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 아트앤디자인, 1999

출판만화, 초고속 발전 중!!


시각문화의 중심에 선 만화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환쟁이가 되겠다고 하자, 눈에 불을 켜고 반대했다. 아버지는 자식이 만화쟁이가 되겠다고 하자, 역시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예술가라고 불리는 화가가 됐고, 나는 신지식인이라 불리는 만화가가 됐다.’

웃기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화가들, 만화가들의 입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런 일화들을 듣게 된다. 고고한 예술의 가치, 도도한 문화의 가치를 측정하지 못한 아버지들이 흉이 될 것은 없다. 정말 그 시기에 회화나 만화를 한다는 것은 훤하게 보이는 고생길 같은 것이었다. 도무지 대물림 할 수 없는 천한 직업에 다름아니었다. 그래서 당대의 화가들은 집을 뛰쳐나갔고, 지금 우리 앞에 우뚝 선 만화가들은 ‘애들처럼’이라는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꿈 같은 세상을 자기만족감에 빠져 그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근 100여 년에 달하는 현대만화는 그 어떤 예술장르보다 원대한 이상을 펼쳐 보이고 있으며, 시각문화의 중심에 위치해있다. 구십 몇 년이라고 말하던 두 자릿수 숫자표기의 세상, 그 끝자락에서 만화의 날개 짓이 시작됐다. 10여 년 전 디자인에 쏠리던 관심을 2배수로 이끌어가고 있는 만화의 오늘. 그 내일을 부가가치로 산출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디자인과 관계를 맺지 않은 대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디자인의 모습이 방대하게 산재해 있다. 입는 옷에서부터 체형 관리와 미용, 주방 용품과 가구, 건물, 인테리어, 사무용품, 컴퓨터와 인터넷, TV, 비디오, 오디오, 백화점과 매장 디스플레이, 자동차, 비행기, 기차, 도로 교통 표지판, 포스터와 문자, 상표와 심볼, 포장, 광고, 교략, 가로와 도시 경관, 수퍼마켓 관리 체계, 심지어는 행사 기획에 이르기까지 디자인과 관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김민수, [디자인 문화탐사], 솔, 1997, 3p

만화 역시 디자인의 한 대상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만화는 디자인의 폭넓은 대상을 포괄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회화, 디자인의 역사에서 뿜어져 나온 만화는 이제 기존의 문화예술 영역을 통합하고, 매우 독자적이며 독특한 갈래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다. 회화와 문학을 하나로 엮으며, 영화, 사진, 무대, 전시, 뉴미디어와 행복한 관계 맺기를 통해 시각문화의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만화를 찾는 이유


얼마 전 까지 ‘만화’는 아이들의 유희를 위한 볼거리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 홍보, 교육, 오락 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만화의 효용성이 강조되고 있다. 만화는 이미지를 단순화시키고, 과장함으로서 글이나 일반 그림 보다 더욱 뛰어난 전달성을 지닌 효율적인 미디어로 평가받고 있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사의 PC운영체제인 윈도우는 그래픽 위주의 사용자 환경(GUI)으로 PC운영체제 부분을 석권하고 있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이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버튼 모양의 그래픽으로 구성, 사용자 환경을 놀랍도록 진보시켰다.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 그림버튼은 전문 지식 없이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파일 모양을 한 아이콘은 작업 파일을 여는데, 디스켓 모양을 한 아이콘은 작업파일을 저장하는데 쓰인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아이콘들은 오래 기억된다는 장점도 있다. 만화의 매체적 특징은 이 단순성과 함축성, 그리고 오래 기억된다는데 있다.

최근 인기 연예인들의 캐릭터 상품이나, 각종 단체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만화 캐릭터는 나름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한다. 가령 문자로 ‘호랑이’라고 하는 것은 차별성이 없지만 캐릭터 호랑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다양한 단체, 특정 행사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프로야구단 해태,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서울특별시 마스코트 범돌이, 시리얼 제작회사 켈로그의 호스티 등이 그것이다. 반대로 이런 만화 캐릭터들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미국인들을 떠올릴 때 노란 머리, 파란 눈, 큰 코, 흰 피부를 생각한다. 이를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하면 미국인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일반 극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이 세계시장에서 쉽게 팔릴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상징만으로 인물이 표현되고, 이렇게 단순화된 인물들은 외국인들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자연스레 극영화보다 잘 팔릴 수밖에 없다. 

