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 10년 주기설이 있어요. 2000년 초에 극장용 창작 애니메이션이 호황을 이끌다 흥행 실패작이 잇따르면서 결국 시장이 하청 위주로 바뀌었지요.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국산 애니메이션 개봉이 줄줄이 예정돼 있으니 새로운 모멘텀을 맞을 것으로 기대됩니다."(박석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개발팀장)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의 부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19일 개봉한 '마법천자문'을 시작으로 올 연말 한국과 중국 동시 개봉 예정인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 미국 개봉을 추진중인 3D 애니메이션 '다이노 맘' 등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오랜만에 극장 관객들과 만난다. 극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건 2007년'빼꼼의 머그잔 여행' 이후 3년만이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슈렉'과 '토이스토리' 등 성공적인 시리즈를 내놓았고 일본 애니메이션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반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70~80년대 '배트맨', '마징가 Z' 등 일본 업체의 하청 작업을 도맡았다. 2000년대 초반 국민의 정부 문화산업정책 활성화 및 삼성영상사업단 등 대기업의 투자에 힘입어 살아나는듯 했으나'오세암'(2002), '마리 이야기'(2002), '원더풀 데이즈'(2003) 등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투자가 급속히 위축됐다. 업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하청업체로 분업화돼 뿔뿔이 흩어졌거나 게임업계로 이동했다.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기고 극장이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시대가 됐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만은 10년 전 상황으로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올 하반기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의 등장이 이 같은'암흑기'를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업계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2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마법천자문'은 25억원의 제작비와 3년의 제작기간을 투입해 교육과 엔터테인먼트를 합친'에듀테인먼트'콘텐츠를 표방하고 있다.
겨울방학 개봉을 목표로 하는'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은 설립 15주년을 맞은 명필름이 처음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중국의 대지시대문화전파유한공사와 공동 제작 및 배급 계약을 체결해 한국 개봉 시기에 맞춰 중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마당을…'역시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09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제작비 100억원이 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도 준비 중이다. 하반기 미국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다이노 맘'이 그 주인공. '다이노 맘'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애니메이션 지원 프로그램에서 5억원, 수출입은행 등의 투자 프로그램에서 40억원을 지원한 기대작으로 2008년 이미 해외 수출 계약이 됐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가 다시 부활하려면 이 같은 창작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지속되는 한편 핵분열된 산업을 통합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마당을…'을 제작한 박순홍 DNA프로덕션 대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시가 심각하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의 통로인 방송국도 투자 의지 없이 해외 콘텐츠를 사는데만 치중한다"고 꼬집으면서 " 외국 영화의 하청을 받는 '기술 산업'이 아닌 '창작 산업'으로 바뀌어야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영화 관계자도 "업무가 분할돼 있어 제작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며 "분열된 업계를 재정비ㆍ통합해 창작 노하우를 쌓는 작업이 지금부터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올해 145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에비해 한국 시장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진흥원 관계자는 "한국 애니메이션 개봉작이 늘면서 성공작품이 나오면 정부 지원은 물론 민간투자도 한층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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