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터치와 H2의 아다치 미츠루, 웹진 코믹존, 2000


아다치 미츠루는 원한다. 일용품처럼 반복 구매되는 작품


괜한 소리 - 즐거운 공산품 소화시키기


장사꾼이 있었다.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를 파는 장사꾼.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을 파는 장사꾼. 두 장사꾼을 사이에 두고 구경꾼이 묻는다. 이 방패로 이 창을 찌르면...  장사꾼은 선뜻 실행을 피하지만 어느 사이 사람들은 몰려든다. 구경꾼의 심리는 이 난처한 상황에 흥미를 느낀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대의 장사꾼들은 구경꾼의 심리를 이용해 무수한 영업전략을 세웠다. 자연 발생적인 상황이 아니라 의도적인 대립 상황을 연출한다. 구경의 욕구를 지닌 이들은 연출된 상황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점차 그 내막을 알게 되면서부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선한 주인공이 언제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뻔한 수수께끼는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나 구경에도 자본논리가 개입하고, 불균형이 심화됐다. 사자와 투사의 대결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권력과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쌈패들의 주먹다짐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일반인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일반적인 구경꾼, 대중의 심리를 어루만져주는 구경을 위한 구경이 사실로 승화됐다. 구경꾼들은 이제 뻔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며 궁핍한 즐거움을, 즐거움의 공산품을 맛나게 소화해낸다. 그 안에는 고전적인 원료, 원형이 주는 익숙한 맛이 있다. 


진짜 소리 - 표준화된 작품으로 승부하는 아다치 미츠루


아다치 미츠루는 이 익숙한 맛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내는 일급 요리사다. 선자와 악자의 결과 뻔한 다툼을 피곤하게 이끌어내는 데도 일급이지만, 이 피곤한 소재를 가장 맛깔나게 차려내는 데도 일급이다. 뻔한 요리에 최고의 전통과 일급의 서비스를 포함한다. 독자든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든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앞에서는 공산품의 표준화된 맛을 음미한다. 야구소재 만화인 <H2>도 마찬가지다. 그가 줄곧 다른 작품에서 보여줬던 대립과 우정, 남 2, 여21의 삼각 연애. 

아다치 미츠루는 작품 속 주인공 히로가 직구로만 승부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처럼 이 주제로만 승부하겠다고 고집하는 작가이다. 전편 격인 <터치>에서도 속편 격인 <H2>에서도, 그리고 국내에 덜 소개된 작품 속에서도 작가는 고집스럽게 이 주제를 내민다. 

직구로만 승부한다는 유아적인 다짐과 어린 카리스마. 10여 년의 격차를 둔 두 작품 속에서도 아다치 미츠루는 변함없는 고집쟁이 요리사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페르소나인 주인공 히로를 통해 직구로만 승부하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고,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것도 무리가 없다는 투로 달려든다. 

아다치 미츠루가 즐거운 또 한가지 이유는 직구로만 승부하는 자신을 스스로 실험하는 데 있다. 한번도 져본 일이 없는 슈퍼맨이 질지도 모른다는 뻔한 위기감을 느끼는 원칙. 아다치 미츠루는 이를 독자편에서 물어본다. 또는 독자편에서 선택하길 기다린다. 

이번에도 아다치 미츠루는, 히로는 직구로 승부한다. 못할 것 같은가!? 주인공 히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스스로 이기고 싶다는 사심이 있음을 경계하면서. 완결편인 34권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공은 연적 히데까오 앞까지 뿌려졌다. 창과 방패, 모순의 대립은 장르의 원칙에서 보면 흥미로울 것이 없다. 결과는 뻔하다. 마치 조리법대로 끊인 라면의 맛이 뻔하듯 <H2>의 결과도 뻔하다. 

아다치 미츠루는 자신의 작품을 표준화시키려 한다. 마치 일용품처럼 반복 구매되길 바란다. 그것이 소원대로 되지 않을 까봐 작가는 고유한 상표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이름을 단 표지. 아다치 미츠루는 자신의 상표가 포함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하는 작가이다. (끝) 


Adachi Mitsuru/ H2/ 도)대원/ 2000.6/ 34권(완)스포츠/ 단행본/ 청소년

★★★1/2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이미지 맵

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Critique/피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