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 때문에 고민하는 맘들을 위한 교양학습만화, 월간 맘대로 키워라, 2012.01.05


얼마 전 한 학부모 모임에 갔다. 만화 쪽 일을 한다고 했더니 여느 때처럼 인사치레 반, 흥미 반인 질문을 받았다. ‘허영만 선생님 요리만화 재밌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뭐하시나요?’ ‘소녀시절에 황미나 선생님 작품 즐겨봤는데. 편지 쓸 때 인용하고 그랬어요. 제목이 뭐였더라….’ 등등등.

아빠들은 만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고 근황에 대해 묻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본인과의 연결성을 찾는다. 아는 척 좀 하고 싶어 하는 아저씨의 자세 그대로다. 그 마음 나도 아니까 ‘아~ 허선생님 잘 아시네요. 요즘은 화실에서 작품하시죠. 평생 그렇게 하셨으니까’라는 식의 접대성 답변을 날려준다. 엄마들은 만화작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어떤 상황이었고 어디에서 봤는데 이런저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인사치레니까 빨리 답변을 날려줘야 하는데 점점 답변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낄 때 쯤, ‘자기는 그때 뭐했어?’라며 옆 사람 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무슨 작품을 이야기하는 건지 제목 정도는 당연히 알려줘야 한다는 ‘전문가 강박증’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이러시면 어쩌란 말인가. 내 집이나 저 집이나 부인님들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오고가는 대화들에 심취해서 내가 전문가라는 의식이 사라질 때 쯤 ‘그런데 아이들한테 어떤 만화 보여줘요?’라는 기습 질문이 들어왔다. 아쿠쿠.


아이가 과학상식 박사가 됐어요?


질문 맘1은 3천 만부 이상 판매되면서 전 국민 필독서가 된 <Why> 과학시리즈를 전집으로 사줬다고 한다. 꽤 고가이지만 좋은 선택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①전통의 출판사에서 우수한 편집진들이 ②과학분야의 전문가들과 수많은 만화가들을 참여시켜서 ③연구 기획한 전집물이다. ④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웰메이드 콘텐츠니까 잘 읽히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질문 맘1은 ‘너무 자주 읽어서 고민’이란다. 50권이 넘는 책을 언제 다 읽을까 했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읽기 경쟁이 붙어서 금새 다 읽고, 상식퀴즈 대회 같은 것이 있어서 또 읽고, 중요한 내용을 까먹었다며 또 읽더라는 것. ‘본전 뽑았다’라고 생각했는데 때 아닌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인류부터 우주까지, 미생물부터 동식물, 식품영양부터 생활과학까지 온갖 분야에 걸쳐서 질문하는 것이 신기했고, 그 다음에는 엄마가 답변을 못하니까 <Why>를 다시 읽고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대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몇 번 흐르고 나니 아이가 ‘엄마는 모른다’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아이가 잘난 척하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무시하기도 했고 얼마 안 가서는 아닌 것도 ‘맞다’고 우기더라는 것이다. 이거 참. 학습 기능이 너무 좋아도 탈이다.  

   

아이랑 TV사극 보기가 싫어요?


질문 맘2는 우리만화계의 거장인 이현세 선생님이 그린 <만화 한국사바로보기> 전10권을 사줬다고 했다. 한국사를 다룬 만화책이 있었지만 아이가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고 저학년 때 산 것이라 새로 사줬다고 한다. ①오천년 국토사에 국한되지 않고 선사이전의 민족사부터 현대사까지를 다루고 ②특정 사건과 왕조사 위주의 나열식 전개가 아니라 전체 역사를 하나의 맥락 하에 시간여행이라는 컨셉트로 풀어내서 ③아이들이 역사의 흐름과 주요 사건의 발생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했고 ④끝 부분에서는 까치와 엄지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독자가 국가적 정체성을 지닐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을 설명해 줬다. 특히, 한국사는 학습만화를 발행하는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발행하는 아이템이고 아이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만큼 두서너 판본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질문 맘2도 뜻밖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TV에서 하는 사극 드라마를 같이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화로 알게 된 역사상식을 질문하는 수준이 아니라 드라마의 잘 못 된 인물구성이나 만화책에 나오지 않았던 사건 또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다르게 설정한 부분에 대해서 쉬지 않고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재구성한 것이니까 다를 수 있다고 하면서 다른 점을 찾아보자고 했는데 지금은 토론하기도 벅차고 극에 몰입도 되지 않아서 사극 보는 즐거움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이야기의 흐름이나 감동을 얻으려 하지 않고 책에서 본 단편적인 사실에만 몰입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어찌하나. 감정이입이 너무 쌨나보다.


