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서평-일진의 크기(윤필 글/주명 그림), 도서관이야기,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016.07.01

지하철 안. 거칠어 보이는 청년이 자리에 앉은 노인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 노인은 연신 사과했고 눈치보던 승객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내 말렸다. 청년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노인과 승객을 위협하며 계속 소란을 폈다. 이 때 교복을 입은 고교생 최장신이 등장한다. 키 197센티미터의 거구인 최장신은 청년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다가 ‘작다’는 의미의 속어를 내뱉는다. 위협적이었던 청년은 더 위협적인 고교생의 등장으로 단숨에 제압됐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읽는 학교폭력 실태 보고서

약육강식의 세상

주인공 최장신은 이름처럼 큰 키에 싸움, 운동, 공부를 모두 잘하는 고교생이다. 탁월한 하드웨어와 좋은 소프트웨어를 지녔지만 인성은 제로에 가깝다. 좋은 신체조건을 활용한 싸움 실력은 다른 이들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용도로 쓰고 그 덕에 덩달아 뛰어난 운동 실력은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공부까지 잘 하는 머리는 선생님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동급생들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용도로 쓴다. 좋은 기능을 타고난 만큼 정의감 같은 것이 있을 법하고 그런 상황을 자주 연출하기도 하지만 따져보면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행동이다. 어떤 상황에서고 우열을 가리려하는 동물적 본성이 강할 뿐이다. 학교 또는 교실 안에서 학생들 간에 우열을 가릴 수 있는 3가지를 가졌지만 인성이 없는 주인공. 그러다 보니 그가 속한 교실은 약하면 먹이가 되고 강하면 군림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자 동물의 왕국이 되어있다. 고교 2년생인 최장신은 그 곳에서 이른바 ‘일진’이라고 불리는 못된 왕이었고 학교는 그의 왕국이었다. 

일진 학생의 빵셔틀 체험기

못 된 왕은 못 된 신하들을 거느렸다. 못난 백성들은 왕과 신하의 폭력을 모른 척 하거나 스스로 복종하면서 생존의 길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못 된 왕인 장신은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성장 축소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병에 걸려 몸집이 어린애처럼 작아진다. ‘작다’는 이유로 약자들을 놀리고 억압했던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싸움, 운동, 공부 실력이 준 것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위압감이 사라지자 교실 안 먹이사슬 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신을 따르던 학진과 대식은 ‘넘버2’였던 박정수 밑으로 들어갔고 장신의 ‘빵셔틀’과 ‘안마셔틀’이었던 이두원과 윤식이를 자신들 밑에 두고 괴롭혔다. 장신은 비대해진 정수 조직에 맞서 싸워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은 주변에서 사라졌고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이들은 보복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장신은 2인자였던 정수의 ‘빵셔틀’ 신세가 된다. ‘장신의 왕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정수의 왕국’이 만들어졌다. 장신이라는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자 정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먹이사슬을 관리했다. 몇 사람 괴롭히고 학생의 돈을 강압적으로 뺏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정수는 학교 내에 ‘스포츠 도박판’을 만든다. 학생들 간에 농구시합을 시키고 구경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걸게 해 승률에 따라 배당을 주고 자신은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다. 정수는 희귀병에 걸려 키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농구를 잘하는 장신을 선수로 기용하고 돈이 많이 걸린 경기에서는 승부를 조작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이제 장신은 자신이 동급생들에게 했던 것보다 더 강한 형태의 폭력적 억압과 집단적 괴롭힘 앞에 놓이게 됐다. 학교 폭력의 주범이자 교실 안 최상위 포식자이자 가해자였던 장신이 이제 피해자가 된 상황. 장신은 어떤 선택과 역할을 하게 될까. 그리고 학생들은 어찌될까. 


반성적 이야기 구조 속에서 찾은 학생 인권 문제

<일진의 크기>는 학교 폭력의 주범인 일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면서 주인공 또래 학생들의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만큼 작품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초반부에는 일진이었던 학생을 집단 따돌림의 대상으로 뒤바꿔 놓으면서 ‘일진 놀이’의 위해를 고발하고 부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주인공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정수 무리에 대항할 때는 ‘일진 미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작가의 기존 작품 성향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글 작가 윤필은 ‘검둥이 이야기’ ‘야옹이와 흰둥이’ 등의 작품을 통해 주류에서 멀어져 있는 소외 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 환경 문제 등을 소박한 화풍과 정감 어린 이야기로 전달해왔다. 그랬던 작가가 갑자기 오락성 강한 장르인 학원액션물을 발표하자 회의적 반응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이 완결 되면서 이 같은 논란은 사라졌다. 통상 이런 유의 작품을 ‘스위치 장르’라 한다. 몸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바뀌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반성적 이야기 구조가 특징이다. 미화의 의도가 아니라 반성이 전제된 플롯이다. 창작 성향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일진의 크기> 역시 앞선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약자를 향해 있다. 그 사회가 학교로 바뀌고 대상이 ‘학생 인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진의 크기 박스 세트

저자 윤필

출판 네오카툰

발매 2016.07.06.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19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콘텐츠기획자, 만화정책기획자, 만화전시기획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3년부터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코믹스 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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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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