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학생들에게, 2013.12.31

올 해 4월에 학교에 왔습니다.


좀 늦게 시작한 1학기 때는 수업이 없어서 학교만 봤습니다.

2학기 때부터 수업을 하게 되면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됐군요. 

얼마 전 2학년 성적을 입력했습니다. 


늘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을 업으로 살았으면서도

여러분을 상대평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줄세우려니 아쉽기만 했습니다. 

1학기간 현장실습을 떠났다가 돌아온 3학년들과도 만났습니다.

전에 없이 많은 인원이 서울, 경기, 충청권 기업과 화실로 떠났었죠. 

한 사람씩 차에 태워 회사 앞까지 함께가서

담당자에게 인계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물론 회사 담당자들이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줄때면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이런게 선생이라는 직업인가 보다 싶기도 했고요.

몇 일 전에는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창작집이 나왔습니다.

Newtoon이라 이름붙인 시리즈 2호입니다.

11월 PISAF 때 1호 <CUBE>를 발행했었죠. 

그 때는 창작동아리를 중심으로 재학생과 졸업생 10명의 작품을 함께 담았습니다.

12월에 발행된 2호 <한번쯤 하는 고민들>에는 14명의 졸업생 작품을 담았습니다.

2014년 초에도 2권을 발행할 계획입니다.


아직 정체가 명확하지는 앉지만

그간 창업동아리를 새로 셋팅했습니다.

'코믹스타트업'이라고 이름붙인 이 동아리를 중심으로

재학생들의 작품을 모은 '케이코믹스튜디오 시리즈' 1, 2권이 준비중입니다.

<스트레인저> <숨바꼭질>이라는 표제어를 단 두 권의 작품집에

우린 아직 만화계의 이방인이다,

우린 아직 숨고 싶은 실력을 지녔다라는 투의 서문을 달았습니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죠.


여러분의 작품은 아직 종이 위에 정식 인쇄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작업을 계속한 것은

부끄럽지만 책에 담겨있는 우리를 보고

부끄럽지만 책이 보여주는 우리를 알고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되새겨 보자는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오늘이 올 해의 마지막 날이지만

교수들은 내년을 준비하느라 바쁜 것 같습니다.

방학 때면 학생들과 같이 쉬는게 교수라는 직업인줄 알았더니

학기 중에는 수업하고 여러분 쉴 때는 행정을 해야하는 것이 교수라는 직업이더군요.

요즘은 2014년도 교육과정을 수립하느라 바쁩니다.

교육부의 새로운 대학교육정책에 맞춰서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 학과 입장에서는 조금 더 발전된 교육과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학교차원에서 특성화대학으로 가기위한 강도 높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 교직원이 함께 뛰고 있으니까 내년에는 좋은 일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러분 얼굴을 안본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여러날 지난 느낌입니다.


수업을 함께했던 2학년들

현장실습을 함께했던 3학년들

그리고 취업 때문에 얼굴을 익혀야했던 졸업생들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저랑 올 해 연을 맺은 학생들 중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그룹은 졸업생들인 것 같습니다.

졸업생의 취업률이 바뀐 교육부 정책의 핵심이 되고

학교 평가 실적에 반영되다보니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만화창작과'가 취업을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지 않았고

만화창작과를 희망했던 여러분이 취업보다는 창작,

작가 데뷔에 더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한 터라 고민이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가르칠 때는 작가하라고 했다가 졸업하고 나니 취업하라'는 상황을  

졸업생들이나 졸업을 준비하는 3학년생들도 받아드리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또 한 측면으로는 3년을 배웠지만

그것만으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작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더 세월을 투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취업을 하기위해서 다시 뭘 배워야 하는건지 고민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들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더더더 힘들게 했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교수들도 정책이 바뀌면 서툴기가 학생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올 해 초임이니 더더더 그럴테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했지만

학부 때는 문예창작을 전공했습니다.

그 때 선배들이 그랬지요.

'창작 전공했다고 다 작가가 될 수는 없다.'

그 말이 떠올라서 여러분한테도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시기 그 선배의 말을 진리처럼 생각하기도 했는데

돌아서 보니 서운한 이야기였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하겠다고 왔는데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나 듣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분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미안합니다.

작가가 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꿈꾼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힘겹지만 빠른 판단과 결정이 필요합니다.

꿈과 일은 어느정도 시점에서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

첫째는 만화강사입니다.

만화를 전공한다는 것은 먼저 만화의 기초 이론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화를 전공하면 만화를 가르칠 수 있는 티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만화기획자 또는 편집자입니다.

만화를 전공한다는 것은 좋은 만화를 찾아내고 그 작품을 소비하고 그 작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화를 전공하면 좋은 만화를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는 플래너나 에디터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만화가입니다.

만화를 전공한다는 것은 곧 만화를 그린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화를 전공하면 드로잉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만화는 드로잉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화가라는 직업도 세분화되어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단계적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직업군 자체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굳이 나누어보자면 스토리텔러, 컨셉트아티스트, 드로잉아티스트, 백그라운드아티스트, 컬러링아티스트 등이 있을 수 있겠죠. 흔히 작가와 어시스트, 문하생 정도로 구분되기도 하지만요. 아마도 작가로서의 만화가는 이를 포괄하는 멀티플 아티스트일 것이고 직업으로서의 만화가는 이중 한 분야에 집중하는 역할을 하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넷째는 조금 다른 일들일 겁니다. 아마도 일러스트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게임이나 동화일러스트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물론 상기한 분야를 중심으로 창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최근에는 창직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창작하는 직업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창업을 통해서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만화가들도 사업자를 내고 1인창업가가 되는 것이 일반적 상황으로 되고 있으니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 학교에 와서 공부에 눈을 뜨다보면 상급학교로 진학하고자 하는 열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의 일 중 한 분야가 되겠죠.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티칭, 플래닝, 에디팅, 스토리텔링, 드로잉, 컴퓨팅 같은 일들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2014년에는 그런 취지에서 교육과정을 개편하려고 합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고 결코 완벽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준비와 과정이

여러분의 일을 찾아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서

여러분의 꿈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주저리 주저지 길어졌네요.

마지막 날이니까요.

남은 하루 정리 잘 하시고

2014년 청마의 해를 달려 봅시다.



웅진관 2201호 연구실에서

박석환 드림



짤방은...신샘의 내일은 웹툰 마지막 화 중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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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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