만화의 매체적 특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만화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이다. ‘만화는, 동일한 원작의 표현양식을 다양한 매체형태로 응용하여 매체 간의 수직적 변형체계(vertical transformation system)를 연관상품의 수평적 체계(horizontal system of related commodities)로 단선화 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을 수행’ 한창완, <한국만화산업연구>, 글논그림밭

할 수 있다. 만화가가 최초로 작업한 만화원고 하나가 다양한 시장의 요구에 맞는 상품으로 변화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한 만화가가 작품을 제작해서 만화잡지에 발표를 한다. 10회 연재분 정도를 모으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만화방이나 서점에서 판매를 한다. 이 작품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높으면 각종 팬시용품 등에 만화주인공을 삽입, 상품화시킨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인기도에 따라 게임, TV/극장/비디오용 만화영화로 제작한다. 이는 다시 광고, 홍보, 선전, 이벤트 등에 활용된다. 작품의 인기도와 유명세가 높아지면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 산업 등에서도 작품의 진가는 발휘될 수 있다. 초기 원고 제작 생산비에 대한 산출물의 고부가가치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일례로 허리우드 극영화 <스폰>(1998년 작)은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원작 만화는 118개국에서 21개국 언어로 출간되어 모두 1억1,000만권, 만화 캐릭터 장난감은 1,000만 개가 팔렸다. <씨네21> 97. 9. 17호

’ 비디오 만화영화 시리즈도 크게 인기를 끌어, 일본만화영화시리즈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까지 수입됐다. 사담이지만 <스폰>의 원작 만화가는 최근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왕 맥과이어의 시즌 마지막 홈런볼을 사들일 정도로 부자가 됐다. 


만화와 산업-만화행사, 산업성의 바로미터


1990년대 중반 외국산 공룡 한 마리가 문민정부의 운영노선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과학기술원은 현대자동차의 1년 수출액과 스티븐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이 벌어들인 수입을 단순비교,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전대통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문화산업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지시했다. 이후 국산 공룡들인 아기공룡 둘리와 용가리의 분투가 시작됐고, 쥬라기공원의 꿈에 부픈 문화산업꾼들이 대한민국의 만화공원화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쏘아 올린 신호탄은 ‘95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이하 SICAF95)’였다. 지금도 정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하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고민한다. 당시의 고민은 지금보다도 컸다. 이 고민을 적당히 어루만져준 것이 1회 행사의 큐레이터를 맞았던 한창완(세종대학교 영상만화과) 교수였다. 서강대 석사논문으로 제출된 ‘한국만화산업연구’에서 그는 전 세계 만화시장의 규모를 4조원으로 측정했고, 우리나라를 세계3위의 애니메이션 강국이라고 적었으며, 국제규모의 전시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상당히 유혹적이었고, 나름대로 정밀한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정부와 만화・애니메이션계 인사들은 그를 선봉으로 메머드급 문화행사를 계획했다. 정부의 생색내기 문화정책과 투자가 극에 달한 행사라는 거센 비판과 국내 초유의 만화관련 페스티벌이라는 흥분이 교차하는 가운데 SICAF95는 15만명의 입장객을 동원했다. 1996년 2회 행사 때는 2배로 커진 규모에 걸맞게 30만명의 입장객을 동원, 코엑스(KOEX) 개관이래 단일행사로는 최대입장수입을 기록했다. 이후 대기업,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단 만화관련 행사를 기획하기 시작, 한해 6~7개의 국제규모 행사가 열리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춘천시 주관 하에 열린 ‘춘천만화축제’, 동아일보사와 LG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 등이 있다. 공모전, 전시행사, 상영회, 놀이공간 등을 마련한 이 행사들은 SICAF의 아류라는 비판과 행사진행 미숙 등의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또, 행사 조직원들이 동일 성격의 행사에 겹치기 참여하면서 ‘붕어빵 행사 만들기’에 그쳤다. 1998년 SICAF 조직위원회는 ‘행사 통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입장조율이 안된 채 1999년에도 3개 행사가 동일한 시기에 개최, 본 행사준비보다 입장객 모시기에 더 바빴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올해로 3회 이상 열린 위 행사들은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나름의 행사 특성을 만들고 있다. 먼저 SICAF는 기획전시를 바탕으로 아마츄어 만화인, 만화관련 기업의 상품판매장 역할을 하고 있고, 춘천만화축제는 지역문화 활성과 애니메이션 마켓, 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은 공모전과 아동 관객층을 겨냥하는 전시기획에 중점을 두었다. 이밖에 ‘부천대학만화애니메이션축제(이하 PISAF99)’는 만화관련대학의 개설 붐과 함께 학과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박람회, 졸업작품 경연장의 역할을 하고 있고, ‘ACA(전국 아마츄어 만화인 연합) 만화축제’는 아마츄어 만화인들의 작품활동 공간, ‘캐릭터 박람회’는 국내 캐릭터 상품의 해외 수출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만화의 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타분야의 문화행사에서도 만화관련 기획과 전시공간을 마련, 만화인 모셔가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국제도서박람회’, ‘광주비엔날레’, ‘새천년 문화축제’ 등 만화와 직・간접적 영향 속에 있는 문화행사들에서 만화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특히, 잇단 전시행사의 영향으로 아마츄어 만화인들 사이에서는 창작풍토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전시형태에 걸 맞는 일러스트 등 멋스럽고,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풋내 나는 상품(열쇠고리, 가방텍, 책갈피, 뺏지 등) 제작, 일본만화의 등장인물들을 흉내내는 만화분장(코스튬플레이) 등을 선보이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산업정책은 IMF라는 경제위기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열린 만화붐과 만화행사들은 ‘문화산업’이라는 거국적 명제 하에 기획됐고, 현재까지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관련인사들 사이에서는 문화를 산업의 척도로 해석하고, 관련 인구를 창출하려는 전시행사 열기는 ‘문화의 IMF’가 머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화행사의 열기는 만화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만화창작인구의 확대, 만화의 대중화 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과거 만화인들이 만화의 발전을 위해 주장했듯, ‘타분야의 균형있는 지원과 관심, 연계 속에 문화의 발전이 온다’는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화와 만화 교육


