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 읽기를 통한 캐릭터의 창조, 만화창작, 1999


1. 캐릭터와 캐릭터성


(1) 캐릭터란?

캐릭터Character는 사람의 성격, 기질 등을 나타내고, 소설이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작중인물을 뜻한다. - 최근에는 상품 등에 쓰이는 인물도안을 뜻하기도 한다. 만화에서 캐릭터는 작품의 초기 설정시 독특한 성격을 부여받고, 그 성격이 작품의 전개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을 뜻한다. 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차별화 돼있는 경우를 들어 “캐릭터성이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최근의 신경향 만화들은 이야기보다 캐릭터와 캐릭터성이 강조되고 있다. 80년대 후반의 현대만화들이 ‘읽을거리’로 창작되었던 데 반해, 최근의 만화들은 부가적 가치(작중 인물, 가상인물을 통한 각종 문화상품의 개발) 창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2) 장르만화 속의 캐릭터

최근 유행중인 학원폭력만화들의 첫머리를 보자. 조운학의 <니나잘해>, 최병열의 <삐따기>, 양선모의 <까>. 세 작품 모두 1권 170페이지 분량을 통틀어 주인공을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은 몇몇 사건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독자가 1권을 통해 알게된 주인공은 ‘싸움 잘하는 고교생’. 적당한 의협심과 다소 황당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물론, 주먹 싸움을 해야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 역시 동일하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후’, ‘상급학교로 진학한 뒤’, ‘학교에서 정학 받은 후’ 등으로 주인공은 새로운 환경에 놓여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주인공,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게 될 주인공인 것이다. 또,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쓸만한 ‘과거’를 갖고 있다. 과거는 곧 전설이 되고, 주인공은 독특한 인물로 신비화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과거와 새로운 환경이 뒤엉키며 펼쳐지는 사건들에 개입하게 된다.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은 자연 사건의 진행을 낳는다. 새로 튀어나오는 과거의 문제들은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암시하며, 주인공의 개인사와 함께 성격 등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주인공의 생각이나, 사고, 행동양식 등을 독자가 모두 알게되면 이야기는 끝이 난다. 화풍의 독창성, 소재의 특이성, 이야기 전개의 참신성 등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세 작품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독자가 낯설지 않은 장르의 정형성 속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빌어 몇몇 창작인과 문화산업가들은 ‘독자는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독자가 쉽게 장르의 정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작품의 대중성’이라는 부분도 그 작품이 얼마나 ‘정형성을 강조하고 있느냐’에서 찾는다. 문제는 정형적인 캐릭터들을 어떤 상황에 배치하느냐에 달려있다. 현대만화의 캐릭터는 성격, 임무, 역할 등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 대국의 진행방향에 따라 개별성 없는 바둑돌 하나가 이야기를 좌우하지 못한다. 캐릭터는 갈 길이 정해져 있는 장기판의 알과 같다. 


2. 만화읽기를 통한 캐릭터의 이해


이야기는 사건이다. 사건의 주체가 되는 것은 인물. 즉, 이야기는 인물의 어떤 행위를 통해 진행된다. 그래서 만화짓기는 사건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인물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만화의 정형적인 캐릭터들을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이는 만화읽기를 통해서 충분히 구체화시킬 수 있다. 

조운학의 <니나잘해>를 보자. 서로 상반된 성격의 주인공과 한 명의 여자가 펼치는 학원물이다. 액션장르에 멜로와 코미디를 적당히 혼합했다. 현재 시점의 성장기 만화 중 하나가 된다. 이 경우의 작품들은 주인공의 독특한 성격이 작품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니나잘해>의 주인공들은 고전적인 영웅형 주인공과는 다른 비겁함, 멍청함, 이기적 발상 등이 넘친다. 여자 주인공 역시 교활하기 이를 때 없으며, 공주병에 시든 장미 같다. 또, 주인공을 열혈남아로 만드는 이유는 학원액션물의 관심밖에 있던 ‘공부’ 때문. 주인공 ‘충치’는 어머님과의 약속과 자신의 의지로 인해 ‘쌈 잘하는 학생’이 아닌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려 한다. 그러나 ‘한번 총잡이는 영원한 총잡이’인 법. 주변의 시선과 그의 과거사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등장인물들이 ‘충치’의 주먹을 쉬지 않게 한다. 


