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처럼 등장했던 한국형 SF만화 - 번개기동대, 고유성
[그림 1] 고유성, <번개기동대>, 씨엔씨레볼루션, 2009년 리메이크판 별책부록
■ 작품에 대하여 : 힘과 지혜의 조화 또는 각자의 역할
고유성의 <번개기동대>는 1980년부터 아동교양지 [어깨동무]에 연재된 작품이다. SF만화로 일가를 이룬 작가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로보트킹>과 함께 가장 많은 독자들이 추억하는 작품이다. 잡지 폐간 때까지 63회가 연재됐고 <돌격기동대> <해저기동대> <혜성기동대> 등 후속 시리즈가 발표됐다. 각기 다른 기능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팀을 이뤄 위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 한국형 전대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캐릭터 기반 서사물의 일반적 구성 원리는 등장인물별로 기능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이를 전개하는 원리는 그 인물만이 해결할 수 있는 기능적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번개기동대>는 이 같은 원리를 극명하게 나뉘는 두 주인공을 기반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림 2, 3] <번개기동대> 등장인물 소개
우주 기원 75년 달에서 건축기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도박으로 파산하자 아이큐400의 고박사는 우주도시 글로리아에 사설경호대 ‘번개기동대’를 세워 돈벌이에 나선다. 화성개척대로 갔던 부모가 모두 죽자 외톨이가 된 유탄은 일자리를 찾아 기동대의 제1호 대원으로 합류한다. 이 둘은 행성 간 무역을 파탄내고 우주의 지하경제를 독점하려는 쟈칼일당과 대립한다.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를 겪었던 우리 내 삶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시킨 작품 설정이다. 두 주인공은 쟈칼일당과의 대립과정에서 포말하우트 왕국의 여왕 포이라를 구출하게 되고 경비대장 바레타(일명 레드호온)와는 적으로 만나서 동료가 된다. 컴퓨터나 기계의 작동을 마비시킬 수 있는 여성 안드로이드 미디암, 해저에서 물고기처럼 살 수 있는 태권도 5단의 해저인간 오미, 어떤 물체든 통과할 수 있는 외계인 테라 등이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만나 2, 3, 4, 5, 6호 대원이 된다. 대원이 늘어날수록 번개기동대의 임무는 다양해지고 적대자와의 대립도 거대해진다.
[그림 4] 고유성, <번개기동대>, 1화 속표지
[그림 5] <번개기동대> 시리즈로 볼 수 있는 <소년기동대>
잡지 연재, 시리즈물 발행, 만화CD롬 발매 등으로 꾸준하게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던 <번개기동대>는 2009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네이버가 함께 진행한 ‘고전걸작만화리메이크사업’을 통해 웹툰으로 재창작 되면서 생명력 있는 콘텐츠의 역할과 힘을 증명했다. <번개기동대2009>라는 타이틀로 리메이크 된 웹툰은 일종의 프리퀄로 고박사와 유탄이 어떻게 만나서 쟈칼일당과 대립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또 원작에서 떠돌이 구직자로 그려졌던 유탄의 원래 직업이 밝혀진다. 카이스트 출신의 만화스토리작가 박성진과 SF에 첫 도전한 만화가 임성훈이 작업했다. 웹툰은 네이버만화를 통해 연재됐고 단행본은 씨엔씨레볼루션에서 출간했다. 리메이크판 웹툰의 단행본 출간 시 [어깨동무]에 연재됐던 원작 중 도입부를 1권 분량으로 편집해 2권 한 세트로 발매했다.
