 장본인이라면 용해는 이를 유쾌한 ‘놀이’로 승화시켰다. 병영생활 중의 상하관계를 그대로 이식한 우리네 직장, 숨이 막힐 것만 같은 현실세계의 고민들이 용해를 통해 보여진다. 용해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야한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인들의 음탕한 놀이가 아니라 그림과 언어 속에 감춰진 환타지를 즐기게 한다. 가상의 즐거운 환타지는 현실의 추악한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용해는 독자들을 가상세계의 파렴치한으로 만들지만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막아서는 보호자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멸시하고, 주변에서 사라져 줄 것을 원하는 무용해. 그러나 독자는 그의 세상을 훔쳐보며 즐거워한다. ‘보통인 이상의 바보를 모방하는 것’이 웃음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임을 알고, ‘바보는 모든 이들의 스승’ 임을 독자들이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독자가 바라보는 용해는 아름답고 아름답다. (끝)
스포츠서울, 199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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