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히어로, 역사만화 속으로
-백성민, 『토끼』-
스펙터클한 반상의 격돌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꽃을 피우고 그처럼 환한 웃음과 조련된 언어로 미디어정치의 장단을 읽어낸 대통령님 DJ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은 보다 깊어진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옮아 메어져 꼼짝할 수 없는 우리 내 국민감정을 사람간의 선(線)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선, 전선(電線)으로 연결해낸 그 사람. 전대의 지배권력이 확성기(擴聲器)를 통한 직접 추궁, 강요, 수긍의 순서도를 지니고 있었다면 이젠 간접제시, 설득, 이해의 순으로 이어져야한다. 그에게서 철지난 민주투쟁사를 읽어내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절룩거리는 다리에서 시대의 흔적을 헤아려 모두의 가슴을 절룩이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야권의 등극을 접하면서 시작된 단상 일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백성민을 읽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가졌을 뿐이다.
역사/시대만화 장르의 출발점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조선(朝鮮)조를 지나는 길목에서만 유효했던 것은 아니다. 힘의 논리가 가닥을 잡았을 태고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동시대를 살고있는 현대사를 통해서도 무수하게 확인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주류와 비주류의 대결은 그런 까닭에 ‘재미’의 요소를 내재한다. 이는 수많은 주류 문화인들에 의해 탐구됐다. 그들의 탐구는 이 사회의 비주류인 일반 대중에 의해 숙련도를 더해갔고, 나름의 문화성향을 형성해냈다. 아이러닉하게도 상놈의 만족 역시 그들의 지배권역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물론 그들 나름의 의지에 의해 표출됐던 민중유산 역시 고결하게 자리 메김하고 있지만 비교선상에 놓이지 못한다.
대리충족의 기회는 그렇게 이뤄졌다. 그리고 개화이후 우리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던 문자매체 주도자들에 의해 ‘만화’가 훈련된다.
초기 형태의 시대극화와 역사만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은 50년대를 전후하며 발생된다. 신문에 시사만화 등을 연재하던 김용환이 우리만화 최초의 단행본(만화책)으로 기록되는 『코주부삼국지』를 낸 것이다. 당대의 유명 캐릭터로 손꼽히는 코주부를 등장시켜 중국의 『삼국지연의』를 코믹하게 각색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극(史劇)의 형태를 지닌 작품들을 규정하면서 시대극화(時代劇畵)와 역사만화(歷史漫畵) 등의 개념어가 만들어졌다. 이는 출판인들의 상업적 장르 구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우리만화에서 ‘성인만화’라는 개념어가 상업적 판매의지에 의해 활용 된 것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이희승 판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은 시대소설을 ‘과거의 어떠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쓴 소설’, 역사소설을 ‘사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시대극화는 이두호류의 만화(『장독대』, 『머털도사』 등)를 역사소설은 백성민 유의 만화(『새야 새야』, 『장길산』 등)를 이루는 것이 된다. - 여기에 ‘극화’라는 매체(만화) 부정적 용어가 따라붙는 시대극화는 다소 불완전한 개념어가 될 수 있겠으나 범용어로 쓰이고 있음으로 다른 규정을 두지 않고 사용하겠다. 하지만 두 가지 엇비슷한 만화의 장르를 구분 짖기 위해 둘을 통괄하는 ‘사극만화’라는 용어를 임의로 사용키로 한다.
사극만화는 50년대 『임꺽정』, 『징기스칸』 등의 작업을 했던 박광현을 중점으로 본격화된다.
