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달려라 하니, 이진주, 1987년 [한국만화정전-36], 2013.7.26

[한국만화정전]

근성 소녀만화의 정석

달려라 하니, 이진주

 

 

[그림 1] 이진주, <달려라 하니>, 요요코믹스, 1987년(1985년 만화잡지 [보물섬] 연재 개시)

 

■ 작품에 대하여 : TV애니메이션의 인기와 함께 ‘국민만화’로 등극한 명작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된 작품으로 단행본은 1987년 도서출판 예음(요요코믹스)에서 전4권으로 발행됐다. 드림필드(1997년), 바다그림판(2002년)에서도 발행된바 있다. TV 애니메이션과 주제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패러디 등을 통해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국민 캐릭터 ‘하니’가 탄생한 작품이다.

빛나리 중학교의 신입생 하니는 너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해외 공사현장에 나가 계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결손가정의 문제아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재혼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 새엄마에 대한 거부감으로 사춘기 소녀 하니의 폭주가 시작됐다. 이를 눈여겨보던 괴짜 체육선생 홍두깨와의 만남으로 하니의 폭주는 육상 트랙 위에서의 질주로 바뀌고 단숨에 주목 받는 선수가 된다. 단신인 하니를 비웃는 라이벌 나애리와의 대결, 부상을 감추고 질주한 하니는 아킬레스건이 손상되어 단거리 선수로서의 생명을 잃는다. 어른들로부터 상처받아 철저히 혼자가 됐다고 느꼈던 하니는 주변 어른들의 그윽한 시선과 조력으로 장거리 선수로 전향한다.

 

[그림 2] <달려라 하니>의 주요 등장인물

[그림 3] 하니와 나애리의 경기 장면

 

결손가정의 문제아가 지닌 특수한 능력이 의외의 조력자와 만나면서 주인공에게 닥친 상황과 위기를 극복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야기는 영웅신화의 일반화된 구성 방식이다. 반면 <달려라 하니>는 이 같은 구성방식을 취하는 한편, 다양한 극적 변화 요소를 적용해서 ‘당대에 없었던, 후대에 기록될만한’ 콘텐츠로 재탄생 됐다. 원래 ‘하니’는 이진주가 소녀 독자를 대상으로 창작한 정통 순정만화의 로맨틱한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소년독자들이 많이 보는 매체에 순정만화를 그리게 된 작가는 소녀적 취향은 최소화하고 소년적 취향은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니의 외형은 물론이고 작품의 배경과 조연들까지 모조리 재설정해 이른바 ‘순정명랑만화’라는 새로운 형과 식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금발머리에 이국적 스타일이 강한 순정만화의 화풍과 배경을 까만머리와 한국으로 돌려놓았고 소녀만화로 분류됐던 순정만화를 온가족만화로 넓히는데 성공한다. 현재 작품의 배경이 된 강동구 성내중학교 주변에는 하니집터, 하니거리, 하니광장, 하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림 4]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중 한 장면

[그림 5] 만화우표 시리즈 중 ‘달려라 하니’

 

<달려라 하니>가 국민적 만화, 국민적 캐릭터로 떠오른 데는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의 육상 스타 임춘애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에 방영된 13부작 TV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다. <달려라 하니>가 연재 중이던 때에 비관심 종목이었던 여자 육상 800m, 1500m, 3000m에서 결손가정에서 불우하게 자란 임춘애 선수가 내리 3개의 금메달을 따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까맣게 그을린 가냘픈 몸매의 소녀 선수가 결승선을 지날 때마다 온 국민이 열광했고 ‘라면 먹으며 자라온 꿈나무’라는 신문기사와 ‘라면 먹고 이긴 춘애야’라는 사설에 전 국민이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다. 이후 이 기사가 ‘훈련이 끝나면 간식으로 라면을 줬다’는 코치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언론의 ‘영웅 만들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반면 ‘임춘애 스토리’는 당대 우리시대가 원했던 감동적 요소였고 ‘하니 스토리’는 이를 임춘애 이전에 먼저 선사한 것이다. 또 정부의 관여로 KBS와 MBC가 경쟁적으로 만화원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고 서울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대원동화에서 제작한 ‘달려라 하니’ 애니메이션이 방영됐다. 전 국민은 하니를 통해 제2의 임춘애를 꿈꿨을 터, 그 해 한국응용통계연구소의 TV시청 선호도 조사에서 ‘달려라 하니’는 초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힘입어 ‘달려라 하니’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천방지축 하니(원제 <천방지축 오소리>)’가 제작됐다. 1997년 하니 우표가 발매됐고 2007년에는 배우 박준규가 홍두깨 선생님으로 분한 뮤지컬이 공연되기도 했다.