앞서 SICAF의 개최가 당시 기준으로 3조원에 달하는 만화시장을 바탕으로 열렸다면, PISAF99는 1999년 현재 전국 40 여 곳의 대학에 개설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를 바탕으로 한다. 이 행사는 상업적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 학생작품 만을 대상으로 열렸다. 익히 알려진대로 애니메이션은 대규모의 자본투자를 필요로 한다. 디즈니사가 93년 제작한 <알라딘>은 3,500만 달러(한화 2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됐다. 이는 우리가 대규모 자본투자라고 생각하는 실사영화 제작비의 10배를 넘는 규모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를 적게 들이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비도 우리 실사영화의 평균 제작비를 넘어선다. 이런 터에 학생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행사에는 무려 120여 편(국내 우수추천작 20편, 본선진출작 65편, 해외 학생작 50여편)의 국내외 단편 애니메이션이 참여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 제작인구가 늘고 있으며, 극장 개봉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저 예산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이 공교육의 장이라면 사설학원은 사교육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문 창작인 양성을 위한 커리큐럼의 부재 등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술적 숙련도를 강조하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의 교육과정을 통한 결과물이 ‘만화적 형식의 디자인 작품, 상업성 없는 단편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중점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만화책만화나 셀애니메이션 창작 시 ‘현장에서 꼭 필요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밖에 유력기관의 문화센터 등에서 미취업자, 여성,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관련 직업 교육도 진행되고 있고, 미디어교육의 일환으로 학부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비평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만화 창작을 통한 논술 교육, 만화 읽기를 통한 사고력 증진 교육 등의 시도는 만화매체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읽고 보기, 따라 그리기, 흉내내기, 창조하기