[그림 6, 7] 박성진과 임성훈이 리메이크 한 <번개기동대 2009>의 주인공들
■ 작가에 대하여 : 한국형 SF의 선도자가 된 잡학박사 고유성
[그림 8] 고유성(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규장각 제공)
고유성(1948년, 서울 생)은 1966년 만화계에 입문했다. <이겨라 벤> <나는 차돌> 등의 만화로 유명한 이향원(1944년~2011년)의 문하에서 허영만 등과 함께 수학했다. 1974년 만화방용 단행본 <고박사의 탐정소동>으로 데뷔했고 1977년 월간 소년잡지 [우등생]에 <로보트킹>을 발표하며 한국 거대로봇만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탐정·미스테리·공상과학·첩보·로봇 등 과학적 지식과 논리를 근간으로 한 작품 분야에만 매진하며 한국SF만화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림 9, 10] 애니빅에서 복간 한 <로보트킹>과 애니북스에서 발행한 아동만화 <사이언스 가디언 로보트킹>
데뷔이전부터 만화계의 잡학박사로 유명했던 고유성은 첫 작품 주인공으로 ‘고박사’를 내세웠는데 이는 자신의 평생 페르소나가 됐고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박사가 고유성이 스스로를 담아낸 캐릭터였다면 문하생 동료였던 허영만은 자신의 작품에 고기자(고박사, 고과장 등으로 나올 때도 있다)라는 캐릭터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이 인물의 모델이 바로 고유성이다. 지적이면서도 소심하고 유머러스한 인물로 그려진다.
고유성은 평생 SF만화에만 집중했다. <번개기동대>는 고유성이 가장 폭넓게 전개한 작품형식으로 유사한 컨셉트를 지닌 <우주패트롤> <기갑경찰 타이푼> 등의 작품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일찍이 컴퓨터에도 능해서 90년대 중반부터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우주늑대 혼> 등의 작품과 ‘바사기의 만화강좌’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 명장면 명대사 : 저게 우주 해적 부록이다
고유성 만화의 아이콘은 단연코 <로보트킹>이다. 발매 당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과 애니메이션, 게임, 완구 등의 분야에서 꾸준하게 신개발 소식이 들리는 ‘살아있는 콘텐츠’이다. 하지만 로보트킹의 메카닉 디자인이 일본로봇만화와 유사하다는 독창성 논란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고 한국 거대로봇만화와 SF만화의 정체성 중 하나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은 다수의 걸작 만화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대중문화 트랜드를 담기위해 익숙한 코드를 차용한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후대에서 볼 때는 아쉬운 점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번개기동대>는 나름의 독창성을 유지한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이 ‘SF패러디만화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림 11] 로보트킹과 유사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일본만화 <자이언트 로보>에 등장하는 GR-2
[그림 12] 일본만화 <캡틴하록>의 주인공을 부록으로 패러디한 <번개기동대>의 한 장면
<번개기동대>에는 당시 TV만화영화로 인기를 끌었던 <캡틴하록>을 패러디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박사를 좋아하는 유로파의 의뢰로 우주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출동한 기동대 앞에 하록선장이 분명해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하록이 아닌 ‘부록’이다. 이름 하나 바꾼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여기에는 숨은 의미도 담겨있다. 당시 [어깨동무]는 본지 외에 만화 부록을 만들어서 제공했다. 본지 연재는 작품 당 10페이지 내외에 불과했지만 만화 부록은 작품 당 60여 페이지에 이르는 파격적인 면수로 발행됐다. 본지 연재 작품보다 만화 부록에 독자들의 관심이 더 커지자 고유성은 부록에만 신경쓰는 편집부와 독자가 조금은 괘씸해 보였을 터. 우주 해적을 ‘부록’에 비유하며 기동대를 출동시켜 소탕 작전을 펼치는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배짱 두둑한 일침이자 해학 넘치는 현실 비판이다.
참고자료
이글루스 블로그, 고유성의 만화방창(작가 블로그)
http://goyusung.egloos.com/
네이버책, 고유성/박성진/임성훈, 번개기동대2009, 씨엔씨레볼루션(도서구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85714
네이버만화, 박성진/임성훈, 번개기동대2009(웹툰 보기)
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9297&no=5
글. 만화평론가 박석환(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자료협조 한국만화영상진흥원(www.komac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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