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과 대원' 집필 후기, 2015.03.24

2013년 7월. 

언론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접했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연례 행사로 진행하고 있는 SICAF 어워드의 시상식 사진이었다. 



맨 왼쪽부터 만화가 김동화 선생님, 박원순 서울시장, 대원미디어 정욱 회장, 안현동 부회장이다.  

SICAF 어워드는 매년 만화와 애니메이션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원로를 선정해 '어워드'라는 이름으로 헌액해 왔다.  

기라성처럼 빛나는 많은 이들이 한국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현대사를 이끌어왔고 

또 그처럼 빛나는 이들이 SICAF 어워드를 수상했다. 

2013년에는 한국만화가협회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등의 중책을 무탈하게 완수하고 창작 일선으로 돌아간 김동화 선생님이 만화부문의 수상자가 됐고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주)대원미디어의 정욱 회장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SICAF 어워드는 전통적으로 만화분야에서는 만화가가 애니메이션분야에서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수상해왔다. 

김동화 선생님은 '못난이' '황토빛이야기'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형 순정만화의 한 유형을 창안한 작가로 창작 활동 측면에서나 대외 활동 측면에서의 공로가 큰 만큼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욱 회장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1세대 애니메이터로서 신동헌 감독과 함께 '홍길동' 제작에 참여했고 원프로덕션을 설립해 김청기 감독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OEM이었지만 높은 기술력을 중심으로 다수의 일본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매년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초의 TV애니메이션 '떠돌이까치' TV시리즈 애니메이션 '달려라하니' 등을 제작했고 심형래를 주인공으로 한 특촬 영화와 '벡터맨' 등의 TV드라마 제작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작과 현재를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만큼 다양한 업적을 일궜다. 

하지만 '정욱과 대원'을 이야기할 때면 공적에 대한 평가보다는 과오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주를 이룬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보자면 초창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카피 문제, 과도한 일본 애니메이션 OEM 제작, 저비용 고노동 구조의 제작 환경 등에 따른 다양한 비판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화분야에서도 비슷한 비판 앞에 놓여있다. (주)대원미디어(구 대원동화)의 출판부문에서 독립한 (주)대원씨아이, 국내 만화출판 분야의 상호 경쟁 구조를 위해 설립한 (주)학산문화사까지. 과도한 일본만화 수입 문제, 국내 작품의 소극적 연재, 제한적 작품 마케팅, 계약과 고료의 문제, 만화산업 변화에 대한 둔감한 대응 등. 

만화와 애니메이션분야에서 가장 오래됐고 가장 큰 사업 영역을 지닌 회사의 수장이라서 받아야 하는 비판으로 치부하기에는 과한 문제점들이 있다. 그래서 어워드 자리에 오른 정욱 회장을 보는 시선이 썩 매끄럽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쳐갔지만 사실 이 사진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정욱 회장'이었다. 


정욱 회장과 대원에 대한 상식 수준의 토픽이 떠오르면서 

수상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 것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그보다는 '휠체어에 앉은 정욱 회장의 상태와 대원의 현재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건강 상태는 어떨까? 그럼 경영은 어떻게 하나? 대원은 잘 돌아가고 있는 걸까? 등등등

그와 함께 여러가지 고민의 지점들이 같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험난했던 시절, 정욱 회장은 어떻게 대원의 현재를 이끌어냈을까? 일본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대원의 차세대 전략은 어떤걸까? 등등등

그 길로 한 장의 기획안을 정리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주)대원씨아이의 황민호 전무를 만났다. 

정욱 회장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만화사의 주역들을 여러 명의 평자들이 다핵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의 평집을 내왔다. 

첫번째로 기획한 공저가 '허영만과 환호하는 군중들'이었다. 

두번째로 기획한 공저가 '조선을 그린 이두호'였다. 

두 책을 진행하면서 힘들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 세번째 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모 작가님을 대상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쯤에서 만화산업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정욱 회장과 마주 앉게 됐다. 첫 만남이었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동지인 이대연이 녹취와 사진 촬영을 담당해줬다.  

정욱 회장은 생의 반려자이자 업의 동지였던 부인과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부인인 안정교 여사는 신동헌 감독의 스태프로 출발, 안정아라는 필명으로 소년한국일보 등에서 활동했던 만화가이다. 

건강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는 하지만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고 말투도 분명하지 않았다. 부인이 많은 부분을 도와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래도 눈빛만은 선명했다.  