현대적 의미의 만화가 처음 나타난 것은 신문이었다. 인쇄술의 발달은 활자로 메꿔지던 신문 지면에 삽화를 등장시켰다. 만화적 단순화의 성격을 뛴 삽화는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신문기사를 손쉽게 전달하는 유일한 그래픽이미지였다. 이 삽화의 기능성과 오락성에 흥미를 느낀 실험적 작가들이 한 칸 짜리 삽화를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었고, 여러 칸을 연결시켜 활동사진 같은 이미지를 탄생시키면서 만화의 변화는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 만화는 책의 형태로 나타났고,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변화했으며,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볼 수 있는 만화영화라는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매체--> 신문삽화 -->신문만화-->잡지만화 -->만화잡지

회화 --> 캐리커쳐, 한칸만화 -->광고만화

미술--> 전시만화 -->설치만화 

문학--> 그림이야기책 --> 네칸만화 --> 만화책 

영화--> 만화영화 

뉴미디어-->CD롬 만화-->인터넷만화



위의 과정을 통해 만화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한다면 ‘만화’ 또는 한칸짜리 그림이 새로운 문화요소 또는 예술쟝르와 융합(fusion)하는 자극전파(stimulus diffision)를 통해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신문삽화는 풍자화의 영향으로 한칸만화・캐리커쳐로 발전했고, 그림이야기책의 영향은 네칸만화, 만화책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타 문화예술장르의 직간접적인 영향도 있었다. 현대의 만화는 출판영화라고도 불리운다. 그만큼 이야기만화(만화책 만화)의 발달은 사진, 영화 영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만화영화도 새로운 영화 촬영기술의 발견에 따른 이야기만화의 결합이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매주 일요일 대학로에서는 괴상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어딘가 낯익은 듯한 옷차림의 주인들은 만화 속의 등장인물들이다. 만화를 사랑하고 만화 속의 세상을 현실에서 재현하려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작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쇼(show)라기 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닌 이들과 이를 공유하기 위해 그들은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분장을 하고, 거리무대에 오른다. 일본의 여성 만화애호가들로부터 시작된 이 놀이는 유명 만화의 주인공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분장을 하고 즐기는 일종의 가면무도회 같은 형태이다. 코스프레, 정확히는 코스튬플레이(custumplay)라고 하는 이 놀이는 국내에 유입되면서 ‘만화’라는 매체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의 증거가 된다. ‘코스프레’ 역시 이와 같은 문화의 융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한때 어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종이인형 놀이가 서양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의상 무도회와 결합됐고, 이것이 다시 ‘만화’와 혼성됐다면 어떨까? 

1970년을 전후로 태어난 1세대 만화마니아들의 노력은 만화매체의 ‘확장’을 향해 있다. 도서 형태, 인쇄물로서의 만화라는 인식을 뚫고, 뉴미디어와의 행복한 조율을 통해 CD롬 만화, 디지털만화, 인터넷만화 등 새로운 만화장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반면 80년을 전후로 태어난 2세대 만화마니아들은 만화매체의 ‘활용’에 중점을 둔다. 최근 만화를 중점으로 한 캐릭터산업의 호황과 ‘광적인 은밀함을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 출구’로 이해되고 있는 코스프레 역시 이를 보여준다. 이들의 확약은 만화매체를 새로운 형태로 진화시키고 있다. 우리 생활 전면에서 함께 웃고, 울며 성장하게 만든다. ‘만화’라는 용어 속에 갇힌 고전적 특징들을 한 꺼풀씩 베껴 내고 전혀 새로운 문화 체제로 진화시키고 있다.

다른 문화요소들과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만화의 문화접변(acculturation)현상은 미디어의 핵심이 인쇄매체에서 전파영상매체로 넘어오면서 발생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만화와 컴퓨터게임, 만화와 인터넷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문화요소와의 결합이 만화를 진화하는 무생물체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청소년층, 미래의 만화매체 창조자들에 의해 더욱 놀라운 원심운동이 진행 중이다. 


만화의 대외적 환경


흔히 ‘영화 보러 간다’는 의미는 영화관에 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디오 보러 간다’는 의미는 집안에서 영화관람을 한다는 이야기. ‘책 보러 간다’는 것은 도서관이나 서점 등 책이 많이 있는 곳에서 독서를 하겠다는 의미와 개인적인 공간에서 독서를 하겠다는 뜻이다(TV영화나 비디오방이라는 공간이 있지만). 그러나 유독 ‘만화 보러 간다’는 뜻은 ‘만화방’이나 ‘책대여점’에 간다는 이야기로 알고 있다. 즉, 책은 사서도 보지만 만화책은 빌려 본다는 소리다.

