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의 날 ; 1996년 11월 3일 그 후 20년, 만화규장각,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6.10.25

매년 113일은 만화의 날이다.

 

만화의 날은 한국 만화의 부흥과 만화인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로 명시되어 있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1997821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화인의 밤행사가 열렸고 이 자리에 참석한 만화가와 애니메이션 제작자 300여 명이 투표를 통해 113일을 만화의 날로 정했다고 했다.투표를 했다는 것은 제정 또는 날짜에 대한 이견이 있었음을 의미 한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1997.08.23.(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113일은 만화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96514일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자문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세계화시대의 청소년상 정립방안을 보고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인 음란·폭력성 영상·인쇄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보호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보고한다. 임의단체였던 간행물윤리위원회를 법제화하고 음반·비디오·만화 등의 제작·유통·판매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단속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법안은 총리실의 주관 아래 문체부가 실무를 담당하고 오는 7월까지 시안을 마련해 공청회를 거친 뒤 10월에 입법예고 및 국회에 상정한다고 했다.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문체부 당국자는 벗기기 경쟁으로 청소년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쳐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음란 만화 및 출판물, 스포츠신문과 컴퓨터의 확산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CD롬 등이 이 법의 주요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칭 청소년보호법이라 불리는 법안이 정부 주도하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문화정책 담당자의 발언이라 하기에는 매우 강도 높은 경고이고 선포였다. 그렇게 마련된 시안2장 제85항은 다른 매체와 달리 만화의 경우 당해 매체물이 최초로 유통되기 전에 심의·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법이 통과되면 만화는 유통 이전 단계에서 사전 심의를 통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화계는 같은 해 920청소년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범 만화인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30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대책위는 시대착오적 법 제정 철회, 간행물윤리위원회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리고 1996113(일요일),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를 여의도 광장에서 열었다. ‘만화가·시민·학생 등 700여 명이 참가했다.

 

[ 출처  ;  한겨레신문 , 1996.11.03.(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집회를 주도한 대책위는 이후 만화 창작 자유 보장 대책위원회로 재구성해 반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기실 이 시기 투쟁 동력 일부가 사라졌다. 정부 입법안 중 만화계가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전 심의조항이 법안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만화계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같은 해 104일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가 헌법 21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존 법률이나 신설되는 법률의 사전 심의 관련 제도는 법적 효력이 상실됐다. 이에 청소년보호법 입법안에서도 관련 조항이 삭제되거나 일부 수정됐다. 문화계로서는 당연한 결과였지만 입법을 추진했던 정부는 곤혹스런 상황이었다.

만화계는 사전심의 조항이 사라졌음에도 집회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위원장 황미나)는 법안에서 사전심의가 빠졌지만 사후심의장치가 여러 겹으로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정기국회 통과를 일단 유보하고 좀 더 많은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정부와 각을 세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실익도 있었다. 19972월 정부는 관 주도로 열렸던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19951회 행사 개최)을 민간에 완전히 이양한다고 밝혔다. 국면 상 정부의 회유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만화가협회 등 4개 단체 대표들은 민간 중심의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그 해 814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될 제3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을 준비했다.

 

정부 입법에 대한 반대 투쟁 결과는 참혹했다.

 

만화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보호법은 정부 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199771일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됐다. 이후 만화계는 말 그대로 융단 폭격을 당했다.

법 시행 10일이 채 지나지 않은 79일 서울경찰청은 청소년에게 폭력 음란만화를 대여해 온 김모씨(37) 등 만화방 업주 142명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협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총판 관계자 3명에 대해서는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이 법에 따라 신설된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강지원)715일 유해만화 심의를 통해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불량 만화 17백종 510만권에 대해 청소년 유해판정을 내렸다’.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된 뒤 내려진 첫 유해판정이었다.

이후 상황은 더 긴박하게 돌아갔다. 721일에는 검찰이 당대 만화계를 대표했던 작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음란문서 제조 등의 협의로 소환 조사한다고 밝혔다.