(1) 캐릭터 창조

① 먼저 작가는 작품 기획과정에서 ‘장르’를 선택한다.

만화창작의 도입은 이야기 꺼리(소재) 발굴로부터 시작된다. ‘꺼리찾기’의 성격은 두가지로 나뉜다. 작가의 기획에 의한 취재, 작가적 상황에서 우연하게 얻는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이든 소재의 발굴은 장르의 선택, 인물의 창조로 이어진다. 단순하게 고정화된 장르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색다른 장르를 시도할 수도 있다. <니나잘해>의 경우는 경쟁, 연애, 공부를 주 소재로 하는 정통 학원물에 싸움을 가미한 학원액션물이다. 같은 학원물을 선택하더라도 이야기 소재나 진행방식, 그림풍에 따라서 장르는 달라진다. 가령 매작품마다 독특한 소재로 장르개발에 나서고 있는 전세훈의 신작 <장난 아니네>는 학원액션물을 무협장르로 풀고 있다. 신예 작가 강미림의 <키작은 해바라기>는 순정의 어법으로 학원액션물을 발표한 사례. 


② 장르의 선정은 캐릭터의 윤곽을 보여준다.

캐릭터는 장르에 따라 다르게 묘사된다. 캐릭터 창조를 위해서는 주인공에 대한 기준이 선정돼야 한다. 가령 무협만화라면 주인공은 무술을 해야한다. 무술을 하려면 주인공에게 신체적인 장기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기준이 독특한 주인공의 창조를 막기도 하지만, 인과성있는 인물구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학원액션물의 주인공인 ‘충치’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 학교가 무대인만큼 학생이다. 

. 액션씬이 많은 만큼 싸움을 잘해야한다.

. 위압적인 덩치의 소유자이다.

. 의리에 강하고 여자에 약하다. 


③ 캐릭터의 신상명세서를 작성해 보자.

‘충치’의 윤곽을 세밀화 시켜보자. 어떤 사람이 궁금하다고 느낄 때, 도대체 뭘 알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신문이나 잡지 등에 주로 소개되는 인기스타들의 인터뷰를 참고해도 좋다. 기자가 묻는 설문을 자신이 만들 캐릭터에게 물어보면 된다. 대개 기자의 물음은 굵은 글씨로, 답변은 얇은 글씨로 적혀있다. 얇은 글씨들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간단하게 적어보자.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있을 것이다.

. 생년월인은?

. 별자리나 형액형은?

. 가족관계는?

. 성장배경은?

. 취미나 특기는?

. 좋아하는 이성상은?

. 즐기는 음식은?

. 좋아하는 색깔은?

. 인생의 좌우명은?

. 장래희망은?


회사나 단체에서 사용하는 개인신상명세서를 활용해도 좋다. 서식에 나오는 항목을 채워보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새로 만들어서 자신만의 캐릭터 신상명세서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 캐릭터의 인과성

캐릭터 신상명세서를 통해 구체화된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주인공의 과거와 미래, 현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충치’의 취미는 공부, 특기는 싸움이다. 장래희망은 공부 잘하는 학생. 그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는 싸움을 잘 한다. 잘하는 만큼 자주 싸워야했고, 공부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옛날 만화에는 공부도, 싸움도 최고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은 싸움에도 피해는 있는 법. 상처라도 생긴다면 보통 이상으로 신경을 써야 된다. 아무나 붙잡고 싸우는 것도 아니다. 싸움은 오랜 신경전과 갖가지 사건들이 얼켜서 벌어지는 것. ‘충치’는 싸움이 벌어질 만한 상황 속에 있어야 한다. 싸움꾼 무리들과 어울렸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당연히 공부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충치’의 과거는 ‘폭력학생’, ‘문제아’, ‘열등생’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캐릭터의 성격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아무 이유없이 ‘이 캐릭터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랬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을 독자가 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3) 캐릭터성의 확보