 

 

■ 작가에 대하여 : 순정만화에 명랑과 열혈 코드를 넣은 이진주

 

[그림 6] 이진주(한국지역진흥재단 지역정보포털 제공)

 

이진주(본명 이세권, 1952년 서울 출생)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해 오랜 기간 혼자서 습작을 하다가 1972년 명랑만화가로 활동하던 김기백 문하를 거쳐 1979년 <어린이 1, 2 구조대>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데뷔 전후로 이세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소년만화를 그렸으나 1980년 순정만화 <하니와 황태자의 사랑>을 발표하면서 필명을 이진주로 바꾸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금발머리 12등신 캐릭터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정통 순정체 만화로 1983년 <하니를 백작 품에> 등이 인기를 끌면서 아내 이보배(1953~2011)와 함께 부부만화가로 활약했다. 대본소용으로 발매됐던 ‘하니 시리즈’가 주목 받으면서 당대 최고의 만화잡지였던 [보물섬]에 합류해 생애 최고의 히트작 <달려라 하니>를 발표한다. 초창기 하니 시리즈와 달리 ‘순정명랑만화’라는 콘셉트를 제시한 이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아내 이보배의 ‘깨몽 시리즈’와 함께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순정만화의 새로운 전형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림 7] 이진주의 대표 캐릭터 3인방(하니, 맹순이, 오추매)

[그림 8] 강동구 성내동에 조성된 하니공원 부분

 

<달려라 하니> TV애니메이션이 가수 이선희가 부른 주제가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하니’는 국민 캐릭터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작가 이진주는 ‘하니’라는 고정 틀을 벗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87년 발표한 <8동 808호 맹순이>와 1989년 발표한 <오추매의 빵점 일기>이다. 각각 맹순이 시리즈, 오추매 시리즈로 후속작품이 발표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촌스러운 소녀와 못생긴 소녀를 만화 주인공으로 내세운 ‘반 순정만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진주는 ‘공주와 왕자’로 대표되던 순정만화의 비현실적 설정과 이국적인 스타일에 대한 로망을 하나둘씩 제거해가면서 순정만화 트랜드를 변화시켰고 3세대 순정만화가들의 형식 변형과 장르적 실험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8년 YMCA가 선정한 제1회 만화가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제4회 한국만화문화상을 수상했다. 2000년 이후로는 인덕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 명장면 명대사 :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하면 기억나는 명대사는 자신을 비웃는 나애리를 향해 내 뱉는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일 것이다. 만화원작에서 보다 애니메이션화 된 작품에서 더 극적으로 묘사된 이 대사는 ‘말괄량이 삐삐’ ‘요술공주 밍키’ 등의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 주희(1950년 생)가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TV코미디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 ‘복숭아학당’에 출연한 개그우먼 김지혜가 과장되게 패러디하면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행어가 됐다. 가슴이 작은 소녀로 희화화 되어 하니의 근성을 기억하는 만화팬들에게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겠지만 하니를 추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됐다.

 

[그림 9, 10] 질주 하는 하니와 엄마 품에 안긴 하니

 

사춘기 소녀의 성장드라마면서 스포츠를 소재로 한 근성물 임에 분명한 이 작품의 명장면은 당연히 하니의 질주와 경기 장면이다. 그런데 여느 스포츠 근성물과 달리 이 작품의 경기 연출은 경기장의 흥분이나 선수들의 긴장에 집중하지 않는다. 육상이라는 짧고 변화가 없는 기록경기의 밋밋함도 한 몫 했을 터. 주인공 하니의 심리 상태와 다짐에만 집중해서 경기와 독자의 긴장을 유지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하니는 달리기를 하면서도 엄마만 생각한다. 하늘에 계시는 엄마를 향해 달리고 골인 지점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엄마를 향해 달린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곳까지 다다르면 엄마의 품속으로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다리가 부러져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기는 것이 곧 엄마와의 약속이고 이겨야지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테니. 하니의 속마음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절반쯤은 포기를 원했고 절반쯤은 별 탈 없이 결승선을 넘기를 원했을 것이다.

 

 

참고자료

 

네이버 n스토어, <달려라 하니> 만화보기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43027

위키백과, <달려라 하니>

http://ko.wikipedia.org/wiki/%EB%8B%AC%EB%A0%A4%EB%9D%BC_%ED%95%98%EB%8B%88

네이버 뮤직, 달려라 하니 주제가 듣기(노래 이선희)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66790&trackId=1478302

네이버 지식백과, 손상익, 우직한 남자가 그린 의지의 한국소녀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389&docId=1053255&mobile&categoryId=1389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라면 먹고 이긴 춘애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10040020920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10-04&officeId=00020&pageNo=2&printNo=20003&publishType=00020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동아일보, 어린이만화 우수작가 이진주씨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0400209209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04&officeId=00020&pageNo=9&printNo=20487&publishType=00020

 

글. 만화평론가 박석환(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자료협조 한국만화영상진흥원(www.komac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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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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