박광현의 역사만화는 60년대 김종래와 박기당으로 이어지며 역사만화와 시대극화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후 대본소의 성황은 다양한 어린이 만화를 만들게 한다. 그러나 역사/시대극화는 교양, 교육 만화적인 색채를 강하게 들어내며 주류만화장르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80년대까지 소개됐던 김원빈의 『주먹대장』 등이 간간이 자리를 유지했던 정도였다. 70년대 말 일간스포츠의 창간과 함께 아동만화작가였던 고우영이 색다른 소재의 사극만화를 선보인다. 『수호지』는 동명의 원작소설을 현대적 감각과 만화적 필치, 간접적 성애묘사로 각색 우리만화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고우영의 사극만화는 시대극화에 가까우나 그보다는 성풍속 만화에 근접해있었다. 이후 고우영 문하에 있던 방학기가 독특한 화법으로 시대극화를 하기 시작했고, 이두호, 한희작 등이 시대극의 계보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역사만화의 계승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장길산』 끊어졌던 역사/시대만화의 줄 잇기
전집류 교양만화는 90년대를 넘어서며 역사만화가 지니고있던 기본구조를 재정비하고 만화의 교육적 활용도에 초점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만화잡지의 다양화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역사만화의 지면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스포츠 신문만화라는 독특한 장르만이 역사만화를 수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만화가들이 서점용 교양만화 창작 쪽으로 발을 돌리고 역사만화의 계보는 시대극화로의 변형과 무협만화와의 혼성 등을 통해 자취를 감추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꼭 한사람. 백성민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라이파이』의 산호에게 수업을 받은 그는 《어께동무》에서 일본만화나 미국만화를 베끼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집류 교양만화를 했으며, 성인주간지의 등장과 함께 성인현대물을 《주간여성》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군사정권의 사전검열이라는 틀에서 헐떡이다가 시대극을 하게된다. 무속신앙을 주 소재로 다룬 『십이지신』,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실거리꽃』 등의 시대극화를 제작했고, 의병장군 신돌석의 이야기를 다룬 『황색고래』, 갑오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새야 새야』 등의 역사만화를 발표했다.
연재 운이 없었던 그의 작품은 잡지사의 폐간과 함께 마무리 없이 사장됐다. 그러기를 수 차례, 우리가 기억하는 작품 『장길산』이 만들어졌다. 20권 전작으로 제작 전후부터 화제를 몰고 왔던 이 작품은 황석영의 원작을 만화화 한 것이다. 여느 만화처럼 연재를 통해 만화책으로 출간된 것이 아니라 전작 완성 후 출판된 것이다. 당시의 만화가 대본소를 통해 전량 수매되면서 안전성을 지녔던 것과는 별개로, 만화 『장길산』은 유통구조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서점을 통한 판매형식을 택한 것이다.
조선조 중엽의 유랑광대 장길산과 당대(當代)를 휩쓸었던 미륵신앙사건을 다른 축으로 두고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한 만화 『장길산』은 만화매체가 지닌 가능성을 다시 가늠하기 시작한 우리사회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90년대 초 『장길산』의 출간을 전후해 ‘만화평론’이라는 생경한 평론분야가 생겨나고 ‘만화평론가’라는 이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민중문화운동 계열의 필논객들이 하나, 둘 진영을 정비하고 새로운 영역확장을 시도할 때와도 맞물려있다. 이들은 만화의 문화산업성을 염두에 두고 만화에 대한 일반의 몰 인식을 수정하기 위한 공동의 작업을 수행했다. 언론은 이들의 호기를 받아들였다. 만화평론가들이 만화의 재인식을 요구하며 이끌어낸 작가들은 현재 작가주의 만화가로 거론되며 만화문화의 일선에 서있는 작가들이다.
이희재, 오세영, 박흥용 그리고 백성민 등의 창작성향은 우리만화가 지닌 저급성이라는 올가미를 벗을 수 있는 좋은 제재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만화 『장길산』은 언론의 화려한 찬사와 평단의 열성적 지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작품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백성민의 수려한 조형능력과 장인정신의 발로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지 못했고, 원작의 힘을 벗지 못한 각색은 만화의 매력을 저만치로 밀어내고 있었다. 연극연출가 박인배에 의해 짜여졌던 콘티는 그의 느닷없는 구속으로 백성민에 의해 마무리됐다. 백성민의 전작들이 잡지연재를 통해 책으로 묶여져 나왔을 때 작품의 닫음새에 대한 독자의 불만은 거대한 것이었다. 한껏 굿판을 벌이다가 마치 기력이 쇠진해 고꾸라지는 무당을 보고 있기나 한 듯, 불안감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백성민의 면죄부는 언제나 같은 것이었다. 연재시의 어려움과 연재지 폐간 등의 이유로 완성도를 놓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연재를 거부하고 전작출간을 계획했던 작가는 다시 한번 황급하고 무기력한 닫음새를 이끌었다. 이야기매체의 창작인으로서 지녀야할 미덕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독립적 시각이 원작에 묶여 배제된 것은 만화 『장길산』의 내재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동인이 됐다.
