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의 거장, 이현세 특별 초청 강연회 후기, 2014.07.04


지난 6월 28일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이현세 선생님의 특강이 진행됐다.

이 특강을 주선한 덕(?)에 

가평에서 열리고 있는 '이두호, 이현세 만화캠프'에 들려서 

이두호 선생님과는 눈인사만하는 결례를 범하고 이현세 선생님을 모시고 안동으로 향했다. 

이현세 선생님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재임 시절 외부 행사 참여 시 전략기획팀장 자격으로 수차례 의전을 담당한 적이 있어서 마치 몇 해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만화가 이현세, 그를 사모한 만화PD 김형남 그리고 그를 우상으로 여겼던 만화평론가 박석환이 한 차에 탔다. 선생님의 만화를 보며 소년이 됐고 청년이 되어 가정을 일궜지만 이제는 서로 흰머리 숫자를 세는 수컷일 뿐이었다. 한 우리에 있는 세 사람은 때로는 서먹서먹하게 때로는 포복절도할 만한 일상과 과거사를 끄집어 내 토닥거렸다. 

서로 경계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수컷 특유의 으르렁은 없었다.  

 

3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안동은 여느 때와 같았다. 

기실 그 전전날 웹툰사업 심사를 위해 방문했던 터였다. ... 1타 2피 할 수 있는 기회따위 내게는... 

경북의 열정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가고 있는 듯 한 김준한 원장님이 특유의 열정적 포스로 반갑게 맞이해줬다. 

보통 서로 안부도 묻고 이런 저런 사변도 늘어 놓는 것이 이런 첫만남의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EBS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거쳐 고향 안동에 내려온 김준한 원장은 '늘 직구'였고 한 줄 빠짐없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맞장구 칠 틈도 주지 않는 김준한 원장식 화법에 다들 뜨악해 하고 있는 사이 약속된 강의 시간이 됐다. 


이하 사진 출처는 http://www.gcube.or.kr/coding/sub6/sub3.asp?bseq=7&cat=-1&sk=&sv=&yy=&page=1&mode=view&aseq=3496#.U7iYgfl_vW5 + 개인촬영본

고향 경북을 찾은 탓일까. 

* 선생님의 부모님이 살았던 곳은 울진이다. 태어난 곳은 포항시 흥해이고 성장한 곳은 경주였다. 아직 일가와 선산이 있는 곳은 울진이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언론을 통해 전해진 선생님의 프로필에는 울진이 고향이라고 올라있는 곳이 많다. 내가 쓴 원고에서도...  


200여 명이 빈 자리없이 꽉 찬 강의실에서 이현세 선생님은 '천재와 싸워 온 나의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공포의 외인구단>과 <남벌>, <폴리스>를 찾아 온 이들이 있었고 

<한국사 바로보기>와 <이현세 삼국지>를 찾아 온 이들도 있었다. 

이현세라는 걸어다니는 콘텐츠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리한 청년들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던 그 시절의 스타는 이제 강단 위에서 농담도 건낼만큼 노련해 보였다. 1997년 세종대 교수로 강단에 처음 섰을 때 지난 온 만화인생의 우여곡절을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했는데 수업 시간이 30분 밖에 안 지났다는 것을 알고 학과장실로 달려가 '못하겠다'고 했더라는 이야기는 이미 옛날 일이 된 것 같다. 


이 날 강의 주제는 '천재와의 경쟁론'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한 일간지에 이현세 선생님이 기고했던 칼럼이고 얼마전 자기계발서 형태의 에세이집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에 묶여 발간되기도 했다. 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좋은 글'로 공유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된 내용이기도 했다.  


이현세 선생님은 널리 알려진 이 '천재와의 경쟁론'을 <이현세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특히 천재적인 지략을 펼쳐보였던 책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천재는 타고난 사람이고 수재는 노력을 통해 천재의 위치에 까지 올라 간 사람이라고 정의한 선생님은

'천재를 만나거던 피해가라'라고 말했다. 

천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라고. 

천재와 싸우느라 매달려 있는 시간동안

노력하는 수재는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고. 

그러면 자기 확신이 없어지게 되고 

이 것은 장거리 마라톤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고. 

그래서 피해가고 기다리다가 최고가 되라고.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하신 후 술, 담배를 끊고 식이요법을 하시면서 선생님은 몸에 있던 살들을 많이 내려놨고 그 만큼 맘에 있던 것들과도 결별한 듯 하다. 

그렇게 가벼워진 탓일까. 

전에 없는 부드러움과 여유가 느껴졌다. 

 

지정된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일일이 만화가 들어간 사인을 해줬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때로 머털도사를 그려달라는 이가 있어서 당혹해하기도 했고

어린 학생들이 멀리서 왔다며 손병호와 최관을 그려달라고 해 

'내가 그린 사람이 맞는지 시험하려는 거냐?'며 웃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필 데생하나 없이 방망이를 앞으로 내민 외팔이 최관을 그렸고

200개 이상의 점을 찍어야 한다는 손병호의 턱수염을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까치가 아니라 조자룡을 그려달라는 소년팬들의 요청이 진기해 보였다. 



 

진흥원이 마련해준 안동한우를 맛나게 먹고 숙소로 왔다. 

숙소는 한옥촌인 정자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이 고택들은 댐이 들어설 자리에 있었는데 댐과 함께 수몰 될 것을 걱정하여 집체로 이전을 해온 것이라고 한다. 

고택 안에서 본 바깥 풍경이 멋 스러웠다. 


 

텔레비전도 없는 고택의 저녁. 세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닥불을 피우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자리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여를 타오르던 불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에 대한 설계도 있었고 과거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 나이 열살 되던 해였을 거다. 

아버지 손을 붙잡고 고향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 가판대 앞에 두꺼운 잡지책이 쌓여 있었다. 

1982년 10월 호. 추석 시즌에 맞춰 창간된 만화잡지 보물섬이었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작품이 <검객 스카라무슈>였다. 

잡지책 앞에서 발을 못 때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흔쾌히 돈을 내주셨다. 

나는 거기서 이현세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이름을 적어들고 동네 만화방을 뒤졌다. 

그의 이름이 적힌 만화는 모두 다 읽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만화폭식자가 된 나를 발견했고 조금 거리를 두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그를 모시고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우상과 함께 고택의 옆자리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있는 일을 상상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쉬이 잠 들 수 없을 것 같은 밤. 

우상이었던 그 사내가 조그맣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그 사내는 아침인사로 '김창완 노래가 떠올랐다. 어머님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라고 했다. 

  

이현세 선생님은 고택 주인의 요청으로 문쪽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글을 적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한 이 말이 요즘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하늘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인데 그만큼 열심히하고 미련없이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다음 날 일정은 진흥원이 야심차게 준비한 라키비움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뜻하지 않은 사인회를 다시 열어야 했다. 



김준한 원장은 라키비움의 서가 한 코너를 '이현세 책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고 이현세 선생님은 그 곳에 책을 기증하기로 했다. 그리고 벽면 한 쪽에 방명록을 적었다. 




"파괴하라. 세상은 새로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점심 식사 후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가평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가평에서 열리고 있는 지옥캠프 현장으로.

나는 가평에 주차해둔 차를 찾아 서울 집으로 갔다.

우상을 가까이 두고 

그에게 바로 묻고 답할 수 있는 흔치 않았던 시간. 

그 시간의 속 내를 빨리 적어내고 싶다. 

올 해 꼭 쓸거다. 

이현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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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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