대여해서 만화책을 본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우리 만화시장이 작다는 것을 뜻한다. 열 사람이 사서봐야 할 것을 만화방 한 곳에서만 구입하면 된다.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 하더라도 만화방과 책대여점의 숫자만큼 만 책이 판매된다. 당연히 한 작품에 대한 투자나 노력보다는 다종의 작품에 손을 대고, 얼렁뚱땅 권수 늘리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폭력성과 음란성이 난무하는 만화가 판을 치는 것도 당연한 순서가 된다.

몇몇 작가들은 이 같은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노력은 그야말로 노력 선에서 그쳤고, 한때 줄어들었던 만화방과 책대여점의 수가 다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우리만화시장이 대여형태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작가들의 만화창작 형태와 독자들의 구독형태 때문이다. 


만화작가들의 창작형태


최근 창작되는 만화의 형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표현상으로는 영화기법을, 서술상으로는 문학기법을 도입한 현대만화(만화책 만화)와 고전적인 만화의 개념을 따르고 있는 작품군(인물풍자화, 1칸・4칸만화)들이 그것이다. 이중 우세를 보이는 것은 이른바 ‘극화’라고 불리는 현대만화이다. 현대만화는 이야기 전개에서부터 프레임(칸)의 연출기법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영화영상의 연출기법과 맞물려 있다. 여기서 단행본 형태의 만화와 잡지 연재 형태를 띤 만화가 매체의 특성에 따라 이야기전개에서 차이를 보인다. 간단히 말해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는 만화작품이 120분 가량의 영화라고 한다면 잡지 연재 만화는 TV연속극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은 단행본 만화’의 이야기 구조는 이야기 전체를 이루는 커다란 ‘상황’에 충실한데 비해 ‘잡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만화’는 상황보다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중심을 둔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 출간되는 대다수의 만화들은 이런 구분도 없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야기의 초기설정이나 상황보다는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집착한다. 이 같은 작품 전개방식은 작가가 계획한 작품의 초기 설정이나 이야기의 전체 맥락보다는 개별 사건에 충실해지면서 페이지 늘리기식 연출과 쓸데없는 그림을 난무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2~3권이면 끌날 이야기가 20~30권의 초대형 작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당 3천원씩만 잡아도 한 작품(전질)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은 6만~9만원 가량. 1만 8천원 가량의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는 것이 당연시되는 일반인들에게 만화책은 도저히 사서 볼 수 없는 문화상품이 된다. 


독자들의 구독형태


작가들의 위와 같은 창작형태는 독자들의 구독형태를 벗어나서 일어날 수 없다. 줄거리나 구성보다 등장인물과 사건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작품의 권수가 불어나는 것은 독자들이 그와 같은 작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현대만화의 독자들은 일종의 시트콤 형태를 띤 만화를 찾고 있다. 10여명 내외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작품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주인공의 멋진 활약상을 기대한다. 작가는 이런 독자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제작 단계부터 개성이 확실히 구분되는 등장인물을 만들고, 독자는 그 중에서 선호하는 등장인물을 고른다.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건을 만들고,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주인공과 원하지 않는 주인공의 활약상을 견주어 보는 것으로 재미를 찾는다. 물론, 이 점은 현대만화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된다. 이런 규칙(?)을 기름지게 활용한 작품은 다른 이야기매체에서 흉내낼 수 없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독자들의 위와 같은 구독형태가 만화매체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다. 문화의 빛은 다양성이 사그라듬과 동시에 찬란하게 피어나다 일순간에 사라진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장르의 만화나 만화형식, 이야기 구조가 유행한다고 해서 작가나 독자 모두 그 장르의 만화를 찾는 건 위험하다. 더군다나 캐릭터가 매체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만화장르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내 만화에서 꾸준히, 오래도록 사랑 받는 작품이 없는 것도 여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구성 인물에 집중하고, 현재에만 치중되는 에피소드에 열을 올리다보면 작품은 철지난 뉴스처럼 쓸모 없는 것이 돼버리기 쉽다.  


