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1932.10.08~ 2019.09.08
주일 저녁 늦게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월요일 수업이 있어서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향년 87세. 노환이라 몇 해 전부터 걱정은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웠다. 테라스로 나와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떠올려봤다. 여러가지 일이 스쳤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인터뷰이로 처음 만났을 때, 원고 요청을 드리기 위해 만났을 때... 등등등. 그러다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김성환 선생님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고교시절에 만화가 화실에서 일을 배웠다. 당연스럽게 만화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만화병(제도병)으로 사단 작전처에 파견되어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제 진짜 만화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그만 화실을 꾸리고 작업에 매달렸지만 수수께끼 삽화나 학습지 컷 같은 일을 겨우겨우 해내는 수준이었다.
군에 있을 때부터 틈틈이 어떤 만화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지금 만화계가 어떤 상태인지 봤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정리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 글이 될까 싶기도 했지만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 부분이 있었고 이런 고민이라도 적어내야 혈기왕성하던 그 시절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화에 대해 쓰고 있었지만 공부는 덜 됐고 경험 역시 미천했다. 단어가 부족했고 개념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미흡하던 그 시절, 백과사전 코너에 있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내가 찾던 지식의 관문이었고 검색창 역할을 했다. 이 백과사전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6만5천 여 항목의 색인어를 3천8백 여 명의 집필자를 선정해 27권 분량으로 1991년 발표한 것이다. 당시 이 백과사전 편찬 작업은 한국학 사상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만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도서관에 갈 때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봤고 '만화' 항목을 찾았다. 만화의 정의로 시작해 개관, 장르별 역사와 현황, 전망까지를 조망하는 글이었다. 이 글의 집필자가 고바우 영감을 그린 시사만화가로 알고 있던 김성환 선생님이었다. 김성환 선생님이 쓴 글을 통해 만화 관련 인명, 각종 매체명과 작품명 등을 알았고 관련 항목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만화사의 큰 줄기와 맥락을 헤아릴 수 있었으니 이 글이 내게는 '만화학의 전거(典據)'였던 셈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7%8C%ED%99%94&ridx=0&tot=55
나의 전거(典據)였던 김성환 선생님의 글
김성환 선생님은 시사만화가였지만 문필가였다. 만화에 대해 공부하고 논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의 만화연구자이자 역사가, 평론가이기도 했다. 만화작품을 발표하는 것 외에도 각종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업의 역사와 형식, 내용과 전개 방향 등에 대해 소개했고 기록했다. 자료 수집과 정리, 분석과 평가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을 글들이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굳이 만화에 대한 기초 연구 성격의 글을 이렇게 까지 쓸 이유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탓일까? 원고의 행간에는 '꼭 필요한 일인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니까, 또는 다른 사람이 잘 하지 못하니까 내가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론 같은 것이 읽혔다.
하지만 아쉬운 측면도 있었다. 김성환 선생님이 백과사전에 쓴 만화 항목의 내용은 시사만화 특히 신문연재만화에 치우쳐 있었다. 아동만화 항목을 잡지연재만화로 뭉꿍그려 놓는가하면 현대만화의 꽃이라 할 법한 극화와 단행본만화(서사만화)에 대한 서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전망 부문의 내용은 자료에 입각한 객관적 서술이라기 보다는 발전 방향에 대한 주관적 서술이 주를 이뤘다. 사전적 정보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김성환 선생님이 백과사전에 쓴 글은 내게 전거였지만 미래에 수행해야 할 목표이기도 했다. 1997년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직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선생님이 쓴 글로 공부를 하고 자료를 쫓아 읽으면서 맹랑하게도 '만화 항목에 대한 백과사전식 서술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이런 부분이 보완되어야 겠다. 이런 부분은 수정되어야 겠다. 이런 부분은 다시 써야겠다. 등등등.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가능하다면 나도 사전이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참고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어판'은 1994년 발행됐는데 '만화' 항목 집필자는 까투리여사를 그린 고 윤영옥(1939~2007) 선생님이었다.
남이 하지 않는 일, 좀 더 세밀하게
직장일과 만화평론일을 병행하면서 그럭저럭 10년이 훌쩍 넘었을 즈음 '사전이 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09년 현대판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네이버가 인명사전 성격의 코너를 마련했다. 만화가 20인을 소개하는 기획이었는데 나는 3명의 집필 위원 중 한 명으로 김성환 선생님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2년 에는 네이버에 만화백과사전 코너가 마련됐다. 내게 한국의 대표만화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꼭 읽어야 할 한국만화에 '한국만화정전'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그 중 한 편으로 '고바우영감'을 꼽았다. 2015년에는 다음에서도 인명백과사전을 만들었다. 내게 김성환 선생님에 대해 서술해 달라고 했다. 네이버 원고가 선생님의 인터뷰와 증언을 중심에 둔 형식이었다면 다음 원고는 연보에 따른 사건 서술과 평가에 중심을 뒀다.
만화평론을 처음 시작할 때 했던 '사전이 되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어느 덧 평론 활동의 목표가 되어 있었다. '만화'를 조망하는 백과사전식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만화인명과 작품명에 대한 백과사전식 글쓰기를 했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을 지속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김성환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났다. 하지만 선생님의 글을 보고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이 쓴 글을 조금이라도 수정하고 바꿔 써보고 싶어했던 치기와 욕망에 대해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왜 만화에 대해 그런 관점으로 서술했는지 묻고, 확인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전에 한번 더 뵙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어쩌면 만났더라도 결국 그런 질문이나 고백은 못했을 것 같다. 선생님의 역할이 초창기 만화계에서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면 후학들의 역할은 그 것을 '좀 더 세밀하게 하는 것'일 터. 나도 그중 한 명이어서 고백을 빈 선언을 하든, 질문을 빈 지적을 하든 김성환 선생님은 '그런 걸 왜 내게 물어요. 자기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라고 했을 것 같다.
네 칸으로 세상을 호령했던 선생님. 남들이 하지 않는 만화연구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전거를 만드셨던 선생님. 네 칸 밖 어디쯤의 그 세상에서는 조금 더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고 좀 더 주의 깊게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이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성환 선생님 관련 게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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