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다음엇지(잡지 붉은저고리 게재),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2.10.18

다음엇지, 작가미상

순 우리말에 담은 만화의 원리


[그림 1] 최초의 4칸 만화 형식과 이를 우리말로 표기한 <다음엇지>, 작가미상, 대길이네 개와 담비, [붉은저고리], 1913.01.01


■ 작품에 대하여 : 한국만화 최초의 잡지 연재만화이자 연속만화


<다음엇지>는 1913년 1월 1일 창간한 반월간 어린이 잡지 [붉은저고리]에 게재된 작품이다. 삽화, 해화에 이어 당대의 만화적 표현물을 지칭한 용어로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이다. <다음엇지>라는 말의 뜻은 이 작품이 과장과 풍자가 심해서 다음 칸을 보지 않고서는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첫 회분 제호 옆에 편집자의 설명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차례차례 보아 가는 웃음거리 그림이니, 첫째 그림을 자세히 보아 그 뜻을 짐작하고 다음을 보시면 설명이 없어도 재미있게 알아보시리라’고 했다.

<다음엇지>는 최초의 잡지연재만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또 복수의 칸을 활용한 최초의 연속만화이다. 별도의 장면이나 정지 장면을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활동사진처럼 연속되는 장면 중 주요 컷을 선정하여 4칸 형식에 담아냈다. 이 같은 연속적인 그림은 현대만화의 기초적 작동원리이자 칸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만화의 기초 미학이다.

첫 회분에는 ‘대길이네 개와 담비’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개가 나무 틈 사이로 뛰어가 담비를 잡았는데 주인인 대길이는 나무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 세로가 긴 눈목자(目) 모양의 4칸 만화 형식으로 한자문화권의 세로쓰기 전통이 반영됐다.

[붉은저고리] 6호(1913.03.15.)에는 ‘담배 먹는 소’가 11호(1913.06.01.)에는 ‘건져내니 애비’라는 작품이 게재됐다. 두 작품은 2칸 만화 형식으로 소가 담배를 피운다던가, 낚시꾼이 문어에게 잡힌다던가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을 제시해 웃음을 유도했다. [붉은저고리]가 통권 12호까지 발행됐기 때문에 10여 편 이상이 연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몇몇 작품은 인물의 의상이나 장신구, 배경의 표현 방식 등으로 볼 때 외국 작품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2칸 만화 형식을 취한 작품. 작가미상, 담배 먹는 소, [붉은저고리], 1913.03.15.

[붉은저고리]는 출판인, 시인, 문화운동가, 역사학자 등으로 활약했던 육당 최남선(1890~1957)이 창간한 소년잡지이다. 일제 총독부에 의해 [소년]이 강제 폐간된 후 창간한 잡지로 표지 상단에 적힌 ‘공부거리와 놀잇감의 화수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소년 계몽을 위한 잡지였다. 일제의 무단통치가 극심했던 상황이라 이 잡지 역시 1913년 6월 15일자를 내고 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 하지만 최남선은 오락성이 강한 [아이들보이]와 문예성을 강화한 [새별]을 1913년 9월 동시 창간하며 잡지를 통한 계몽운동을 이어갔다. 특히 잡지 컨셉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식민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다음세대의 주역인 ‘소년’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담았고 ‘문자 이상으로 문자의 효용성’을 지녔다고 평한 만화를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 작가에 대하여 : 만화의 효용 가치를 명확하게 인식한 르네상스맨 최남선


<다음엇지>는 최남선이 직접 그림을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편집인으로서 최남선의 역할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은 만화적 표현물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각자이자 신문명의 전파자였다. 일본 유학 중 잡지를 통해 신문명을 접했던 최남선은 인쇄 기술자들과 신식 인쇄기를 들고 귀국해서 신문관(新文館)이라는 인쇄소 겸 출판사를 차린다. 여기서 한국 최초의 월간잡지 [소년](1908년 창간, 1911년 폐간)이 창간됐다. 그의 나이 18살 되던 해였다. 한국잡지협회는 [소년]의 발행일인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최남선은 [소년]에서부터 만화적 표현물을 다양하게 등장시켰다. 자작시 ‘흑구자의 노리’에 흑인악단을 삽화로 넣었는가 하면, 각 국가의 영토를 동물로 묘사한 의상도(擬像圖)도에서는 일본 땅을 토끼로, 한반도를 호랑이로 묘사한 만화적 삽화를 게재하기도 했다. 최남선은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이었으나 1927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찬위원회 활동 등으로 광복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림 3] 만화를 문자 이상의 효용가치가 있다고 평했던 만화편집인 최남선


■ 주목할 만한 캐릭터와 명대사 : 평온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 상황을 어이할 꼬


[붉은저고리]에 실린 <다음엇지>는 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고 [소년]의 강제폐간 후 창간한 잡지에 실린 작품이었던 만큼 민감한 현실보다는 재미난 일상을 소재로 했다. 창간호에 실린 ‘대길이네 개와 담비’ 편은 무언극 형식을 취한 작품으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담배 먹는 소’ 편에서는 담배를 피우며 환담을 나누는 사람 뒤에 있던 소가 주인의 담배 파이프를 뺏어 물고 코로 연기를 뿜는 장면을 연출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 상황을 찾아내 웃음을 유발시켰다.


[그림 4] 일상 속의 비일상성을 강조한 작품. 작가미상, 건져내니 에비, [붉은저고리], 1913.06.01.

‘건져 내니 에비’ 편에서도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잡아 올리니 거대한 문어가 나와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연출된다. 세 작품 모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평온한 일상으로 시작되지만 어느 사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이를 구조화 하면 비일상적 상황을 제공하는 이(개, 소, 문어)와 제공받는 이(대길, 소주인, 낚시꾼) 그리고 이를 목격하는 이(작중인물 또는 독자)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상황과 인물만 바꾸면 수 만 가지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구조이고 당대 한반도의 정치적 현실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풍자하는 의미로도 읽힌다. 웃자는 이야기였을 테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도 보인다.


참고 자료


‘최남선’에 대하여, 네이버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4262&mobile&categoryId=1616

‘붉은저고리’에 대하여, 네이버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4881&mobile&categoryId=1642

근대문학개척의 선두자 고 육당 최남선선생의 발자취, 동아일보(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57.10.13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101300209204020&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10-13&officeId=00020&pageNo=4&printNo=10784&publishType=00020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상, 시공사, 1999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40239

류시현, 최남선 평전, 한겨례출판사, 201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47021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있고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다음엇지라는 명칭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이렇게 깔끔하게 만화의 형식을 단어안에 담고있는 용어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최남선이라는 인물이 개입하고 보면 이 또한 흥미진진하다. 한국잡지의 출발점이었던 최남선은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최초의 만화편집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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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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