 


강원도 학산리에서 태어나 두번째 만든 만화출판사의 사명이 학산문화사가 됐다는 이야기부터 

상경 후 신동헌 선생 문하에서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신동우 선생의 만화 작업을 도왔던 이야기

부인이 일하던 소년한국일보사에 놀러갔다가 동갑내기 친구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을 알게된 이야기

일간스포츠에 고우영 선생 대타로 이원복 글, 정욱 그림으로 작품을 연재하게 된 사연

거기서 두 사람이 함께 일할 요량으로 이원복의 가운데 이름 자를 따서 원프로덕션을 만들고

이원복이 독일 유학길에 오른 뒤 그 이름에 '대'자를 넣어서 '대원동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정욱과 대원의 시작과 굴곡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정욱과 대원은 많이 달랐다.  

만화쪽에서 일하고 있어서 보지 않았던 애니메이터 정욱과 대원이 보였고

애니메이션은 만화를 원작으로 해야 한다며 먼저 만화가가 되어야 겠다고 했던 정욱의 젊은 시절이 보였다. 

그리고 국내 만화산업은 내부 경쟁이 지금보다 훨씬 치열해야 한다는 경영자로서의 판단력과

혼자 할 수 없으니 늘 인재를 찾으려 노력했고 한번 얻은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하려했다는 리더로서의 태도,

애니메이션 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산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이 필요하다는 업계 원로로서의 입장,

일본이 대원의 캐시카우 임에 분명하지만 언젠가는 경쟁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싸울 준비도 하고 있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정욱과 대원'이 해 온 그 간의 역할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책무에 대해 논하기로 하고 이를 구체화 할 평자들을 섭외했다. 

먼저 내부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글솜씨가 좋은 두명을 섭외했다. 

만화평론가로 다수의 리뷰를 발표한 바 있는 대원씨아이의 황민호 전무,

대원씨아이의 신규사업과 디지털분야에서 활약하며 간간히 명쾌한 분석글과 강연 활동도 하고 있는 오태엽 이사가 첫번째로 합류했다. 두 분의 필자는 대원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조리있게 기술해 줬다. 

만화분야와 애니메이션분야를 대표하는 논객이자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인 김낙호 박사와 송락현 피디가 두번째로 합류했다. 정욱과 대원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그 의의 그리고 애증의 고민들을 정리해줬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의 오랜 동지인 만화평론가 김성훈이 자신의 전문분야인 미디어믹스적 관점에서 대원의 아이템들을 검토해줬고 청강문화산업대의 김정영 교수는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었던 정욱 회장의 일화와 일본애니메이션계로 유학을 떠났던 '대원 장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에 담아줬다. 

학계와 관에서는 정욱 회장의 오랜 만화친구였던 이원복 총장이 초년 시절의 정욱과 대원을 회고해줬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만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경 과장이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대원의 만화산업 발전방향에 대해 논해줬다. 

대원미디어의 사외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는 한창완 세종대 교수는 대원이 해왔던 그 간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평해줬다.   

그렇게 10명의 필자들이 참여해 '정욱과 대원'을 이야기했다. 

대원이 제작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독고탁 시리즈의 이상무 선생님,

대원이 제작한 TV애니메이션 떠돌이까치 시리즈의 이현세 선생님,

대원이 키운 '코믹챔프'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열혈강호의 양재현 작가, 짱의 임재원 작가가 축화를 보내줬다. 

정욱 회장의 오랜 사업동료이자 부인 안정교 여사의 친동생이기도 한 안현동 대원미디어 부회장은 책 제목을 써줬다. 과거 애니메이션 대본 심의를 받을 때 대본 표지의 제목을 붓글씨로 자주 썼다고 한다. 

표지 그림은 정욱 회장의 영원한 스승이자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대부 신동헌 선생님이 직접 그려주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책이 만들어져서 얼마 전 서점에 풀렸다. 

출판은 스포츠와 경영서의 믹스 아이템을 주로 내왔던 브레인스토어가 담당했다. 


올 해는 정욱 회장이 신동헌 문하로 업계에 입문한지 50년이 되는 해이고 

우리 나이로 칠순이 되는 해이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교정 볼 때 돌아보면 아쉬운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정욱 회장과 대원의 전모를 좀 더 입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었을까?

긍정의 역사만큼이나 부정의 역사도 정리하고 술회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검토와 예측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 않을까?

등등등

하지만 결국 이런 사례를 만들어냈다는 선에서 정리했다. 

더 넓고 깊은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집필 과정에서 정욱 회장의 젊은 시절과 자주 마주하게 됐다. 

지금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스물 몇살 시절의 정욱. 그림 재주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그가 가졌을 꿈과 열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진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 제작팀이 세기촬영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것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젊은 시절의 정욱이다. 오른쪽에서 네번째에 선 이가 신동헌 감독이다. 

이십대 초반의 정욱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늘 '권리'에 대한 문제로 고민했다고 한다. 일하고 나면 남들이 다 가져가고 남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만화를 원작으로 우리에게 권리가  남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머천다이징도 멋지게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의지로 했는데 '마음처럼 된 일도 있고 안 된 일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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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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