안티히어로, 역사만화를 만나다
백성민의 역사만화는 박광현과 김종래를 통해 계승됐던 전통적 영웅에서 한 걸음 비켜선 양민의 영웅, 천민의 영웅이다. 질끈 동여맨 머리엔 태생에 대한 분노가, 이를 감춘 패랭이 속으로는 신분 번복의 의지가 감춰져있다. 잔 바람에도 쉽게 휘날리는 바짓가랑이를 감출 줄 모르는 이들. 너른 벌판에 홀로 서서 혹독한 신분의 무게를 어쩔 줄 몰라 양껏 웅크린 어깨를 하고 있는 이들. 언제고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듯한 무지랭이 사람들. 그들은 때로 신분의 한계를 넘기 위한 혹독한 수련을 쌓고, 사회가 용인하지 않을 사랑을 하기도 한다. 천민 출신이라는 이유, 또는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빼앗긴 기회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야릇한 운명은 계산된 속박 안에서 유리구두 같은 환상을 건 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닫을줄 알고 가는 격전. 무리의 중앙에 서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것으로 설정된 뻔한 운명. 이런 이에게 있을 숱한 번민과 회한이 쓰러지는 그를 부둥켜안고 달래게 한다. 백성민의 역사만화가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역사만화를 통해 만나는 주인공의 전형은 고대 설화적 바탕 위에 바른 성장기를 거친 인물이었다. 국란을 겪으며 나라를 위한 희생에 용맹스러웠고, 도덕성과 준법성을 캐릭터로 지니고 있었다. 이는 군부(軍府)의 요구에 의한 작가 자체검열 또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통속적 창작경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성민은 이러한 표준화(?)를 전작들을 통해 상당부분 벗어냈다. 소위 ‘동학이야기 작가’로 불릴 만큼 농민항쟁과 반(反)영웅을 통한 서사전개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역사만화는 백성민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구조와 주인공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백성민의 역사만화를 계승할 이는 아직 우리 만화 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60년대 시대극화의 한 유형으로 박기당 등에 의해 소개됐던 공포시대물(恐怖時代物) 등이 무협(武俠)과 명랑(明朗) 등의 장르와 교합하며 새로운 유형으로 제기되는가 하면, 시대극이 지닌 낭만성향 등이 순정(純情)의 시각언어와 혼성되는 양태(樣態)를 보이는 정도다. 백성민의 역사만화를 잇는 작품은 아직 백성민의 손을 통해 나오고 있다.
『토끼』를 통해 본 백성민의 시선
『장길산』 이후 별다른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백성민은 97년 새로운 작품을 공개했다. 서울문화사의 성인만화잡지 《빅점프》를 통해 발표된 『토끼』. 홍경래의 난을 중점으로 관군의 병졸 씨동이의 대립이 이뤄진다.
현재 출간된 3권까지의 이야기다. 『장길산』에서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옛사람들의 형상은 이제 이질감 없는 조형성을 보이고 있고, 20년을 넘어서는 작가의 화력은 힘찬 붓놀림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의 실핏줄 솟은 인상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칸 나눔새는 극의 지루한 연결과 이야기의 정체감에 혼란을 준다.
