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가 이상무의 마운드 그리고 그대들의 마운드, <우정의마운드> 서평, 2025.10.31

 

마운드(Mound)는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지역이다. 내야 중앙에 위치하고 야구장 내 다른 지역보다 25.4~38.1cm 높다. 투수는 이 언덕 위에서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진다. 일구에 환호와 성취를 얻기도 하지만 잘 못 던진 일구로 비난과 좌절에 휩싸이기도 한다. 머뭇거릴 수도 없고 숨을 곳도 없는 일구이무(一球二無)의 공간이 곧 마운드다.

 

만화가 이상무(1946년 경북 김천 생)1963고교 데뷔를 이룬 만화천재였다. 1966년 박기준 문하에서 수학하고 1972<주근깨>를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1974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편 시리즈물 <한국인> 연작을 대본소용으로 발표하면서 단숨에 주목받는 만화가가 됐지만 이상무가 선 마운드는 대본소였다.

이른바 만화방으로도 불린 이 공간은 만화청년들에게는 꿈의 무대였지만 일부 보수적 시각을 지닌 이들에게는 저급한 2류 시장으로 매도됐다. 이는 중앙언론사가-아동잡지나 가족잡지를 통해-만화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고급만화론을 설파하면서 형성된 인식이었다. 하지만 만화계는 꽤 오랫동안 대본만화=저급, 잡지만화=고급하다는 망령과 싸워야 했다.

 

<우정의 마운드>는 그 시기 이상무의 복잡한 속내와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76년 아동교양잡지 월간 소년중앙의 별책부록 형식으로 발표됐다. ‘시골 촌놈이 전국의 만화방 서가에 꽂히는 작품을 내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전국적인 구독자를 지닌 중앙일보의 자매 잡지 부록으로 독자들 집 앞에 배달되는 작품을 낸 것이다. 서른 살 이상무에게는 성취였지만 혼란과 부담이기도 했을 것이다. ‘대본만화는 저급하다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지만 고급하다는 잡지만화계에 왔으니 그만큼 다른 걸 보여줘야 했다. 반면, <다시 찾은 마운드>1982년 소년한국일보사에서 발행됐다. ‘한국일보자매지인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것이 아니라 소년한국일보사가 대본소용 만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단행본 형식으로 발행한 것이다.

 

두 작품은 주인공 독고탁과 봉구, 연인 격인 숙과 라이벌 준의 이야기를 고교야구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각기 다른 세계관의 작품이다. 하지만 작가가 대본소를 떠나 잡지로 갔다가 다시 대본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표했다는 점에서 연결성이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의도했든 하지 않았든-자신이 작업해야 할 각기 다른 터전을 강조하듯 마운드를 제목으로 달았다. 그 탓일까? 대본소를 떠나 잡지로 갔을 때 낸 <우정의 마운드>는 주인공 독고탁의 아집과 열등감으로 가득한 어두운 드라마를 펼친다. 반면, 대본소로 돌아오면서 낸 <다시 찾은 마운드> 속 독고탁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화해와 포용을 향해 질주한다.

 

각기 다른 마운드에서 청년 이상무는 다음은 없다는 듯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구로 승부했다. <우정의 마운드>에서 던진 일구가 <한국인> 연작에서 보여줬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어둠의 서사였다면 <다시 찾은 마운드>에서 던진 일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주변과 연대하며 성취하는 이들의 삶을 재현한 밝음의 서사였다. 두 편 모두 대중성과 작품성 면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뤘고 독고탁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걸작으로 꼽힌다. 이중 <다시 찾은 마운드>1985년 대원동화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밝고 희망찬 독고탁이미지가 현재까지 유지되는 요인이 됐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1955~1974)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에 등장한 작품인 만큼 지금 시대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하지만 만화가 이상무 또는 작품 속 독고탁이 섰던 마운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대들 또는 우리 모두는 오늘도 크고 높은 원형의 흙무덤 위에 올라서야 하고 두 번의 기회는 없을지 모를 일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상대를 이겨야 하고 이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자신에게 혹독해야 한다. 그리고 이기지 못하더라도,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 그게 어디가 됐건 내가 설 수 있는 마운드를 지켜야 하고 최선의 일구를 던져야 한다. 분노가 동력이라면 활용하되 포용에서 희망이 나온다는 것을 잃지 않는 독고탁이 길 빈다.

 

 

<우정의 마운드> <다시 찾은 마운드> 복간에 붙여

박석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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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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