731일에는 음란폭력성 조장매체 공동대책협의회(이하 음대협, 공동대표 손봉호)’3대 스포츠 신문이 선정적인 반라의 여체시진과 음란·폭력만화 등을 실어 청소년범죄를 충동하고 있다며 신문사 대표와 만화가 등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 스포츠신문 편집국장 등 간부와 만화가 등 15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중 10명이 연재만화가로 벌금 3백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2개 월 간의 계도 기간을 거친 후 91일부터 법 시행을 한다는 발표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만화계는 731일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등 11개 만화단체로 구성된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 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공동대표 권영섭, 이두호)’를 결성하고 만화가협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작금의 사태를 검경의 만화탄압으로 규정한 대책위는 창작의 자유와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억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까지 유린했다며 검경의 탄압에 맞서 모든 만화인들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출처  ;  한겨레 , 1997.08.01.(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검경의 수사로 만화계는 초토화됐다. ‘출판만화의 경우 월 45억원 가량 되던 매출액이 7월에는 70%이상감소했고 하루 15천부 정도 팔리던 만화책이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하루 15백부 내외로 줄었으며 만화방도 하루 150명 정도이던 손님이 100명 이하로 줄었다. 만화인들은 82일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앞에서 만화 표현의 자유를 위한 만화사랑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814일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기간 중에도 서명운동과 다양한 형식의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정부가 내준 판에서 반정부 투쟁을 한 것이다. 21일 긴장과 대치 속에서 축제는 끝났다. 폐막식 후 열린 만화인의 밤행사에서도 반대 투쟁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심의 철폐를 외치며 처음 여의도에 모였던 1996113일의 결의를 되새겼다. 그리고 이 날을 만화의 날로 정했다. 하지만 전원 합의라기보다는 투표를 통한 의결과정을 거쳤다. 반대 의견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로부터 20, 만화계는 그 날을 딛고 살고 있다.

 

1997년 만화계는 어딜 가나 전쟁터였다. 만화방 업주가 청소년 유해 만화 대여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뉴스가 퍼지면서 폐업과 업종 변경이 속출했다. 어떤 것이 청소년 유해 만화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서점이나 가판은 만화도서의 진열을 중단했다. 총판은 청소년 유해 만화를 공급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고 출판사는 유통할 수 없게 된 성인만화잡지를 폐간했다. 청소년 만화 도서의 판매도 급감하면서 중소규모 만화출판사들은 대부분 영업을 중단했다. 청소년보호법이 아니라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협의로 검찰에 기소된 스포츠신문사와 연재만화가 그리고 이현세의 투쟁도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만화탄압이 정권 말기의 실정을 감추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고 선거를 앞둔 대통령 후보들이 이 사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출처  ;  경향신문 , 1997.08.03.(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

 

1997년 시행된 청소년보호법과 이어진 정부의 만화규제정책은 88올림픽 이후 급성장했던 한국의 출판만화산업 전반을 뒤 흔들어 놨다. 속칭 출판만화산업 반토막 설도 이 시기부터 시작됐다. 한편, 1997년 만화계가 정부의 규제 속에서만 있던 것은 아니다. 기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만화의 산업화와 세계화 기반을 다진 정권이었다. 1995830일 대통령 직속 세계화추진위원회는 ‘1996년 청소년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한 4가지 방안을 수립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개방형 공무원 임용과 교육 세계화, 공공부문 정보화, 문화산업 발전 방안, 국가이미지 개선 방안에 대한 것이다.

이중 문화산업 발전 방안에는 만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대한민국 영상만화 대상을 제정하고 국내 만화업체의 영세성을 보완하기 위해 금융지원전담 재단을 설립, 2000년까지 1백억 원의 재원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국제적 규모의 만화행사를 개최하고 인재육성을 위해 대학에 만화관련학과 개설을 확대했다. 만화학회 등 각종 단체의 설립과 만화의 집, 박물관 같은 시설 구축에 대한 구상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당시 정부의 만화 지원 정책이 규제 정책을 덮거나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됐다는 견해도 있다.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문민정부의 만화지원 정책은 규제 정책 이전부터 매우 체계적이고 순차적으로 전개됐다.

정부는 1995년 이후 만화산업진흥방안을 매 해 발표했고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만화계는 풍성한 성과와 다양한 시도를 전개했다. 한국만화가협회의 연표에도 이 시기의 기록이 가장 두툼하게 남아있다. 특히 1997년에는 제1회 춘천만화축제, 1회 동아LG만화페스티벌이 열렸고 <히스테리> <딱지> <믹스> <아디> <나인> 등 그 간 만화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성향의 작가진을 중심으로 한 다양성 만화잡지가 창간되기도 했다. 젊은작가모임 등 다양한 성격의 만화관련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과 만화관련 전문서가 대거 발행되기도 했다. 오히려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검경의 만화탄압사태가 급작스럽게 전개된 측면이 있다. 정권 말 국면전환용으로 만화가 이용됐다는 합리적 의심과 음모론이 여전히 남아있는 이유다.