책대여점과 만화정보지


IMF 이후, 실직자들에 의한 소규모 창업열풍은 만화방, 책대여점으로 이어지는 빌려 보기 만화 유통시장을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최근 성장하고 있는 것이 ‘만화정보지’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간만화 정보가 담긴 만화가이드북이 판매용으로 정식 출판돼 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근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했고, 여러 종의 만화정보지가 앞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업소 홍보용으로 배포하는 비디오정보지의 아류가 만화정보지이다. 그동안 공식 집계가 없던 만화책의 판매 순위와 대여순위 등을 발표하고, 신간정보에 목말라있던 독자들에게 새로 나온 만화책의 정보와 작가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만화문화의 새로운 확산과 가능성을 일반에게 발 빠르게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정보지들의 대부분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싣고 있으며, 만화작품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보지의 제작경비 자체가 만화대여업소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즉, 독자는 정보지를 통해서 너나없이 재밌다고 말하는 작품의 광고를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이 정보지들의 기능 중 가장 특징 적인 점은 역시 판매순위와 대여순위를 발표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음성적으로만 거래돼왔던 만화유통시장의 성격상 인기순위나 판매순위 등의 발표나 공식적인 기록은 없었다. 이런 기록이 만화연구를 위해 귀중한 자료가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것도 좋은 점보다 나쁜점이 많다. TV의 인기가요 순위가 국내 음악시장을 청소년 대상의 댄스음악으로 뒤바꿔 논 것처럼 만화 인기 순위 역시 별다르지 않은 기능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정보지가 발표한 만화인기 순위는 청소년 대상의 만화로 집중돼있고, 장르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다.


만화의 내용, 갈래


만화의 고전적인 주제,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는 주제는 ‘대립구도의 전개’였다. ‘좋은 사람과 나쁜 놈의 계속되는 싸움’이 이야기만화가 가진 미학인 동시에 미덕이다. 이런 까닭에 최근 우리만화의 주요한 장르가 된 것이 이른바 ‘학원폭력물’과 ‘칵테일무협물’이다.

만화의 주독자층이 어린이에서 청소년층으로 높아가면서 어린이 대상의 만화는 다양한 ‘컨텐츠(내용)’를 통해 창작됐다. 이 두 장르의 만화 역시 ‘가정만화→학원만화→스포츠만화→무협만화→환타지만화’의 형태와 코드가 융합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새로운 장르의 유행이 기존 장르의 만화를 사장시키고,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만화작품들을 막는다면 만화는 일순간에 사라지는 문화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가능성있는 무수한 신인작가들이 출판사의 요구나 독자의 요구에 의해 학원폭력물과 칵테일 무협물에 메 달리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장르 만화의 주독자층은 14~18세 가량의 청소년층이다. 이들은 기실 우리만화의 가장 큰 독자층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가가 여기에 몰린다면 나머지 독자층은 우리만화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두 장르의 만화는 다양한 문화, 만화가 다룰 수 있는 무수한 소재 중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 장르의 유행은 특정 매체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사장시키기도 한다.


만화매체의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정의


사전적 개념의 만화는 어떤 대상을 과장, 단순, 변형시켜 표현한 회화의 한 형식이다. 쉽게 인쇄나 출판형식의 만화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만화는 여러 가지 하부장르를 거느린 종합미디어로 발전했다. 이는 크게 인쇄・출판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나눌 수 있다.  


인쇄・출판만화


인쇄・출판만화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그려지는 아주 작은 이미지(컷)에서부터, 인물풍자화 카툰, 4칸만화, 만화책만화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장르는 만화의 가장 오래된 형식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동아시아 권에서는 만화책만화를 중심으로 발전 중에 있다. 국내 만화책 시장은 공식 출판 부수만 한해 33,025,623권(1999년 문화관광부 통계)에 이른다(통계에 잡히지 않은 음성만화 시장의 불법복제만화가 공식 시장의 50% 선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웃한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최근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수직상승이 기대된다. 특히 만화책만화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분류되는데, 단일 상품만으로 다양한 관련상품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만화책만화는 대중교통 수단의 발달과 독서에 대한 인식변화 등의 요인(보통 지하철 등을 일회 이용하는 시간이면 한 권을 독파 할 수 있다)으로 새천년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일 작품의 방대한 양과 전자출판의 수직발전은 전자책만화, CD롬 만화의 출현과 보편화를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접속환경의 비약적인 발전도 새로운 만화구독 환경으로서의 인터넷을 눈여겨 보게 만든다. 현재 인터넷 만화는 기존에 출판된 만화를 스캔 받아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실험적인 작가들은 모니터의 크기, 인터넷의 새로운 기술 등을 고려한 동적인 만화를 선보이고 있고, 만화책만화의 미래형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메이션

