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탄생 15년 만에 잔혹 무대에 오르다
최근 조선일보가 웹툰을 1면 톱기사로 게재했다. 만화관련 기사가 1면에 난 일이 있었을까? 시사만평이 1면에 게재됐던 사례는 있었지만 보도기사가 난 적은 없었다. 문화면에 실리면 좋은 일, 사회면에 실리면 나쁜 일, 경제면에 실리면 갑자기 찾는 일이 많아져서 바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제한된 지면에서 제한 된 주제의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1면 톱으로 그야말로 ‘대문짝만한 기사’가 기사 내용과 너무나 어울리는(?) 대형 그림 컷까지 곁들여서 게재됐다.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좋은 일이라면 화제(話題)가 됐을 텐데 나쁜 일이다보니 거대한 화재(火災)가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경보와 통제시스템 역시 신경질 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조선일보는 ‘열혈 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1면에 게재(2012.01.07)하면서 웹툰이 ‘폭력을 유쾌한 짓’으로 합리화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만화분야를 담당하던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전기통신회선 부분은 우리 몫이라며 즉각적으로 나서서 ‘웹툰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2012.01.09)’고 발표했다. 이에 만화계는 한국만화가협회 등 6개 단체 명의로 ‘학교폭력의 원인이 마치 만화인양 매도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전형적인 희생양 찾기와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다(2012. 01.10)’라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해당 웹툰을 게재했던 포털사이트 야후는 웹툰 서비스를 중지했고(현재는 성인만 볼 수 있는 장치를 달아서 재게재했다.) 조선일보는 ‘학교폭력 희화화 웹툰 열혈초등학교 연재중단(2012.01.11)’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승전보를 날렸다. 만화계와 문화산업계의 짜증과 분노가 쏟아졌다.
그렇게 한 달 여가 지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폭풍처럼 휘몰아친 ‘폭력웹툰’ 보도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챙겨뒀다가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 통지 및 의견제출 안내’라는 공문을 4개 포털사이트 대표 앞으로 발송했다(2012.02.07).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24편의 웹툰이 ‘잔혹한 살상 또는 폭행 등의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는 내용의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할 계획인데 ‘청소년유해매체물이거나 그럴지도 모르는 내용을 아무런 접근 차단장치 없이 유통한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니?’하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법과 제도, 나름의 내부 규칙 안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입장에서는 깜짝 놀라서 발을 빼고 싶을 일이고 만화가들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한테 공개구타를 당한 느낌일 것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구조화 해 낸 웹툰의 진화
웹툰은 인터넷 사용 인구의 확산, 전통미디어의 위축과 함께 20세기말에 등장했다. 웹의 탄생은 편리성과 확장성, 참여가능성 등에 있어서 전통미디어가 지니지 못한 강점을 보여줬다. 반면, 웹은 그 특성으로 인해 진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웹툰도 같은 과정을 거치며 성장했다. 전통적인 출판만화 분야에서 숙련된 프로작가가 아니라 개인홈페이지 등을 통해 발표한 아마추어의 습작에서 출발했고, 창작비용이나 창작물의 구매 비용없이 공짜로 소비됨으로 인해 전통적인 출판만화시장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웹툰은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나 나름의 유전자 번식 과정을 거쳐 독자적 생태 환경을 조성해냈다. 생태계 구축 과정은 크게 다섯 단계를 거쳤다.
첫째, 매체의 다양화이다. 웹툰은 2000년을 전후하여 권윤주(스노우캣), 강풀 등의 개인홈페이지를 주 매체로 등장했다. 이후 대형포털사이트의 중요 섹션으로 발전했고 2009년에는 온오프라인 신문사(스투, 머니투데이), 무선통신사(툰도시), 온라인게임포털(겜툰), 애니메이션케이블채널(투니랜드), 대기업 및 기관의 브랜드홍보사이트(삼성, 마사회) 등으로 웹툰을 연재하는 매체의 폭이 넓어졌다.