 

[ 출처  ; SBS, MBC  방송캡쳐 ,  음란물 판결 시와  2 심 무죄 판결 시 ]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만화탄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졌다. 일본문화개방 이슈가 있었지만 사실상 만화분야는 과도한 성적표현물을 제외하면 일본만화에 대해 완전개방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전과 같은 반대 투쟁이 전개되지 않았다. ‘만화탄압이후 만화계는 빠르게 재정비됐다. 탄압이 기존 만화계의 질서를 파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이 시기 만화방과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극화의 시대가 지나갔다. 만화잡지와 코믹스를 중심으로 했던 코믹의 시대도 같이 저물었다. 만화책대여점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급속도로 확산되기도 했고 단행본 중심의 코믹스시장이 열리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문민정부가 세계화를 정책 목표로 했다면 국민의 정부는 정보화였다. PC, 국민PC, 초고속인터넷, 휴대폰 등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가 요구됐고 자연스럽게 21세기형 만화계가 구축됐다. 1998년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가 설립되고 1999년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2000년 문화산업지원센터(현 한국콘텐츠진흥원)가 개설됐다.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만화서비스가 본격화 됐고 <만화 그리스로마신화>로 대표되는 학습만화 붐이 일었다. 판이 바뀐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만화계의 하모니는 정권 내내 계속됐다. 2001년 정부는 만화계의 뜻에 따라 1996년 여의도 집회가 있었던 113일을 만화의 날로 받아들였다. 1997년 만화의 날을 제정 선포한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법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통해 진행된 공식 행사였다. 만화계는 한국만화가협회(당시 협회장, 김수정)를 중심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제1회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남궁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했다. 남장관은 축사를 통해 한국 만화가 수준 높은 문화와 산업으로서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이후로도 정부와 만화계의 크고 작은 갈등은 이어졌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20032월 국민의 정부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1996년 청소년보호법으로부터 촉발된 만화사태는 종결됐다. 2002년 정부는 1차 만화산업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해 발표(2003)했다. 규제보다는 지원에 관점을 둔 계획이었다. 그리고 2003124, 1997년 만화사태의 상징적 사건이었던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에 대한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사건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지지부진하게 유지되고 있던 검찰의 3차 상고에 대해 대법원이 미성년자 보호법 제22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다.

 

113일은 투쟁과 축제, 규제와 지원의 상징이다.

 

2016년 현재, 1996113일 범 만화인 결의대회가 있은 지 20년이 됐다. 1997년 축제의 장소에서 만화의 날을 선포하고 만화사태에 대한 투쟁을 한 지는 19년이 됐다. 그리고 2001년 만화의 날을 공식화하고 기념행사를 진행한지는 16년째다.

만화계는 20011회 행사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매년 113일 한국만화가협회를 중심으로 만화관련 협회 단체가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기념식에서는 오늘의 우리만화(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명의)’ 선정 및 시상, 공로상 및 장한 후배상 시상, 현안에 대한 세미나와 소규모 전시 및 이벤트, 만화인 참여 리셉션 등이 열린다. 10회 행사(2010)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만화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면서다. 11회 행사(2011)에서는 가칭 만화진흥법의 제정을 촉구했고 이를 통해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을 얻어냈다. 12회 행사(2012)에서는 만화 관련 단체 총 연합회 성격의 한국만화연합을 출범시켰다. 13회 행사(2013)에서는 젊어진 협회 단체 집행부와 기성 작가 간의 화합을 도모했다. 그만큼 작가 간 간극이 심해진 것이다. 14회 행사(2014)에서는 공정 계약이 이슈였다. 웹툰을 중심으로 신규플랫폼이 활성화되고 신예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부정적 사건이 다수 발생한 탓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15회 행사(2015)에서는 공공도서관의 만화소장과 열람서비스 그리고 웹툰의 세계 진출이 화두였다. 이제 16.

올 해 만화의 날은 광화문 케이티 빌딩에서 열린다. 표현의 자유와 자율규제가 메인 이슈다. 웹툰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부정적 표현물에 대한 사회적 비판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업계의 고민이 깊어졌고 만화계 내부의 자성 요구도 높아졌다. 정부 역시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20세기 만화산업의 21세기형인 웹툰산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성장하고 있는 만큼 업계 내부의 성과도 있고 정부 지원에 따른 효과도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 이슈도 만만치 않다. 표현물에 대한 사건사고, 갑을 관계에 따른 사건사고 등이 끈이지 않고 있다. 규제의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업계 내부의 자정 노력을 강조하는 일도 있다. 반면, 일부 언론이나 시민사회는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고 보호 받아야 하지만 규제의 필요성이 없거나 무시되어져서도 안 된다.

