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해화(신한민보 게재),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2.10.16

해화, 작가미상

만화적 표현물에 대한 첫 번째 정의


[그림 1] 해학적인 그림이라는 의미를 담은 <해화>. 작가미상, 신한민보, 1909.09.15


■ 작품에 대하여 : 근대만화에 대한 최초의 정의를 담았던 <해화>


<해화(諧畵)>는 1909년 9월 15일자 [신한민보] 3면에 게재된 작품으로 작가는 기록되지 않았다. 만화가 아직 만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 <해화>는 삽화에 이어 당대의 만화적 표현물에 붙여진 명칭이다. 해학적인 그림이라는 의미로 지면의 제호 형식으로 사용됐다. 작품 소개 문구에서는 해당 작품을 ‘그림’이라고 표기하며 ‘유심코 자세히 풀어보면 무궁한 뜻이 그 가운데 있도다’라고 적었다. 이는 만화적 표현물에 대한 최초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신한민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로 1909년 2월 10일 창간된 주간신문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는 논설과 기사를 주로 실었고 국내는 물론이고 러시아, 중국 등에서도 읽혔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한국 사람의 생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 ~ 일본 사람의 생각’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게재됐다. 일본 사람의 생각은 일본의 시사만화잡지 [도쿄퍽, 東京パック]에 게재됐던 것으로 ‘한국이란 계집이 일본이란 사나이에게 반해서 집안 재산을 다 내주다 못해 발가벗은 몸뚱이가 되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보호하여 주는 보람이 있다’라며 한국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한국 사람의 생각은 미상의 작가가 그린 것으로 태양 모양을 한 일본인 욱일이 ‘먹을수록 맛이 좋아 나머지마저 먹으리’라고 하자 뒤집어진 삼천리와 권총 모양을 한 한국인 김척(金尺)이 ‘옜다. 자, 받아라. 하나, 둘, 셋, 넷’이라고 외치며 총을 쏜다는 내용이다.


[그림 2] 신한민보는 해화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이 그린 그림과 한국 사람이 그린 그림을 비교 게재했다. 이후에 게재됐던 만화적 표현물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 <해화>가 발표되고 40여일 후에 안중근이 국권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10년 1월11일자 통감부 문서 중에는 ‘샌프란시스코 한자신문에 게재된 <해화>에 관한 건’이 있다. 하얼빈에 있는 러시아 검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풍자화를 봤다고 제보한 건에 대한 보고서이다. 통감부 문서는 풍자화의 내용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가정한 인물을 배일파(排日派)가 처단한다’는 내용이라고 보고했다(http://db.history.go.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하지만 이후 이 작품은 ‘안중근의 의거를 예언한 만화’로 알려졌다.

최초의 만화인 이도영의 <삽화>는 참고그림을 뜻하는 당대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반면 <해화>는 ‘만화’라는 용어가 이 땅에서 멀리 쓰이기 전 그와 유사한 신조어를 처음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신한민보] 편집진이 작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해화> 중 일본사람의 그림은 기타자와 라쿠텐이 창간한 잡지 [도쿄퍽]에서 가져온 것이다. 기타자와 라쿠텐은 일본에서 [도쿄퍽], [라쿠텐 퍽] 등을 통해 현대적 의미의 ‘만화(漫畵)’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즉, [신한민보] 편집진이 만화라는 일본식 한자조어를 알고 있으면서도 ‘해화’라는 독자적 명칭을 붙였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3] 자신을 만화사(漫畵師), 만화자(漫畵者)라고 표했던 일본인 기타자와 라쿠텐이 주도한 [도쿄퍽]과 [라쿠텐퍽]. [재팬펀치]가 영국의 만화잡지 [펀치, punch]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라면 두 잡지는 미국의 만화잡지 [퍽, puck]의 형식을 차용했다. 두 잡지는 초기 만화적 표현물의 대명사였다. 이 때문에 근대의 만화적 표현물은 펀치 또는 퍽이라 불리기도 했다.


■ 작가에 대하여 : 이름없는 작가의 등장


<해화>를 비롯한 근대만화사에는 작가미상의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작가미상은 작품은 있지만 작가를 알 수 없을 때 쓰는 관용화 된 표기법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된 만화에 작가 표기가 없는 것을 두고 만화에 대한 위상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대의 경우는 일제에 의해 감시와 통제를 받았던 시기였다. 만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낮아서 이름을 감췄다기보다는 매체에서 만화가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작가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이름을 표기하는 경우도 한 작가의 이름을 여러 개로 표시하기도 했고 작가의 작품을 독자가 투고한 것으로 가정하기도 했다.


■ 주목할 만한 캐릭터와 명대사 : 총격 기호와 의성어의 등장


김척(金尺)은 황금으로 만든 자라는 뜻을 지닌 ‘금척’을 의인화 한 것이다. 금척은 신라시조인 박혁거세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신인(神人)에게 받았다는 보물로 지도자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이다. 국권의 상징이자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물건이다. 당대의 민중들은 지도자 김척을 기다리거나 지도자의 신물인 금척을 애타게 찾았을 것이다.


[그림 4] 일본에서 발행되던 오사카곳케이에 게재됐던 이토 관련 만화

<해화>가 특별한 것은 총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격 후의 연기를 만화적 기호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과 ‘탕, 탕, 탕, 탕’이라는 의성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도영의 ‘삽화’에서 볼 수 없던 이 같은 선도적 표현은 미국이나 일본의 앞선 만화적 표현들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옜다. 자, 받아라. 하나, 둘, 셋, 넷. 탕, 탕, 탕, 탕’

한국인 김척(金尺)이 모든 것을 앗아간 일본인 욱일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던지는 분노의 일성도 인상적이다. 신문을 본 독자들은 하나, 둘, 셋, 넷뿐만 아니라 열방, 이십 방을 소리 높여 쏘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의 시사만화에도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여러 편 등장했다. 이 중 1909년 11월15일자 [오사카곳케이(大阪滑稽)]에는 ‘여자를 좋아하는 자의 최후’라는 작품이 실렸다. 총격으로 쓰러지는 이토의 그림자를 ‘계집녀’자 모양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총을 맞은 이토의 가슴에 표현된 연기 기호가 <해화>의 경우에 비해 좀 더 세련된 인상이다.


참고자료

‘신한민보’에 대하여, 네이버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0709&mobile&categoryId=1642

‘신한민보 신문보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front2010/dirservice/NP/listSubNP.jsp?pLevel=3&pDatabaseID=np_sh&pRecordID=np_sh

안중근 의거를 예언한 시사만화, 조선일보, 2009.09.17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8/2009091800317.html

샌프란시스코 한자신문에 게재된 해화에 관한 건, 통감부문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jh_tg_007r_0010_3350


글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있고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한국만화정전을 쓰기로 한 후 이런저런 자료 검색을 하다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를 접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발했됐던 신문과 잡지 등의 자료가 있었다. 이 매체들은 한국만화의 근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기존까지는 만화이론서 등을 통해 잘라진 만화컷만 보았으나 이 사이트를 통해 전체 지면의 구성이나 다른 기사와의 연계성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해화는 그중 신한민보 편에서 다운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화를 통감부가 조사한 사건도 찾을 수 있었다.

연구자들에게 데이터베이스란... 보물 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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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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