‘충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장래희망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공부를 취미로 여기고, 공부 때문에 친구들을 멀리하려고 한다. 캐릭터의 과거가 이야기의 기반이 된다면, 캐릭터의 미래는 이야기의 내용이 된다. 과거에서 미래로 어떻게 이동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 달라진다. <니나잘해>는 주인공 ‘충치’가 ‘어떻게 공부를 못하게 됐는가, 또는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되는가?’를 이야기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변인물들은 ‘충치’를 가리켜 ‘한번 총잡이는 영원한 총잡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충치’의 의지와 함께 앞으로의 이야기를 암시하며, 캐릭터성을 높여준다. 또,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주동인물들의 역할도 한 명의 캐릭터를 부각시킨다. <니나잘해>에는 ‘충치’의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싸움꾼인 ‘장보고'와 앙큼한 여자친구 '보라'가 등장한다. 이들은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 다양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현대만화는 변동인물들을 자주 등장시킨다. 주동인물들은 이야기의 틀을 만들고, 변동인물들은 고정화된 이야기 흐름에 새로운 긴장을 제공한다. 학원액션물의 변동인물에는 강력한 파워의 선생님, 전학 온 아리따운 여학생, 운동부 주장, 학교 선배 등이 있다. 그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형은 이웃학교의 ‘짱’. 


3. 캐릭터와 작품의 구성도


만화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서로 상대성을 띄고 있다. 해와 달이 있고, 하늘과 땅이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듯, 가상의 세계 역시 양과 음이 조화로워야 한다. 선한자가 있으면 악한자가 등장해야 하고, 똑똑한 이가 있으면 멍청한 이가 있어야 한다. 옛날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떠올려보자. 흥부와 놀부, 개미와 배짱이, 콩쥐팥쥐, 홀쭉이와 뚱뚱이 등. 이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흥부 같은 사람’, ‘배짱이 같은 놈’, ‘콩쥐 같은 여자’라고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정도로 그들은 확고한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고유한 캐릭터성은 상대성을 지닌 캐릭터의 등장으로 가능했다. 


<니나잘해>의 인물구성


무술도장 운영하는 과부댁 | 미장원 운영하는 홀아비     예비역병장 아빠 |  현역육군소장 엄마


충치                                                       보고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싸움꾼  | 공부는 싫고 여자만 좋은 싸움꾼

                          

연두


둘 사이에 나타난 예쁘면서 공부도 잘하는 여학생(매우 기가 센)


 기타 세 주인공의 친구와 학교 선생님들


---------------------- 작품 구성인물  ----------------------


이웃학교의 폭력 써클 짱


      ---------------------- 이야기 변동인물 ----------------------

복학한 아리따운 여학생

소개팅으로 만난 여학생 등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싸움꾼이 있으면, 공부하기 싫은 싸움꾼이 있다. 한 사람이 조용하고 쑥맥 같은 성격이라면, 다른 사람은 천방지축이 된다. 이성의 등장은 둘의 다른 성격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성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 난폭하고 남성스런 성격의 여자가 있다면, 청순가련형의 여자가 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a를 만들고 b, c 등을 만들면 된다. 주인공 a, b, c 등의 주변인물을 만들고,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변동인물을 만들면 작품의 인물구성이 끝난다. 

캐릭터는 그 캐릭터에 걸 맞는 이야기가 뒤따를 때 캐릭터성을 지니게 된다. 탄탄한 초기설정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마찰, 사건의 진행 속에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캐릭터는 그 의미를 지닐 수가 없다. (끝)



※ 만화짓기를 위한 제안

직접 작품의 인물 구성도를 만들어 보자. 장르나 소재 선정이 쉽지 않다면, 자신이 속한 가족의 계보를 작성해보자. 나를 기준으로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있다. 부모님의 형제들과 증조부가 있을 것이고, 그 윗대의 가족들이 등장할 수 있다. 각 가족들의 직업이나 성격 등을 취재해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름대로 새로운 인물형으로 재창조해보자.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만화캐릭터를 창조할 때는 대상의 일면을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엄한 할아버지를 무시무시한 할아버지로, 알뜰한 할머니를 자린고비 할머니로 과장해보자. 자신의 가족들이 평범할 것 같지만, 가족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꺼리들이 숨어있다. 적당한 과장과 확대를 통해 가족의 이야기는 대하서사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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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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