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과 아줌마, 풍자로 세상과 맞서다 ; 시사만화
한국만화가 탄생한지 꼭 100년이 됐다. 1909년 이도영 화백이 ‘대한민보’ 창간호에 발표한 <삽화>라는 이름의 만평이 최초의 한국만화이다. 개화기 신사가 등장해 한국형 말풍선의 효시가 되는 4가닥 말줄을 선보였다. 이후 만화는 줄줄이 창간되는 신문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초창기의 만화는 일본의 강제 통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자각을 요구하는 계몽성이 주가 됐다. 한때, 인쇄물에 대한 일제의 사전검열이 강화되면서 통속적이고 해학적인 내용의 오락만화로 신문지면이 채워지기도 했지만, 해방 이후 시사만화는 본래의 ‘풍자적 비판기능’을 강조하면서 우리 만화의 성장을 주도했다.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역대 캐릭터로는 김용환의 ‘코주부영감’, 김성환의 ‘고바우영감’, 정운경의 ‘왈순아지매’, 윤영옥의 ‘까투리여사’ 등이 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인기 시사만화에는 유독 영감님과 아줌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물론 안의섭의 ‘두꺼비’, 이홍우의 ‘나대로’처럼 성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경우도 있다). 사사건건 따지기 좋아하는 영감님, 궁금한 건 꼭 확인하고 마는 아줌마의 성향이 시사만화의 역할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전 남여, 희망찬 내일을 말하다 ; 서사만화
초기 서사만화 역시 일제 강점기 아래 발행됐던 신문과 잡지를 통해 등장했다. 비판적 입장에서는 판매부수를 확대하기 위해 유머와 아동지면을 특화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국민 교육과 여가를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몽적 입장과 함께 오락성을 취했던 당대의 언론과 만화의 역할을 단순히 판매 전략 차원에서만 봐서는 안될 것이다.
성인 취향의 시사만화와 풍속만화를 그리던 안석주, 최영수 등이 2, 30년대에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아동만화를 그렸고, 김용환, 김성환 등이 4, 50년대에 아동 대상의 모험 소재 만화와 교양 학습만화를 책으로 발표하면서 장편서사만화의 길을 열었다.
60년 대 이후로는 대본소(만화방)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소년만화 전성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박기정의 <도전자>, 산호의 <라이파이>가 성공에 대한 욕망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면 70년대에 등장한 임창의 <땡이> 시리즈, 길창덕의 <꺼벙이>, 이정문의 <심술가족> 등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가족을 그렸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화가 본격화 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아리랑>, <썬데이서울>, <일간스포츠>로 이어지는 오락매체의 활성에 따라 고우영, 강철수, 배금택 등이 성인의 감수성과 성적 농담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80년대 이후에는 이상무의 ‘독고탁 시리즈’, 허영만의 ‘이강토 시리즈’, 이현세의 ‘까치(오혜성) 시리즈로 이어지는 인기 캐릭터 만화가 등장했다.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당대의 시대정서를 담아냈다. 만화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는 다양한 작가군이 형성됐고 색다른 장르의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소녀들의 감수성에 호소했던 순정만화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등이 여성을 위한 판타지를 그려냈다. 세기말에는 <진짜사나이>의 박산하, <까꿍>의 이충호, <열혈강호>의 양재현, <오디션>의 천계영, <궁>의 박소희 등 젊은 작가들이 현실과 판타지의 세계를 넘나들며 도전하는 청춘남여의 열정과 색다른 희망을 그려내기도 했다.
서사만화는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작품의 소재와 주인공의 성격을 변화시켜가며 대중과 함께 해왔다. 그러나 많은 변화 속에서도 주인공의 ‘도전과 모험, 희망과 성취’라는 서사적 코드는 지속됐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 삶의 영원한 테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라진 소비자, 새로운 만화 장르를 탄생시키다 ; 디지털만화
21세기로 들어서며 디지털 기술이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 시킨 것처럼 만화 역시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의 디지털 매체 활용도에 따른 만화상품의 분화에서 찾을 수 있다.
디지털 활용도가 낮은 연령대로 볼 수 있는 아동과 중년층의 경우는 여전히 책을 지식정보의 저장매체이자 여가활용 수단으로 삼고 있다. 만화 역시 이 부분의 소비자를 겨냥한 기능성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 등이 아동 소비자의 학습능력에 집중한 기능성 만화라면, 허영만의 관상만화 <꼴>과 요리만화 <식객>, 이현세의 골프만화 <버디> 등은 중년층의 교양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성 만화라 할 수 있다.
디지털 활용도가 높은 연령대로 볼 수 있는 청소년과 2, 30대의 경우는 책보다 핸드폰과 인터넷을 집중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만화는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이 같은 변화에 대응했다. 인터넷과 핸드폰 속으로 들어갔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디지털만화를 만들어 냈다. 2000년에 등장해 각광을 받은 <스노우캣>, <엽기토끼 마시마로>,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이 캐릭터성을 부각시켜 인터넷을 달궜다면, 곧이어 등장한 강풀, 강도하, 양영순 등은 인터넷 사용자 환경에 적합한 만화연출법을 제시하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산되며 전세계 만화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국형 웹툰’은 만화라는 표현 언어가 지닌 유연성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초기 형태의 디지털만화는 마치 만화100년의 역사처럼 ‘깊이 없는 내용과 자극적 소재’로 인해 감성만화, 엽기만화 등으로 불리며 비판받았다. 그러나 우리 만화는 달라진 매체 환경에 몸을 맞췄고, 소비자의 직접적 평가를 유도하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글과 그림의 융합을 이뤄낸 최초의 만화가들처럼 지식과 감동을 정보통신 기술에 담아낸 것이다. 대중의 편에서 꿈꾸기를 멈추지 않은 만화 100년의 결실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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