[ 출처  ;  제 11 회 만화의 날 포스터 ]

 

어찌 보면 113일은 그 날로부터 20년 간, 아니면 더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만화정책을 상징하는 날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또는 가까운 미래의 문제를 놓고 축제에 참가해야 할지? 거리로 나가 투쟁을 계속해야 할지? 지원에 찬성하고 국가 정책에 동승해야 할지? 규제에 반대하고 만화의 가치를 지켜야 할지? 아니면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운영의 묘를 찾아 만화계의 의지가 곧 국가 정책이 되도록 동기화 시켜갈지를 묻고 확인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매년 113일 만화의 날은 이에 적합한 문제를 만들고 참가자 모두가 모여 이에 대한 답을 찾거나 듣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만큼 요구는 선명해야 하고 대상은 명확해야 한다. 매년 올 해 그만한 문제가 만들어졌고 답할 사람이 명확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곧 113일의 정신이고 만화계가 이 날을 기리고 이용하는 방식이다.

 

-------------------

 

사족이지만 113일은 정신이지 만화의 생일은 아니다.

 

사족이다. 방송의 날은 93일이다. 1947년 미국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한국이 최초로 호출부호를 배당 받은 날이다. 영화의 날은 1027일이다. 최초의 한국 영화로 기록되고 있는 <의리적 구투>1919년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된 날이다. 잡지의 날은 111일이다. 1908년 최초의 한국 잡지 <소년>이 최남선에 의해 창간된 날이다. 정부는 1973년 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의 유사기념일 통폐합 및 행사간소화 방침에 따라 대중문화 3개 분야의 생일을 매년 10월 셋째주 토요일로 묶어 문화의 날로 정했다. 이 날이 정부가 정한 대중문화 분야의 국가 기념일이다. 이에 따라 이 시기가 되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하에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최초의 한국 만화가 탄생한 날은 190962일이다. 이 날 이도영의 <삽화>가 대한민보 창간호에 게재됐다. 1칸 만평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을 한국 만화계는 최초의 만화로 꼽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만화 100주년 기념행사가 200962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기실 만화의 날113일은 국가 기념일을 기준으로 보자면 학생운동의 날(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항일운동 기념일)로 표기된다. 정부가 만화의 날을 공식화했고 만화계 내부에서는 공인 기념일이라고 하지만 관련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일부 행사에 정부 관계자가 참여하고 보조금 지원이 이뤄진바 있지만 명확하게는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및 시상 예산이 집행된 것이다.

 

()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참고자료

1. 시사상식사전, 박문각(네이버 지식백과) 
2. 한겨레신문, ‘만화의 날 선포’, 1997.08.23.(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3. 한겨레신문, ‘청소년보호법 만든다’, 1996.05.15.(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4. 위 기사(한겨레신문, 1996.05.15.)
5. 한국만화가협회 홈페이지 연혁 참고
6. 한겨레신문, ‘만화 사전심의 입법추진 논라’, 1996.10.01.(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7. 한겨레신문, ‘만화 심의 철폐하라’, 1996.11.04.(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8. 한겨레신문, ‘상상력 옥죄는 심의강화 안 될 말’, 1996.11.08.(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9. 경향신문, ‘영화 사전심의 위헌’, 1996.10.05.(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0. 헌법재판소는 ‘유통 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미리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다’라고 했다. 
11. 위 기사(한겨레신문, 1996.11.08.) 
12. 한겨레신문,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만화인 손으로’, 1997.02.17.(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3. 한겨레신문, ‘만화 1천7백종 5백만권 청소년보호위 유해판정’, 1997.7.16.(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4. 한겨레신문, ‘만화 때리기 논란’, 1997.07.21.(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5. 1997년 5월 26일 고발 사건
16.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기소키로’, 1997.08.01.(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7. 한겨레신문, ‘만화가 38명 한달간 절필 선언’, 1997.08.01.(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8. 한겨레신문, ‘만화산업 곤두박질’, 1997.08.01.(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 동아일보, ‘민간 전문가 공무원으로 특채’, 1995.08.31
20.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장관 연설문 인용
21. 헌법재판소는 미성년자보호법 제2조의2(불량만화 등의 판매금지 등) 1호 ‘미성년자에게 음란성 또는 잔인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거나 기타 미성년자로 하여금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만화의 반포 등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처벌하는 이 사건 미성년자 보호법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미지 맵

Parkseokhwan.com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Document/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0개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