얼마 전까지 만화영화라고 불리던 것을 이제는 코흘리개 아이들도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한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카메라로 촬영 한 것을 극장이나 TV매체를 통해 감상한다는 점에서 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따로 제작 된 정지영상이 과장, 단순, 변형의 만화적 형식을 통해 묘사된다는 점에서는 만화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극장, TV, 비디오 상영용으로 나눌 수 있고, 그림형식에 따라 2D, 3D 또는 셀애니메이션, 디지털애니메이션 등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또, 그 활용범위도 갈수록 증가 추세에 있다. 상영을 위한 순수 작품 외에도 광고, 게임, 인터넷 등을 통한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실사영화에서의 부분적인 애니메이션 사용은 아주 흔한 일이 돼버렸다. 여전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중점으로 한 셀 애니메이션 방식이 디지털 애니메이션보다 선호되고 있고 두 방식을 혼합한 ‘디지셀’ 등의 새로운 모델이 나오기도 했지만, 큰 반응을 불러오진 못했다. 하지만 소규모 인력,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제작이 가능한 컴퓨터 기반의 애니메이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개인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단편애니메이션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고급화와 입출력 장비의 대중화, 강력한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의 개발 등이 애니메이션의 개인작업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개인작업은 이 장르가 지닌 상업성의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캐릭터

만화매체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애니메이션이 부활했다면, 새롭게 태어난 것은 캐릭터이다. 캐릭터는 흔히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 같은 서사장르의 등장인물 또는, 인물의 성격을 뜻한다. 디자인 용어로서 캐릭터는 기업, 단체, 행사, 제품 등 특정대상의 성격에 맞는 시각적 상징물을 의미한다. 쉽게 상업적 목적의 캐릭터(상품부착용)와 비상업적 캐릭터(월드컵 마스코트 등)로 나눌 수 있다. 캐릭터는 그 자체로 신뢰도, 친근감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최근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캐릭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 시장 규모는 인쇄출판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앞지른다. 각종 캐릭터 상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고, 캐릭터가 없는 기업이나 단체가 없을 지경이다.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캐릭터는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인기스타 캐릭터이다. 이밖에 개인이미지 캐릭터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캐릭터는 새로운 사용처를 ‘누가 먼저 찾아내는가?’에 집중되고 있을 정도로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장르이다. 


맺는 말-만화는 알라딘의 램프, 알리바바의 동굴


만화매체의 중점장르를 통해 만화의 현재와 미래를 가볍게 둘러봤다. 출판만화가 만들어지고, 캐릭터가 상품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만화소설, 일러스트집, 각종 용도의 캐릭터 부착용 상품이 만들어진다. 어떤가? 만화는 이처럼 수많은 활용도를 지녔고, 변신에도 강하다. 만화는 ‘스위스나이프’처럼 수 만가지 도구들을 감추고 다니던 ‘형사 가제트’다. 또, 만화는 ‘마법사 지니’가 담겨있는 알라딘의 램프고, 금은보화가 가득한 ‘알리바바의 동굴’이다. 그리고 그것은 퍼가고 퍼가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화수분이다. 자 주문을 외워보자. 만화가가 되겠다고. 만화를 사랑하겠다고. (끝)



*** 최근 유행중인 장르만화에 대해서 ***


최근 국내 만화계를 주도하고 있는 독자층은 역시 아동과 청소년층. 20대 전후반의 여성독자층과 20~30대의 남성 독자층이 2차 독자층으로 형성돼있다. 현대만화의 흐름 역시 이들 독자층이 선호하는 장르로 이루어진다. 