둘째, 신인등용의 구조화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나도만화가’ 코너를 마련해서 예비만화가나 신인만화가들이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이용자들의 평가를 통해 정식 등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호랑, 제피가루, 팀겟네임 등의 작가가 등장했다. 2008년 11월 네이버는 기존의 ‘도전만화’ 코너와 정식 연재코너 사이에 ‘베스트도전’이라는 단계를 하나 더 두어서 이른바 취미만화가와 만화가지망생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견고화는 만화가 지망생 공개망로서의 역할을 했고 이는 웹툰의 매체 다양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셋째, 활동작가의 다층화이다. 매체 다양화와 신인작가 양산시스템 구축은 웹툰시장 규모를 확대시켰다. 이는 자연스럽게 출판 매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강도하(강성수), 양영순의 웹툰이 선도적이며 도전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면 2009년 황미나, 윤태호, 윤종문, 조재호, 김경호로 이어지는 기성 작가의 참여는 웹툰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넷째, 이용층의 안정화이다. 초기 웹툰시장의 주 사용자층은 20대 여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웹툰의 성장이 ‘카페’라는 사용자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포털사이트 다음으로 부터였고, 2003년 강풀의 <순정만화>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추론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네이버는 조석의 ‘황당개그’를 앞세운 <마음의 소리>를 기반으로 만화섹션에 웹툰 코너를 구축하면서 경쟁 구조를 형성했다. 두 매체 간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성인만화, 아동학습만화 등으로 새로운 기업과 매체의 도전이 이어졌다.
다섯째, 수익의 다각화이다.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성장한 웹툰은 포털사이트의 광범위한 사용자 유입률을 바탕으로 광고매출이라는 안정적 기반 위에서 무료서비스를 진행했고 작가는 연재고료에 만족해 왔다. 그러나 매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용자 트래픽에 따른 광고매출이 분산되면서 수익다각화에 대한 고민이 확대됐다. 즉, 웹툰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연재권, 출판권, 타매체 전송권, 각종 상품화 판권, 작품 내 광고권 등이 사전·사후 판매되고 있다. 이현세의 <비정시공>, 윤태호의 <세티> 등이 대표적이다.
웹툰, 정보통신 강국 한국의 대표적 콘텐츠
웹툰은 나름의 진화 과정을 통해 한국만화산업계의 견고한 생태계를 디지털 기반으로 전면 개편해냈다. 한국 웹툰의 이 같은 성과는 국내 만화계뿐만 아니라 해외 만화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호랑(본명 최종호) 작가의 ‘봉천동귀신’과 ‘옥수역귀신’은 네이버 웹툰에 게재된 다음 날 미국의 만화사이트 코믹얼라이언스(Comics Alliance)에 번역본으로 재게재 됐다. 이 작품을 접한 외국인들은 자신 또는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한국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호랑 작가는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웹투니스타(webtoonistar) 중 한명이 됐다. 현재 호랑 작가의 작품 대부분은 외국의 웹툰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 있다.
호랑 외에도 손재호, 이광수 작가의 ‘노블레스’,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 등 수 많은 한국 웹툰이 해외 사용자들에 의해 망가폭스나 코믹리소스, 웹툰라이브(www.webtoonlive.com) 등의 만화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재되고 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웹툰을 교재용도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간혹 있었으나 특정 작품이 사용자들의 자체 번역을 통해 해외 사이트에 집중 소개되거나 전문 번역 사이트가 생긴 것은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만화평론가인 스콧 맥클루드까지 나서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웹툰 붐에 주목할 만큼 한국이 만들어낸 ‘웹툰’은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를 팬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법복제임에 분명하지만 이는 한국만화가 세계만화계의 변방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웹툰은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한국의 글로벌 이미지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이 바쁜 상황에 웹툰의 현재를 이끌어낸 500여 명의 웹툰작가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다소 예의 바른 ‘태클’에 당혹감을 넘어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웹툰작가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2012.2.20)하고 웹툰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에 대해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웹툰 전체가 아니라 일부 작품의 과도한 표현과 유통 통제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화계는 1997년 청소년보호법 시행 등으로 잘 나가던 출판만화시장을 반토막 당하고 일본만화에 지분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몇몇 작품에 대한 문제로 출발했고 그 전선이 확대되면서 4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관측됐던 만화시장은 이후 10년 간 7천억원 시장규모에 꽁꽁 묶여 성장을 저지당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15년 여간 공들여 성장시킨 분야가 웹툰시장이다.
만화계는 이 시장이 그 때처럼 반토막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청소년에 유해할지도 모른다는 한 기자의 가설과 몇몇 웹툰이 학원폭력를 조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입증되지 않은 지적으로 인해 또 한번 만화계를 반토막 내서는 안 될 일이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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