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미술평론가 인하대 성완경 교수 인터뷰, 코코리뷰, 1998

나는 원한다. 문예로서의 만화, 접합으로서의 만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도무지 혼자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할 때, 옆자리에 선 사람을 보는 일은 얼마나 반가운가. 그런 사람의 역할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복된 일인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 그의 믿음직한 어깨를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한다. 어쩔 때는 그것이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쉬지 않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주저앉고, 그러나 결국 분노하고, 그러나 결국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또 다시 주변부를 맴돌 것이 뻔한 일이더라도. 


그럴 때, 우리는 위안이 돼줄 사람을 만나고, 허덕이고 있는 정신을 잡아줄 능력자를 찾아나선다. 때로는 그 능력자의 탐스러운 힘에 취하기도 하고, 가끔은 자기과시에 빠진듯한 능력자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성완경은 그렇게 우리와 만나졌다. 우리의 힘겨운 노력들을 다독이고, 풀지 못하는 문제의 답을 알려줄 듯한 이 사람. 그는 누구를 만나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우리 시대에 드물게 보는 지식인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완경은 70년대 말부터 모더니즘, 민중미술, 사진·비디오·만화 등 시각문화 일반, 공공미술 등에 걸쳐 폭 넓은 활동을 해왔다. 그는 박재동(시사만화가), 박세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과 함께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한국만화학회(현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의 창립 멤버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만화이론강사로 활동하면서 `만화`와 관련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공공미술 기획·제작자로서, 미술평론가로서 많은 활동을 해온 그는 광주비엔날레의 커미셔너로, 환경조형 미술인으로 이미 미술계 내 외부에 정평이 나있는 유럽통 인사중 한명이다. 그런 그가 98년 들어서 만화와 련된 수많은 일들을 벌렸다. 우선 가시적인 것이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만화 강좌와 시사주간지 <뉴스플러스>지에 25주에 걸쳐 `성완경의 세계만화 탐사`를 연재한 것이다. 만화계의 일반에게는 아직 생소한 성완경. 그와 만나서 차한잔을 사이에 둔 한가로운 이야기시간을 가졌다. `힙합`세대에 버금갈만한 그의 젊은 머리와 나눈 담론 가운데 한가닥을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지면에 옮긴다. 


박석환(이하 `박`) : 민예총에 개설된 만화강좌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강좌 내용도 그렇고, 강사에 대한 궁금증들도 많다. 

성완경(이하 `성`) : 현재 인하대에서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 강의를 한다. 만화관련 강좌는 96년 영상원에서부터 시작했다. 영상원에서는 `만화 읽기`, `만화 기호학`, `만화비평 세미나`를 맡았다. 98년 3월부터 민예총에서 `만화, 상상력의 대 탈주` 등의 강좌를 진행했다. 유럽·미국 만화를 중점으로 만화의 장르 이해를 위한 설강이 주가 됐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는 `세계걸작만화읽기` 강의를 할 것이다. 몇가지 토픽들을 중점으로 도출되는 작가, 작품에 관한 수업이 진행된다. 


박 : 미술평론가로서 활동을 해 온 걸로 알고 있다. 왜, 갑자기 만화 관련 일들을 하게됐는가? 

성 : 70년대 말부터 미술평론 작업, 공공미술 기획·제작자로 활동했다. 미술과 만화가 분리돼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70년대 초, 파리 유학시절에 불어권 만화를 접하게 된 뒤로 최근까지 유럽과 미국의 만화 작품들과 저널을 즐겨 읽고 있다. 프랑스 앙굴렘의 국제만화연례전과 국립만화영상센터(CNBDI) 부설기관인 만화박물관의 단골 방문객이다. 파리의 만화전문서점Album의 문턱을 닳게 한 만화애호가Bedephil중 한 명이라고 자부한다. 


박 : 현재 강좌나 연재 글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는 만화들은 낯선 것으로 보인다. 

성 : 지금하고 있는 작업들은 세계만화의 역사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는 해외만화하면 으례히 일본만화를 떠올릴 정도로 만화편식주의에 빠져있다. 일련의 작업들,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새로운 기류와 예술성이 높은 `저자`만화가들의 등장, 그래픽노블에 대한 소개 등이 다소나마 만화편식을 분쇄시키고 새로운 흐름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박 : 국내에서도 90년대 초부터 언더그라운드만화와 저자만화가, 즉 작가주의 만화가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맞춰 주류 상업만화들의 변화도 눈에 뛴다. 상업만화들의 변화는 언더들의 설 자리를 뺏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성 : 언더는 만화 역사의 일부분이다. 작가주의적인 상상력, 얼터너티브의 신화 등 미학적, 사회학적 흥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작가들 역시 상업적인 것에 반대하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상업만화의 언더만화적인 변화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더는 그 자체로 한계성을 지닌다. 작가 개인이 아닌 전체를 생각한다면 언더가 제시하는 것들은 새로운 만화의 재료에 불과하다. 이 재료를 상업만화, 기존의 만화가 흡수해서, 새로운 접합의 문화, 만화가 나와야 한다. 

언더의 상상력은 매우 풍요롭다. 이 풍요로움을 기존의 작가들이 흡수하고, 공존의 관계를 취해가야 한다. 