* 학원만화 - 스포츠, 연애, 폭력, 환타지, 

: 아동의 접근이 쉬운 것으로 판단된 1960년대 이후의 현대만화는 계몽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장르가 학원만화. 학원만화의 대체적인 설정은 외딴 곳에서 전학 온 한 아이가 자신의 특기나 적성 등을 발견해가며 학창시절의 힘든 한때를 무사히 통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최근 학원만화에도 위와 같은 전통적인 설정과 주제는 남아있다. 과거의 학원만화가 집안형편, 공부, 스포츠 등을 극기나 인내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최근의 학원만화는 연애, 싸움 등이 집중적으로 묘사되는 등 극기와 인내의 대상만 바꾸고 있다. 최근 이런 작품의 문제는 연애, 싸움 장면의 잦은 묘사와 사건중심의 전개로 실제 주제가 가려져 버린다는 데에 있다.

▶ 대표작 : 박산하 <진짜사나이>, 임재원 <짱>, 카츠라마사카즈 <아이즈>, 최병열 <핫도그> 등


* 무협만화 - 권격, 검술, 개그, 연애

: 얼마 전까지 무협만화는 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만화의 하위 장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새삼 무협만화가 독자들의 높은 호응과 함께 주류 만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협만화는 한 청년이 운명적으로 고도의 무예를 전수 받고, 정파와 사파의 대립을 와해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무협만화들은 정통무협만화의 어법에서 상당부분 떨어져 있다. 작가들은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에 따른 제약을 피하기 위해 무림을 작품의 무대로 선택할 뿐이다. 이 경우의 만화는 학원물이나 SF환타지, 순정연애만화의 특징들을 한꺼번에 담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무협만화들을 ‘칵테일무협물’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대표작 : 양재현 <열혈강호>, 문정후 <용비불패>, 이노우에다케히코<베가본드>, 와츠키노부히로 <바람의 검심>


* 순정만화 - 연애, 학원, 동성애, 환타지

: 순정만화는 일부 여성독자들만이 보는 것으로 취급됐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몇몇 순정전문잡지들의 창간이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만화계의 작품적 성취를 가늠하는 잣대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실제로 90년대 이후의 인기작가들 중 상당수는 순정만화작가들로 이뤄져있다. 우리 문화계는 여성이 주도한다는 속설이 만화에서도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순정만화는 대체로 남녀 주인공간의 이루어질 듯, 말 듯한 애정관계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최근 순정만화는 이 기둥 줄거리에 다양한 소재들을 혼합, 새로운 주류만화로 거듭나고 있다. 또, 과거의 순정만화가 단순히 애정관계 만을 다루고 있던 데에 반해 최근의 순정만화는 시사성있는 소재를 다루는가 하면,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밀도있게 묘사하기도 한다. 남성이나 여성으로 밖에 구분되지 않았던 전통적인 성에 대한 역할조정 등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대표작 : 유시진 <쿨핫>, 원수연<풀하우스>, 유코모리타 <사랑의 기적>


* 새로운 장르 만화 

이밖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장르만화 중에는 아마츄어만화가들과 사회인만화, 언더그라운드만화 등이 있다. 아마츄어만화는 만화의 다양성과 문화로서의 만화의 역할을 새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들의 작품은 대개 이미지묘사에 중점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만화분장(코스프레) 등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마츄어만화의 이런 특징은 만화산업의 한 부분인 캐릭터산업과 맞물려있다. 사회인만화는 만화를 보고, 느끼며 성장한 만화세대들의 출현으로 성인층에서 시도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각종 사보와 동호인 활동 등을 통해 우리만화의 소재와 장르를 넓혀가고 있다. 언더그라운드만화는 최근 소수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함께 그들 특유의 실험성과 다양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인쇄매체 문화라는 만화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들의 작품은 인터넷, 무대공연 등을 통해서 표현되기도 한다. 사회적 금기나 이슈, 그리고 일반적인 윤리관에 대항하는 이들의 만화는 만화 본연의 저항성과 날카로운 직설 속의 그윽한 은유를 담아내고 있다.

▶ 대표작 : 모던코믹스 봄, <히스테리>・<바나나>・웹진<COMIX>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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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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