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Cartoon)’은 만화를 통칭하는 영어식 표기이다.
신문에 실리는 1칸짜리 만평도 만화고 책으로 된 이야기만화도 만화라 하는 것처럼, 카툰은 다양한 형식의 만화를 뭉뚱그려서 지칭할 때 사용하는 명사이다. 캐리커처가 있었으나 카툰이라는 명칭을 시작으로 코믹스트립, 코믹북 등 다양한 만화 전통이 형성됐다. 그런데 만화의 뿌리였던 카툰이 어느 순간부터 만화의 가지로, 만화의 본류였던 것이 만화의 세세분류로 이해되기 시작했다(최소한 한국의 관용화 된 언어 습관, 또는 만화계 내부의 인식에서).
정치성과 비판성을 지닌 것은 ‘시사만화’가 됐고, 캐릭터와 플롯, 스토리를 지닌 것은 ‘서사만화’가 됐다.
만화적 착상과 선화를 중심으로 한 설명적 그림은 일러스트라 불린다. 이들은 각자 신문, 잡지, 도서, 광고, 뉴미디어 등의 영역에서 새롭게 뿌리내리고, 새롭게 가지를 뻗으며 만화라는 이름 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만화라는 전통을 만들고, ‘단순·과장·풍자’라는 만화의 사전적 의미와 원형적 매력을 그대로 간직한 카툰의 형편은 달라졌다.
①하나의 칸 안에 ②절제된 묘사로 ③독특한 착상을 담아내 ④광대한 세상에 배포하여 ⑤비일상적 세계로 사람들을 안내했던 카툰은, 그 것도 비정치적 성격의 ‘서정카툰’은 어느 순간 매체를 잃었고, 소비자에게서 잊혀졌다. 간혹 미술관형 전시 속에서 가지를 내렸고, 뉴미디어기기를 통해 인터렉티브 아트의 형식으로 새로운 잎사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풍요를 누리지 못했다.
70~80년대 잡지의 시대에는 표지, 또는 내지 1면을 장식했던 것이 ‘서정카툰’이다.80~90년대 신문의 컬러지면 확대 시절에 가장 눈에 뛰는 위치에 놓였던 것 역시 ‘서정카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00살 먹은 한국만화의 나이만큼이나 깊은 연륜이 있고, 한 칸으로 승부하는 패기가 여전 함에도 카툰의 무대는 자꾸만 줄어든다.
이 책은 그 같은 아쉬움으로부터 출발했다.
원로 카투니스트 조관제, 조항리, 이소풍 선생님과의 술 한 잔, 젊은 카투니스트 박태성, 이대호, 유재영, 손영목 선생님과의 술 한 잔. 그렇게 잔이 돌았고 ‘한국카툰협회’라는 테이블 위에는 하나 둘 쌓이는 빈 병만큼이나 투명하고 속 시원한, 빈 마음을 꽉 채워주는 ‘서정카툰’이 놓여졌다.
인터넷 시대의 신문이랄 수 있는 포털사이트 YAHOO!가 카투니스트들의 투명한 시선과 속 시원한 발상을 담은 ‘서정카툰’을 매일 한 편씩, 100일 간 세상에 알렸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소재의 웹툰에 익숙한 네티즌들에게 ‘서정카툰’의 세계는 얼마간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해 갈수록 일상의 한 장면을 비일상적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서정카툰’의 매력에 동조하는 이들의 수도 늘어났다.
카투니스트들은 이번 기회에 인터넷을 통해 선보인 작품 외에 ‘술’을 테마로 한 작품만을 모아서 ‘서정카툰집’을 출판하자는 제의를 했다.
평소 카툰예술과 어른들이 볼만한 만화에 깊은 애정을 표했던 매직북 출판사가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드리면서 ‘서정카툰집-술’을 위한 작업이 속도를 더 하게 됐다.
이 책에는 성냥개비로 만화를 그리는 ‘고인돌’의 박수동, 한국카툰계의 3성으로 통하는 사이로, 김마정, 조관제, 소년만화와 애니메이션계에서 서정카툰의 세계로 진입한 조항리, 이소풍, 시심어린 세계와 유모를 보여주고 있는 강창욱과 이해광, 국제적인 카툰 대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서정카툰계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강태용, 고구마, 김동범, 김흥수, 유재영, 디지털 기술과의 접합을 통해 디지툰(Digital Cartoon)의 영역을 개척한 모해규, 심차섭, 손영목 등 한국카툰계의 전통과 현재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좁아진 서정카툰의 무대와 달리 카투니스트들의 발상은 더욱 더 광대해졌고, 그들의 시선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일상적 상황들은 더욱 더 우리 삶을 격려하고, 새로운 통찰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 만큼 먹고 싶은 술 한 잔, 이 만큼 든든한 술자리가 있을까. 술을 테마로 한 서정카툰의 세계에 흠뻑 취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혼자 마시는 술보다는, 혼자 보는 카툰이 훨씬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재)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창작과 제작비용의 일부를 지원했다. 이 지원이 펌프질 할 때 쓰는 마중물처럼, 그 마중물에 거는 기대감처럼 서정카툰계에 굵은 물줄기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카툰협회를 이끌고 있는 조관제 회장님과 이대호 사무국장님이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고, 한국카툰협회 소속 카투니스트들의 열정적 참여가 있었다. Yahoo!의 김동우 만화편집장, 매직북의 김순광 이사는 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많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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