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있었다. 이 블로그에 김성모 신이 강림하셨다는 것을.
블로그 통계에 보니 11월 한달 간 '김성모의 용주골'을 검색해서 이 블로그에 방문한 사람의 조회수가 9위를 차지했다.
2001년 그러니까 12년도 전에 굿데이라는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클릭월드에로카툰'이라는 이름의 칼럼 중 한 꼭지로 쓴 원고이다.
기억하기로 그 게시물 때문에 아주 오래전 블로그 차단 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래서 게시물이 차단되면서 검색이 되지 않도록 막아뒀던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전 블로그 정비를 하면서 검색을 막아뒀던 게시물의 차단을 해제했더니 '김성모의 용주골'을 정확하게 찾아 들어오는 분들이 순위권에 들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성모. 코믹스와 일일만화, 특판성인물을 두르거치며 스포츠신문을 장악했고 이제 웹툰에서도 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화가. 디씨인사이드의 절대군주이자 근성신 아닌가.
더군다나 럭키짱을 리뉴얼하면서 또다른 팬층을 확보했을 터이고 '용주골'은 김성모 작가 생활 중 가장 화려했던 그 시절의 시리즈물이니까.
그래서 블로그 방문자 서비스 차원에서 나도 한번 검색해봤다.
그리고 조금 더 찾아봤더니... 아뿔싸... 지금도 '용주골'은 진행중이었다.
김성모의 용주골 시리즈는 첫편이 나온 2001년부터 무려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으로 발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쭈욱 시리즈들을 일별해봤다.
용주골, 2001
용주골 블루스, 2002
용주골 리스트, 2003
용주골 비하인드 스토리, 2004
용주골 소매치기 탑걸, 2005
2008 용주골, 2008
용주골과 눈물 1리터, 2009
용주골 타투, 2012
용주골 강남스타일, 2013
총 9개 시리즈. 권수로만 180권. 최근 발표작은 강...남 스타일...
도시정벌과 그 시리즈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또 그 아웃풋과 이 아웃풋을 비할 바도 아닌터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열혈강호도 62권을 찍기는 했지만.
거기에 스핀오프격이거나 유사 용주골이라고 볼 수 있는 시리즈도 넘쳐난다.
빨판, 여인추억, 황제의 성, 황제의 섹스투어, 화류계 거상, 호스티스, 강남호스티스 등등등
놀라운 비블리오그래피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들을 포함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1천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한 이가 근성의 만화가 김성모이다.
김성모를 추억해 본다.
90년대 중후반 럭키짱으로 소년만화의 임계점을 확인한 김성모는 당대의 스타만화가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몇몇 만화가들이 대여점용 전작 단행본에 손을 댄 것과 달리 김성모는 코믹스를 떠나 대본만화계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무협4대천황, 액션3성이 버티고 있는 그곳에 들어가서 무협에 손을 대고, 액션에 손을 댔다.
10할대(?) 타율을 자랑하던 김성모는 죽어도 죽지 않는 전설들이 넘쳐나는 그 곳에서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한번 김성모는 과감한 투자를 시도한다. 화실의 시스템을 재정비해서 대본만화계에 새로운 상품으로 제시됐던 '특판성인물'에 띄어들었다.
이제서야 김성모는 코믹스계 강타자의 면모를 드러내보이며 독자층을 운집시키는데 성공한다.
용주골은 특판성인물의 신예 작가 김성모의 화려한 미래를 열어준 작품이 됐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용주골 현장을 찾아가 취재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김성모의 배짱과 그간 벌었던 돈을 모두 탕진하면서도 신규 투자를 늦추지 않았던 결단의 결과였다.
이후 김성모 프로덕션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잘나가는 만화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외제차와 빌딩 그리고 프로덕션내 사회인 야구팀을 갖추게 됐다.