박 : 최근의 몇몇 사례들, 여자만화 <나인>, 등. 소위 서울문화사판 COMIX라 명명될 만한 잡지들의 출현은 분명 탐스럽다. 서울문화사가 흡수한 언더그라운드 작가진들이나, 비주류성향이 눈에 띄는 작품들. 그러나 만화의 전 부분을 한쪽 측면에서 모두 헤아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가령 만화출판사가 잡지, 단행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 만화가 양성 학원 등 연계분야를 전부 점령하고, 다종다양의 작품군들을 거느리는 것이 가능한가? 

성 : 우만연의 만화전시회 `만화야 꼼짝마`전에 참가했었다. 잔혹성, 의외성, 기괴성이 넘치는 만화들을 만났다. 예술적 심각성, 소재의 특수성 등을 볼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문화적 소통이 약하다. 대중의 연속적인 참여가 필요한 예술. 만화가 여타 예술과는 다른 이 점을 만족시키야 한다. 팬진Fanzine의 세상은 놀랍다. 만화라는 장르적 특성 탓에 억압되지 않은 감수성을 만날 수 있다. 한겨레 출판학교의 작품집 <만취>는 극단적 표현들과 낯설은 느낌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앞서 언더의 한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은 이 부분을 말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기존 진영의 흡수에 의해서다. 


박 : 물론, 변화는 지속적일 필요가 있다. 언더의 시도들을 주류에서 흡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결국 대안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할 때만이 가능하다, 이건가? 

성 : 그렇다. 비제도권 만화가 스스로 신비성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 언더 만화가 컬트화되고, 물신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더와 기존의 만화가 접합을 이루면 그곳이 곳 주류가 된다. 이런 모델의 반복을 통해서 만화는 발전할 것이다. 


박 :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미술과 만화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달라. 뉴스플러스의 연재 글에서 문예로서의 만화, 그리고 그래픽 노불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전무하다 싶을 정도의 만화형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성 : 미술과 만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미술과 만화는 공통분모가 많은 장르다. 이는 폭넓게 인쇄예술, 시각예술로 볼 수 있다. 이중 만화가 지닌 장점은 언어. 기존의 미술은 고답적이고 커뮤니케이션 측면이 약하다. 만화는 힘있는 이미지 언어, 출판양식으로서의 미술 형식이다. 

만화 특유의 시각적 서사형식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 그림소설Graphic Novel이다. 미국 만화계의 존경받는 거장 윌 아이스너는 `코믹스가 멜로디라면 그래픽노블은 심포니다.`라고 말했다. 소재와 스타일의 다양성과 혼합성, 그리고 독창성과 실험성이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이다. 글이 주는 재미와 그림이 주는 감동. 이것이 문예로서의 만화다. 우리에게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박 : 그래픽노블의 대표적인 잡지라고 할 수 있는 <헤비메탈>이 최근 한국어판으로 소개됐다. 저질의 종이에 조잡한 번역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이 잡지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서 이런 류의 잡지시장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죽음의 행군>이 적당선의 판매수치를 보여주고 있을 뿐甄? 

성 : 만화잡지가 중요하다. 만화작품이 수록된 잡지도 중요하지만 만화에 대한 잡지, 만화저널이 필요하다. 다양한 만화정보, 만화평론이 실리는 잡지. 이로 인해 독자가 성숙하고, 작가가 성숙할 수 있다. 


박 : 긴 시간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공식직함은 미술평론가, 전시조직 전문가이다. 현재의 입장에서 추후 활동 계획, 연구방향 등에 대해 말해달라. 

성 : 우선 문예, 대중문화의 장르로서 외국의 좋은 만화들을 소개하는 작업이 선행 될 것이다. 만화를 미술에 끌어들여 미술을 풍부하게 만드는 일도 병행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만화행사들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이다. 프랑스 예술 교류 지원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상태이다. 앙굴렘과 파리의 만화전문출판사들을 돌아볼 생각이고 국내 전시행사의 문제점들을 개선할 것이다.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은 페스티벌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기본 컨셉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학의 만화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성완경. 작은 키에 흰머리가 수북한 이 사람. 그러나 그의 눈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하죠?`라는 우문을 던졌다. 강렬한 눈빛을 깊게 감추고 호탕한 웃음을 떨쳐보인 이 사람. 소개되지 않던 구미의 만화들을 소개하고, 새로운 만화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소리친다. 미술분야 전시조직 전문가로서 국내 만화행사들의 변화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환경조형미술, 공공미술에 대한 기획과 제작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원심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움직이는 이 사람. 그는 문화의 변방, 문화의 부족분들을 메우기 위해 지금도 운동을 벌리고 있다. 혼자가 아니면 여럿이서. 


만화를 생각하며 많은 일을 한다. 나의 사랑이 다가설 수 있고, 나의 욕심을 채워줄 만화를 만나기 위하여. 스스로가 만화가 아름다운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러나 고민은 날이 갈수록 쌓여갈 뿐 해결되진 않는다. 성완경. 그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것이라 믿는다. 흰머리가 수북한 이가 나의 고민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럽다. 그러나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만한 또 한사람을 우리 주위에 두게 됐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 성완경교수 소개 ♧ 

미술평론가,만화평론가,공공미술 및 문화프로젝트 기획·제작자 

1944년 대전 출생 

71년 서울대 미대(서양화 전공)졸업. 

74년 프랑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벽화과 졸업 

96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커미셔너유공 대통령표창 

제7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 문화체육부장관상 

현 인하대 미술교육과 교수, 성산환경조형연구소장, 한국영상학회 이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이사,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고문 

저서 : <레제와 기계시대의 미학>(열화당,1977), <성완경 미술평론집>(열화당, 근간, 전3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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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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