하지만 『장길산』에서 움직임이 약했던 그림들은 나름의 추진력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구도연출의 화려함은 독화자(讀畵者)를 만화매체의 근원으로 매몰되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전에 없이 자주 사용되고 있는 표현주의적 기법 역시 작가의 고뇌가 이야기를 쫓느라 바빠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한다. 작가의 깊은 사색은 당대 무지랭이 민초들의 속내를 전달하기엔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무지가 알게 하는 민초들의 공포묘사는 백성민의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 한층 심층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책의 서두에 밝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홍경래의 난(亂)을 바탕으로 한마을에 사는 젊은이들이 칼을 들이대는 국면은 우리 현대사에서 봐왔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군역의 의무로 징병된 씨동이와 반상의 인습을 타파하려는 반란군의 격돌은 마치 대모진압을 나온 전경들과 대치한 학생운동대를 연상케 한다. 백성민은 『토끼』를 통해서 역사만화가 그 동안 지녀왔던 정형성을 또 다시 파괴하고 나선다. 바로 선악(善惡)의 구분점을 불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역사만화는 선악의 분명한 대비구조를 취하고 있었던데 비해 『토끼』는 역사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가 동일한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라고 힘있게 되뇐다. 선자의 위치에 있는 자도 악자의 위치에 있는 자도 때로는 난폭한 망나니로, 때로는 정겨운 선인(善人)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종교(宗敎)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단편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만화가 박흥용은 신앙을 지니게 된 직후 창작 소재에 대한 변화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신에 대한 물음과 의문이 사그라지고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작품의 소재는 자유스러워 졌다. 후배작가인 박흥용의 예에서도 찾을 수 있듯 기독교도인 백성민은 지천명의 나이를 맞이하며 새로운 견지(見地)를 지니게 된 것이다. 백성민의 신앙심이 신실(信實)해질수록 작품에서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포용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백성민은 『토끼』에서도 전작에서 사용했던 컷 연출을 재차 사용하고 있다. 역사만화나 시대극화의 작가들-다른 작가들도-은 특정 컷의 연출시 실제 사진 컷을 재구성하여 이야기의 사실성을 증가시키는 연출법을 자주 사용한다. 백성민의 경우도 동학운동과 농민항쟁시의 역사자료를 컷 연출에 사용해왔다. 대중의 시선에 일반화된 시각자료가 작품과 연결되며 얻어지는 시너지 효과는 극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각인 되기 마련이다. 백성민은 이처럼 각인 되어 잊혀지지 않는 컷을 『장길산』 등의 작품에서도 수차에 걸쳐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실재한 시각자료가 지닌 의미와 극의 구성이 동일할 때, 그리고 극의 의미와 맞물리는 작은 느낌을 시각자료가 지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할 때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든 후자든 적당한 연출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역사만화를 하는 백성민에게 중대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역사가 지닌 시간이라는 규정된 울타리 안에서 전후 구분 없이 의미의 상승을 위해 일반화된 시각자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마치 백제인이 신라의 금속장신구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토끼』는 97년 말 문화체육부가 선정한 만화부분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출판만화대상이 완결작에 국한되므로 선외가 됐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로 백성민의 『토끼』는 다시 한번 우리 만화계의 풍성한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토끼』는 최근 청소년보호법의 시행으로 전면 표지 상단에 ‘18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딱지를 붙이고 출판됐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만들어내고, 이런 인식에 따른 만화를 제단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청소년보호법은 만화가 지닌 주홍글씨를 끝내 지우지 못하게 한다. 이젠 지켜져야 할 그 법을 따르기 위해 타매체가 드리는 공은 가시적이지 않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하의 만화는 무수한 변화의 순서를 겪고 있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몇편되지 않는 역사만화 『토끼』가 성인들만을 위한 구독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만화사가 지니고 있는 역사만화는 장르의 특성상 교육성과 교훈성을 내재하고 있다. 민초들의 의복을 갑옷보다 더 힘있고 멋스럽게 그릴 줄 아는 작가 백성민의 변형된 역사만화에도 이러한 장르적 특성은 유효하다.
백성민의 영웅교체
백성민의 역사만화는 장르의 속성이 지닌 주인공의 정형성을 흐트르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영웅교체를 선언했다. 만화의 매체적 특성상 역사물의 주 소재에서 제외되지 못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의 주인공은 양반집 아들, 또는 소위 위인이라고 치받드는 장군들이었다. 군사정권이 우리에게 남긴 거대한 유산 중 하나가 장군위인전집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맹목적인 충효사상을 조장하고, 절대적인 상하(上下)가 존재하며 무관(武官)이 세계의 주인이었던 때를 고집 하는 것. 백성민의 역사만화는 이를 바꾸고, 우리에게 새로운 영웅과 새시대의 위인을 소개하고 있다.
서두에 김대중 당선자의 정권교체가 백성민의 만화 읽기와 맞물린 부분은 여기에 있다. 백성민의 작품연보를 보면 그가 역사만화의 장르적 특성-『조선왕조 500년』류의 왕족이야기-으로 인해 고민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헐벗은 자의 고군분투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가득하다. 백성민이 작품을 통해 이룩한 내외적 성취는 우리 역사만화가 지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단축한다. 만화매체와 역사만화장르는 이제 늘상 우리와 함께 있는,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한 새로운 영웅을 만난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히스테리, 모던코믹스봄, 1998. 7. 1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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