학습만화 선정의 수준을 높이고 독후활동도 챙겨야


만화가 휴식의 친구였고 상상의 도구였던 때가 있었다. 그 자체로 의미있는 역할이었지만 이 때문에 만화는 백해무익한 친구이고,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헛된 도구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하지만 80~90년대 명랑만화와 학원만화, 스포츠만화의 전성시대를 경험했던 우리시대의 학부모들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화를 숨어서 봤고 그 속에서 삶의 태도와 지식을 얻었다. 만화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만화가 ①빠르게 몰입되고 ②쉽게 전달되며 ③오래 기억된다는 기능적 장점을 알게 된 것이다.

최근의 학습만화 열풍은 이 같은 학부모세대의 동의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기능적 요소만 취하다보니 만화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이야기성이 축소됐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오락만화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어떤 것을 여러 사람 간의 갈등관계와 문제들 속에서 얻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학습만화는 과정보다는 결과, 깨달음보다는 단편적인 상식과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질문 맘 1의 아이처럼 쉽게 알게 되지만 더 알려하지 않는다. 또 질문 맘 2의 아이처럼 스스로 얻은 지식에 대한 믿음이 커서 다른 상황이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실 질문 맘들의 고민은 학습만화의 문제가 아니다. 2편의 필독 학습만화 때문이 아니라 학습만화를 읽고 난 후의 상태, 평소 생활 태도나 독후 활동에 대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를 좋은 만화 추천해주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을까? 아이의 독서 경험에 맞춘 제 수준의 만화책을 선물하고,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과 더 높은 수준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고민 맘 1의 아이에게는 <내일은 실험왕>과 <마술고 과학고>를 추천한다. 두 책은 과학 교과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됐고 교과 지식과 상식을 바탕으로 실험과 마술 체험을 통해 과학적 사실을 입증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 가능하다면 혼자만 읽게 할 것이 아니라 친구와 1세트씩을 구매해서 돌려보고 함께 체험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고민 맘 1에게는 세계적인 지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쓰고 한국의 만화가 김수박이 그린 <만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추천한다. 최근 베르나르 시리즈로 <만화 상상력사전>도 출간됐다. <Why>가 초등용이라면 이 만화책은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상식 백과이다. 아이와 상식 배틀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고 아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 줄 수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고민 맘 2의 아이에게는 세계인이 함께 읽는 만화역사책으로 유명한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와 <만화 통세계사>를 추천한다. 하버드대 출신인 래리의 책은 전 세계 유명대학에서 부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서술해서 화제가 됐던 베스트셀러 <통세계사>의 만화판 역시 역사를 캐릭터(위인)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아이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현세의 책과 래리의 책 중 몇몇 부분을 ‘통세계사’ 형식으로 구성해보도록 시켜보는 것도 좋겠고, 역사적 사건을 ‘만약에’라는 요소를 넣어서 재구성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겠다. 고민 맘 2에게는 <만화 서양미술사>를 추천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의 지적 호기심에 대응하는 한편, 넓고 얕은 지식보다는 특정 분야에 집중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과서에 실린 지식이나 상식을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즉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응용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얻어지는 가치가 있다. 괜히 여러 사람이 모여서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아무리 좋은 학습만화에도 그런 기능은 없다. 그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것이다. Mom대로, 마음대로, 마음을 다해서.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게재 : 월간 맘대로키워라,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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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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