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가족과 함께 보는 만화, 2009.3.9

거실의 가장 좋은 위치를 TV가 차지한 후 한 전자 업체의 광고 문구처럼 TV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원하는 시간에 함께 있어주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래주니 그만한 가족이 없다. 가족 중 인기투표를 한다면 1등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가족 모두 TV만 바라보고 있으니 TV는 왕자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거실의 왕자를 왕따 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또 하나의 가족은 조용히 있으라하고 우리 가족끼리 비슷한 즐거움을 찾아보자. 


첫 번째 프로젝트, 초장편 만화 돌려 읽기!!



사람들이 TV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공통의 화제를 소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통의 매개체를 만들면 된다. TV를 빼놓고 뭐가 있을까. 쉽게 떠오르는 것이 게임인데 잘 못 꺼내들었다가 아내에게는 꾸지람, 자식에게는 PK(게임의 상대방을 죽이는 행위) 당하기 십상이다. 책도 좋지만 요즘 문학은 그 자체가 학과 공부이기 때문에 재미의 요소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눈치다. 

만화는 어떤가? 게임보다 격하지 않고 TV보다 수동적이지 않으면서 문학처럼 부담스럽지도 않다. 아이들의 감성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한 두 권짜리 짧은 만화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의례적 이벤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는 김에 두툼한 장편으로 시작해보자.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 만화 중에는 30~50권이 훌쩍 넘는 장편 만화가 많이 있다. TV드라마처럼 인기 있을 때 고무줄처럼 늘려 놓은 만화도 있다. 하지만 한 작품이 그만한 기간과 분량으로 창작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특히 이런 경우 많은 독자층의 입맛을 고려해서 창작되기 때문에 아동용이라 하더라도 어른이 즐거움을 찾기에 충분한 요소가 있다. 

사서 보는 것이 좋지만 부담된다면 동네 책대여점에서 아빠가 직접 작품을 골라서 빌려다 주는 것도 좋겠다. 같이 읽어 본 후 '뒷편은 네가 좀 빌려 올래. 궁금해 미치겠다.'하는 정도의 멘트를 날려주면 쫌 괜찮은 아빠처럼 보인다. 또 살면서 뭔가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작품 속 주인공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보면 된다. 그런 것에 용이한 만화가 스포츠만화다. 남학생 여학생 구분 없이 읽을 수 있고 어른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만화라면 야구는 <터치>, 축구는 <환타지스타>, 농구는 역시 <슬램덩크>가 있다. 아이가 좀 어리다면 스포츠가 아니라 판타지를 고르자. <나루토> <원피스>가 최고다. 서점이나 책대여점에 한번 나가 보는 것이 좋겠다.  


두 번째 프로젝트, 지식감성만화 활용하기!! 



요즘 만화계에서 유행하는 장르가 교양학습만화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구성방식이 고전, 취미, 상식 등과 맞물려있으면 교양만화, 교과 학습 쪽에 치우쳐 있으면 학습만화라고 한다. 대개는 선생님급 되는 지도자가 등장해서 주인공을 색다른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방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읽기에 부담도 없고 학습효과가 높다는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어느 집에나 서너 타이틀쯤은 전집으로 꽂혀있다. 반면 지식감성만화는 일반적인 극만화를 통해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요리만화 같은 전문소재만화의 다른 명칭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책은 꽂아 두고 보는 그림이 아니다. 특히 만화는 단순히 보고 끝나는 읽을거리가 아니다. 만화를 종이 위의 상상나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화는 생각하게 만든다. 또 만화는 꿈꾸게 하고 독자에게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뭔가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한때 만화는 사람을 헛된 공상에 사로잡히게 한다고도 했다. 교양학습만화는 만화의 이 같은 기능성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대신 제목만 봐도 학교 공부용 만화라는 것이 빤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면 TV대신으로 적당하지 못하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흥분도 하면서 즐기려면 티 나는 학습만화보다 재미있는 교양만화를 고르는 것이 좋겠다. <식객>, <아빠는 요리사> 같은 요리 소재 만화라면 어떨까. 아이들과 함께 휴일의 간식거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정도의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같이 읽으려한다면 아무래도 학습만화를 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아빠가 읽고 아이에게 뭔가 보여주려 한다면 취미나 전문직업 관련 소재의 작품이 여럿 출간되어 있다. 대개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감이 온다. <소년낚시왕>, <곤충감식관 파브르>, <고스트바둑왕>, <SOS해상구조대>, <갤러리페이크> 등 관심 가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이든 생각해봐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는 것도 좋다. 가령 '등산만화', '자전거만화'라고 쳐보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또는 아빠의 개인기로 활용 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가득하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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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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