야구팀이 두 팀 나올 정도였다고 하기도 하고 그 수가 100여 명에 이르는 스탭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니 김성모 프로덕션의 생산력은 놀라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스텝들과의 기 싸움에서 눌리지 않기 위한 김성모의 고민도 깊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찌보면 한국사회의 문화사회적 코드로 자리잡은 '근성'이라는 타이틀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김성모 화실은 한겨레 21에 소개되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6&aid=0000009448
놀라운 것은 과거의 화려했던 김성모 프로덕션은 이제 사라지고 현재는 매우 단출한 '김성모 팀'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가실에 입주해 있다.
사회인 족구팀 1팀을 겨우 만들 수 있는 5명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김성모의 생산력은 지속적이다.
물론 작화 환경이 수작업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달라지면서 지우개질이 없어졌고 먹선을 긋는 일이나 제록스를 뜨는 일 따위, 과도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하는 자잘한 움직임들이 최소화되거나 사라져 버린 탓도 있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간신문연재와 주간연재, 별도의 전작 단행본을 병행할 수 있는 팀이 어디 쉬운 일일까. 그가 한국만화계에 보여준 근성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만화계는 종이책의 판매가 극히 미비한 실정이다. 물론 전통적인 만화의 경우를 뜻한다. 교양성과 학습성을 가미하고 예술성과 새로운 흥미요소 및 구매요소를 가미하고 출판되는 만화도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김성모가 최고로 활약했던 시절, 용주골이 나오던 시절만큼 대본소는 특판성인물을 구매해주지 않는다.
1만부를 논했던 판매부수는 5천, 2천을 논하더니 어느사이 1천부 미만으로 떨어졌다. 인세수익이든 판매수익이든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투자대비 이익금 회수율이 극히 미비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손해나는 장사를 할 일은 없을 터. 조금의 이익은 있을 테지만 전과 같지는 않고 그만한 고민이면 다른 쪽을 노려봄직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었이 용주골을 이어가고 있다. 이 것은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 대목 어딘가에도 김성모가 지닌 진정성과 그에게 주어진 키워드인 근성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한때 우리 만화계는 유명 만화가의 생산력이 과도해져서 그들의 이름을 딴 작품으로 대본소와 대여점이 점령된 바 있고 이는 만화다양성을저하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강력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이 같은 시스템은 태생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특정 작가가 팀을 이뤄서 작업을 하더라도 1타이틀 이상의 작품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자리 잡혀있다.
반면 최근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한 작가는 이 같은 경향에 대한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표하기도 했다. 과거 선배작가들이 지녔던 생산력이 부럽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두지 않고 그 시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큰 행복이라고. 10권짜리 한 작품을 연재하면서 하다보면 훌쩍 3~4년이 흘러버리니 그 시기에 하고 싶었던 작품을 계속 접는 일이 반복된다고.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축구 선수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1골 나오기도 힘든 축구경기에서 나왔다하면 3~4골을 뽑아내는 메시 같은 이들도 있으니.
이 세계에도 그 같은 초인형 작가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작품의 깊이 역시 시간과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어떤가? 우리가 용주골에서 봐야 할 것은 성매매 업소의 앞뒤이야기나 성애장면의 묘사 수위, 그 이야기의 흥분 정도가 아니지 않을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자신의 신념을 입증하기 위해 또 죽을만큼 달려들어서 성과를 만들어내고.
이 성과가 덜 하다고 해서 그것을 버리지 않고.
대신 새로운 혁신을 이어감으로서 양립한 가치를 유지해가고.
그것이 근성의 작가 김성모, 그리고 용주골에서 읽어야 할 가치가 아닐까.
** 김성모와 용주골을 지금 만나고 싶다면. 돈을 내야 한다.
** 혹시 찾고 있는 용주골이 만화가 아니라면 아래 게시물을 참조하시길. 성매매는 슬픈 일이다.
용주골의 옛모습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fabiano&folder=6&list_id=5306965
용주골 성시
http://weekly.hankooki.com/whan/200104/w2001041018423061510.htm
용주골을 아시나요
http://sc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45&logId=14031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